사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국가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Written by. 박익순   입력 : 2004-01-06 오후 3:28:42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0

다시 尙武精神을 생각한다 -  
 

1784년 그 옛날 화산 폭발로 지상에서 사라져버린 폼페이 발굴작업이 시작됐을 때 조사단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흘러내리고,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을 상황에서 최후까지 자기 위치를 이탈하지 않고 서 있는 초병이 발굴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 폼페이의 초병으로부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던 대제국 로마의 전설이 우연히 이룩된 것이 아님을 알았다.



3차 중동전쟁 이후 한 여행자가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청의 정문에 서 있던 한 수위에게 국가관을 묻자 그는 “나의 국가관은 죽을 때까지 조국 이스라엘을 지키는 기관총 사수가 되는 것”이라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1950년 6·25전쟁 초기 맥아더 장군을 감복시킨 한 부사관의 일화는 더욱 생생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맥아더 장군이 한강 방어선을 지키는 부사관에게 “귀관은 언제까지 이곳을 지킬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명령이 있을 때까지, 명령이 없다면 죽을 때까지”라고 대답한 것이다.



국가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흥국(興國)과 망국(亡國)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 국가의 존속과 번영은 자기 나라를 지킬 의지의 강약에 좌우됐음을 역사는 수없이 교훈으로 전하고 있다. 자존심이 있는 국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는 민족은 역사에서 반드시 승자로 등장한다.



전성기 고구려는 천하무적이었다. 금방이라도 무덤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무용총 벽화에는 넘치는 상무정신으로 대륙을 짓밟고 호령하던 고구려인의 용맹과 기상이 잘 나타나 있다.



역사상 최대의 원정군 중 하나였던 수나라 113만 대군을 격멸한 살수대첩은 상무정신으로 무장한 위대한 고구려인의 승리였다. ‘출발하는 데만 40일이 걸리고 깃발이 960리나 뻗쳤으며 근고(近古) 이래 이런 출병은 없었다’고 기록했을 만큼 전 국력을 동원한 수나라의 고구려 원정 실패는 곧바로 멸망으로 이어졌다.



우리 민족의 정통 무사도(武士道)로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도도 역사에 수없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화랑이었던 두 청년의 충성맹세를 돌에 새긴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서 우리는 나라가 위난에 처하면 목숨을 바쳐 이를 구하겠다는 비장한 충절과 신의를 읽을 수 있다.



16세의 나이로 출전해 공을 세운 화랑 사다함은 전쟁터에서 같이 죽기로 맹세한 친구 무관랑이 17세의 나이로 죽자 통곡하기 7일 만에 죽음의 길을 같이 떠났다. 임전무퇴의 정수를 보여준 화랑 관창과 전선에 나가 공을 세우지 못하고 돌아온 자식을 내쫓은 화랑 원술의 어머니로부터 우리는 한 시대의 강인한 정신과 상무의 문화를 읽는다.



북진정책은 전 시대를 관통하는 고려의 국시였다. 목표의식과 충만한 상무정신으로 고려는 끊임없이 북방진출을 도모하며 국난을 극복했다.



10만 명의 거란군 중 살아 돌아간 자가 수천 명에 불과해 살수대첩과 비견되는 귀주대첩의 승전보는 상무정신으로 무장한 국민의 승리였다. 한때 유라시아대륙을 석권한 몽고의 대병(大兵)도 끝내 고려를 군사적으로 굴복시키지 못했다.



조선시대 건국 초기에도 상무의 기풍이 전승돼 북방 강역의 수복과 함께 대마도 정벌 등 강력한 국방정책이 펼쳐졌다.



‘대마도는 옛날부터 우리 땅이었다’로 시작돼 ‘땅이 막혀 궁벽하고 좁고 더러운 곳이어서 왜적들이 살게 내버려 두었더니 도적질을 일삼으며…’로 이어지는 정벌의 포고문을 보면 조선 초기 국방의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약(文弱)에 빠져 국난이 끝없이 이어지고 끝내는 망국의 길을 걸은 조선 중기 이후의 역사에서 우리는 두고두고 새겨야 할 교훈을 상기한다.



국가가 방비하는 일을 낙관하거나 소홀히 했을 때 국토는 초토화되고 백성들은 참혹한 고초를 겪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처절하게 기록한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을 보면 나라에 상무의 기풍이 무너졌을 때 어떤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오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기억하기조차 고통스러운 대한제국의 멸망은 두 번 다시 나라의 방비를 소홀히 해 국난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새기게 한다.



오늘 이 나라에 상무의 전통은 면면히 계승되고 있는가. 튼튼한 국방은 구호가 아닌 행동으로 실천되고 있는가. 고구려사를 중국의 지방사로 편입하려는 역사 침략의 망발, 주변국의 군사력 증강과 북한 핵문제를 보면서 우리는 국가의 생존과 번영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며 우리 자신에게 단호히 묻는다. 우리는 이 나라를 스스로 지킬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동맹과의 관계는 돈독한가. 미래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새해 벽두 나라의 안전보장 문제는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제1의 당면과업임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박익순 전쟁기념관 관장>



(제공 : 국방일보)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