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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시찰 허용의 함정

Written by. 이팔웅(독립신문)   입력 : 2004-01-07 오후 5: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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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찰단이 가시적 성과 얻느냐 여부가 중요  
 

미 상원외교위원회 전문위원, 핵전문가, 학자들로 구성된 북핵 시찰단이 오는 6일부터 10일까지 북한 영변의 핵시설을 돌아볼 예정이라고 보도되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핵 시찰단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북핵 시설을 돌아 보도록 허용되었고, 미국 행정부는 이들의 방북을 사실상 허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2002년 12월31일 북한에서 무기사찰단을 추방한 이후 영변의 핵시설에 대한 시찰단의 입국을 허용한 것은 1년여만에 일이다. 그렇다면 제2차 6자회담 개최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의 비정부차원의 핵시찰단이 영변의 핵시설을 시찰할 수 있도록 북한당국이 허용한 그 배경은 무엇인가,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먼저 이라크 후세인의 생포, 리비아 카다피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프로그램 무조건 포기 선언 등을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 부시행정부에 의해 악의 축 국가로 지목된 이라크가 미국의 군사력에 의해 맥없이 무너져 버렸고 9개월 동안 땅굴에서 은신중이던 후세인이 미군에 생포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리비아의 카다피도 미국과 서방세계에 저항하다 96년부터 가해지기 시작한 경제제재를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 경제를 택하겠노라고 미국과 서방세계에 무릎을 꿇었다.



동지적국가들이 이처럼 미국의 막강한 힘 앞에 무너져 내린 것은 김정일에게는 운신의 폭을 좁힌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에 대한 탈출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영변핵시설에 대한 시찰을 허용한다는 카드를 던진 것으로 볼 수있다. 일종의 고육지책인 것이다.



두 번째로 핵문제로 북미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거나 심각하게 쟁점화할 의도가 없음을 서방세계에 알리기 위한 제스쳐인 것이다.



세번째로 시간 끌기 전술이라는 지적도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아무런 가시적 조치가 없는 가운데 북미 대치 상태만 지속될 경우 북한에 불리하게 돌아갈 것은 자명하다. 북한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꿔 6자회담 재개의 장애는 미국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세계 여론의 화살을 미국쪽에 돌리려는 속셈이 깔려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네 번째로 미국행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3월말까지로 설정해 놓고 있다. 이 때까지 북한이 긍정적이고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미국은 북핵문제의 유엔안보리 상정과 대량살상무기확산저지구상(PSI)의 전면 발동 등을 적극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변 핵시설 방문 허용은 북한이 이러한 일련의 대북 강경정책을 누그러뜨리려는 전술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밖에도 북한은 신년사를 통해 북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원칙적 입장은 변함이 없다는 의지를 밝힌 점으로 볼 때 이의 연장선상에서 제시한 후속조치라는 분석도 유력하다.



그러나 더 큰 관심은 이들 핵전문가 그룹이 영변이나 그밖에 지정된 핵시설에서 핵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가시적인 증거를 획득할 수 있느냐이다. 또 하나 북한당국이 이들 전문가 그룹이 보고자하는 특정 지역도 방문, 시찰을 허용하겠느냐이다. 이 문제로 미국 시찰단과 북한당국 사이에 실랑이를 벌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북한당국이 허용해 안내하는 곳만 돌아본다면 미국 시찰단의 성과는 일찌감치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1999년 5월21일과 2000년 5월 금창리 사찰 전례의 재판이 연출될 개연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금창리 사찰사건은 1998년 8월 미국 뉴욕 타임스가 북한이 포기했다던 핵무기 개발을 금창리에서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해명과 사찰을 요구하는 회담을 99년 3월까지 4차례나 가졌었다. 북한은 미국의 이같은 요구에 대해 사찰을 허용하고 대신 미국에 쌀지원을 요청했다.



회담은 타결되었고 이에따라 미국은 1999년 5월21일부터 4일동안 금창리 지하시설을 철저히 조사했다. 그러나 발견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텅빈 동굴만을 확인하고 빈 손으로 돌아왔다. 1년 뒤인 2000년 5월 제2차 조사단을 다시 파견했으나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협상하는 동안 북한은 증거될만한 것은 모두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은 텅빈 지하동굴을 돌아보게한 값으로 미국으로부터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쌀 60만톤을 제공 받는 실리만 챙겼다.



이러한 전례로 미루어 볼 때 이번 사찰단도 전철을 밟을 공산이 매우 높다. 또 미국 시찰단이 다른 시설물에 대한 시찰을 요구할 경우 못 이기는척 하면서 이미 연료봉 재처리를 끝낸 텅텅빈 수조를 보여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 시찰단의 성과가 이렇게 나타날 경우 제2차 6자회담개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입장은 매우 난처해 질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방북 시찰단이 미국행정부 공식대표단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미국정부가 이들이 미국정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누누이 강조하는 것도 이런 사태를 염두에 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아무튼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2차 6자회담개최를 앞두고 북한이 영변핵시설을 공개하겠다고 한 것은 미국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해 곤혹스러움을 안기려는 계산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핵시설물을 미국 시찰단에 공개하는 것은 제2차 6자회담에 청신호가 아니냐는 분석도 있으나 너무 성급한 진단 같다. 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 시찰단이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손에 쥘수 있느냐 여부다.


[이팔웅 독립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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