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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영웅 백선엽, '6·25'를 말하다

강남구청 교양강좌, 1천여명 코엑스 대강당 꽉메워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9-06-24 오후 6: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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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시대가 흘러 두 세대가 되어 내년이면 (6·25한국전쟁 발발) 60년이 됩니다. 우리 후대를 잇는 청소년들이 한국전쟁이 어떻게 발발했는지, 그 경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이것은 기성세대의 책임이자 학교 교육이 시험에 중점을 두고 하다보니 역사를 가르치는 시간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한치의 (대한민국) 땅도 국군과 유엔군이 피를 흘리지 않았으면 얻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백선엽 장군 초청 안보강연회. 이 날 강연회 후 강남구청은 백 장군에게 6.25한국전쟁 회고록인 '군과 나'의 헌정식도 함께 가졌다. ⓒkonas.net

 노(老) 장군의 목소리는 카랑카랑 힘이 넘쳤다. 연세가 아흔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하기에 믿기지 않을 정도의 위엄이 서려 있었지만 미소 띤 모습에서는 친근한 이웃집 할아버지의 풍모 그 자체였다. 그러면서도 어느 누구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무게감과 진한 조국애가 스며들어 보였다.

 6·25 한국전쟁의 살아있는 영웅이자 6·25 전쟁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낙동강 전투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인 다부동지구 전투를 승리를 이끌어 인천 상륙작전과 더불어 반격의 실마리를 제공케 한 한국전쟁의 영웅인 백선엽(예, 대장) 장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생생한 전사 그 자체였다.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 59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6·25전쟁과 한미동맹을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강남구청이 준비한 6월 교양강좌의 자리에서 였다.

 백 장군은 이 날 준비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중심으로 '6·25전쟁하면 백선엽' 일 정도의 전사와 관련한 사진을 중심으로 50여분 동안 차분한 어조로 강연해 나갔다.

 ▲ 백선엽 장군. ⓒkonas.net
 백 장군은 'Freedom is not Freedom'의 말을 인용, "자유는 공짜가 아니고 평화는 금전을 가지고도 사지 못한다"며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이란 글자를 알아야한다. 지금도 북한 김정일은 2천만 국민을 굶주리고 기아선상에 두고서도 핵무기를 시험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가 하면 120만 군대를 양성해 전방에 배치하고 거기에다 20만 명의 특공대를 언제든지 우리 후방에 투입할 수 있다"고 북한의 군사력과 위협을 적시했다.

 이어 "북한공산당 헌법은 평화통일이 아니고 적화통일이다"며 "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을 만나러 갔을 때 남로당 당수를 데리고 갔다. 당시 남한에는 남로당원이 20만 명에 이르렀는데 지금 그 후손들이 남한에서 작동한다"고 우리사회의 좌파세력들을 칭하면서 "오늘 우리나라는 당시 초근목피를 연명하던 나라에서 12번째 경제력을 자랑하는 나라로 안 가진 산업이 없으며, 조선공업 같은 경우는 세계 제1위이다. 이런 나라를 육성하는데 우리가 일치단결 해야 한다. 국민이 정신을 차려서 안보를 튼튼히 한 가운데 건설해야 한다"면서 "한미동맹이 있었기에 60년 동안 평화가 유지되고 경제발전을 해왔다"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지난 16일 워싱턴에서의 한미정상회담을 언급,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의 오바마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외교적으로 큰 승리를 가져왔다"며 "지난 10년 좌파정권으로 한미관계 가 손상됐는데 이번에 많은 진전을 봤다. 어떻게 우리가 만든 나라인가? 이 나라가 영원무궁발전하고 자손이 편안하게 하려면 일치단결 잘 가꾸고 전진해야한다"는 말로 50여 분간의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에 앞서 백 장군은 해방이후 대한민국 건국에서 6·25전쟁이 발생하기까지의 남북한의 사회적 상황과 한국의 방위력, 그리고 북한 김일성의 전쟁준비상황과 함께 50년 4월 당시 미 국무장관인 에치슨의 외신구락부 연설서 대한민국이 미국의 방위선으로부터 제외된다는 발언이 북한으로 하여금 전쟁을 도발하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남한은 당시 미군의 정책이 확실하지 못했고, 북한은 탱크 242대 포 1200문, 3천여명의 소련 군사고문단과 20만 대군으로 동서에서 남침을 감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은 사흘만에 무너져 이 나라는 결단나 희망이 없게 될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자료 사진과 더불어 설명해 나갔다.

 ▲ 맹정주(왼쪽)구청장이 백선엽 장군에게 회고록을 증정하고 있다. ⓒkonas.net

 노(老)장군의 전쟁 이야기는 막힘이 없었다. 59년 전 그 엄청났던 전선 상황이 하나의 필름으로 돌아가듯 부산을 지키기 위한 국군의 피나는 노력과 맥아더 장군의 상륙작전에 이르기까지 미군과 한국군의 작전을 소개하고 이어 평양으로 진격하는 과정에서는 "평양만큼은 우리가 먼저 가야한다고 눈물을 머금고 미국의 군단장을 설득해 평양을 가는데 전차를 얻어 타고 갔다"면서 "한국전쟁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것이 미국의 해군과 해군항공, 공군, 그리고 영국 공군의 역할이 참 컸다"고 했다.

 또 이승만 대통령의 말도 곁들였는데 "평양을 점령한 후 이승만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10만 군중이 모인 가운데 연설을 통해 '우리는 결코 북한 동포를 잊은 것이 아니고 동포의 고난에 참으로 경의와 감사를 드리고 우리 민족이 뭉치면 살고 분열하면 죽는다'고 북한동포에게 대 호소를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계속해서 중공군이 출현하게 된 배경도 소개했다.

 ▲ 강연회에 참석한 참석자들이 6.25사진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konas.net

 한편 이 날 맹정주 강남구청장은 백선엽 장군의 군 일대기를 엮은 자서전 '군인과 나' 도서를 백 장군에게 헌정하고 사인회도 함께 가졌다. 또 무역센터 로비에서는 6·25전쟁 사진 전시회도 함께 열렸다.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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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비행기(a112412)   

    시대의 산증인이시고 영웅이신 백선엽 장군을 모시고6.25의 실상과 현실을 되돌려보게 해주신 맹정주 구청장님께 1차적으로 감사드리며 후일을위하여 6.25날에는 필히 태극기를 개양하여 대한민국의건재함과 후세대에 왜곡된역사를 교양하고 김일성의 6.25사변의진실을 국민에게 기역되는 날이되기를 바랍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

    2009-06-25 오후 4: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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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비행기(a112412)   

    시대의 산증인이시고 영웅이신 백선엽 장군을 모시고6.25의 실상과 현실을 되돌려보게 해주신 맹정주 구청장님께 1차적으로 감사드리며 후일을위하여 6.25날에는 필히 태극기를 개양하여 대한민국의건재함과 후세대에 왜곡된역사를 교양하고 김일성의 6.25사변의진실을 국민에게 기역되는 날이되기를 바랍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

    2009-06-25 오후 4: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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