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추모 촛불기념비 철거는 정당했다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기념비가 지난 2일 철거됐다. 이 기념비는 지난 해 6월13일 '여중생 범대위'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자주평화 촛불기념비'라는 비명으로 세웠던 불법구조물이었다.
작은 광고판 하나도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범대위측은 구랍 25일까지 6차례나 자진철거 최고를 받고도 이를 외면하고서 버티어오다 강제철거 당한 것이다. 그러고도 이들은 철거에 항의하여 종로구청 홈페이지에 폭언을 퍼붓는 것만으로도 성에 차지 않아 사뭇 위협적인 집단시위에 나서고 있다.
[촛불]들이 단순사고로 숨진 이들 여중생을 마치 '신화적인 존재' 또는 '열사'인양 치켜세워 가짜 류관순 구조물을 만든 것은 범국민적 합의 없이 그리고 절차상의 합법성을 무시한 체 이뤄졌다는 점에서 철거조치에는 무리가 없다.
굳이 '촛불시위'의 공(功)으로는 한미관계를 보다 호혜적이고 균형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돌이킬 수 없는 과(過)가 훨씬 더 컸다. 사회 전반에 반미감정을 촉발시킨 것은 물론, 태평양 건너 많은 미국인들에게 혐한(嫌韓)감정의 씨앗을 뿌렸다.
이들이 외친 [주한미군 철수] 구호는 국가안보 기틀을 흔들어댔고, 많은 외국투자가들의 발길마저 돌려놓았다. 사고로 숨진 두 여중생의 혼령을 추모하기 위한 '촛불시위'는 한 두 차례로 끝났어야 할 일이었는데도 1년 이상 지속되면서 '반미운동'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 그 자체였다.
촛불시위를 주도한 [여중생 범대위]는 국민적 축제 형식의 이벤트성 시위를 통해 6·25 한국전쟁 당시 자유 대한민국을 빈사상태에서 살려낸 혈맹국 미국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점령자> <조국통일의 장애물> <전쟁 광신국(狂信國)> 등으로 몰아세우며 우리의 전통적인 대미인식을 바꾸어놓는 일에만 급급했다. 이들은 북한의 서해교전 도발 1주년을 맞고도 김정일정권에 대한 원망이나 우리측 희생자에 대한 애도도 철저히 외면했다. '두 여중생 사망'은 추모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반미(反美)를 위한 이념적 수단이고 빌미였던 것이다.
미국은 과연 그들 주장대로 한국의 군사정부를 부추기고 민주화를 억제했으며, 한국 경제를 종속경제로 만들어 시장개방을 강요해온 나라인가? 역대 미국정부는 남북 대치의 특수상황에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국의 자유를 지킨다는 안보의 큰 틀 안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우방으로서 할 수 있는 '간섭과 압력'을 행사해 왔을 뿐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여전히 자유민주주의의 모델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우리의 '수출입국(立國)'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의 거대한 시장개방 덕분이었고, 미국의 시장개방 요구 역시 호혜적 차원에서 세계 자유무역질서에의 동참을 위한 강력한 권유였을 뿐, '자국상품의 수출시장 개방' 강요로 볼 일이 아니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두 여중생의 희생은 문자 그대로 [사건]이 아닌, 훈련 중에 일어난 단순한 [사고]였음에 비추어 촛불시위는 이 나라 10대의 순진한 감상주의에 불을 지른 드라마였고, 반세기를 이어온 한미혈맹 관계에 지울 수 없는 오점(汚點)을 남긴 반란이었다. 이를 정통보수의 관점에서 보면 친북용공세력에게 공공연한 반미(反美)운동의 물꼬를 터준 효시일 것이고, 친북좌파 입장에서는 저들의 통일전선전략인 [상징 조작술]이 성공을 거둔 현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최초 두 여중생에 대한 추모로 시작된 촛불시위는 반미(反美)의 불을 지펴나가는 과정에서 '주둔국지위협정(SOFA)개정' 요구로,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그리고 '이라크 파병 반대'로 이어간 것 외에도 지난 2002년 말의 대통령선거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한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향후 이같은 흐름이 지속된다면 반미주의 → 미군철수 요구 → 한미동맹관계의 파국 → 전쟁방어력의 공백 → 막대한 군사비의 추가부담·군 복무기간 연장 → 국론 분열 및 이념 갈등 심화 → 안보불안·사회불안 가중 → 국가위험도 상승 → 총체적 국가 위기로 이어질 것임은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이는 곧 북한당국이 오매불망 희원하는 일이 아닌가.
촛불시위는 30대의 '몰(沒)이념적 반미'가 20대의 '무구(無垢)한 감성'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시간이 흐를수록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저들의 통일전선전략인 [상징성 조작]의 극치였다. '촛불시위'가 가능했던 것은 기실 남북한이 첨예하게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이라는 전쟁억제력이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돌이켜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한미동맹체제는 싫든 좋든 주권국가로서의 생존유지와 국민복리 증진을 위한 사활적(死活的) 국가이익이 걸려있는 절대적 사안(事案)이다. 안보현실을 외면하는 우매함을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 촛불시위 기념탑은 대한민국 상징의 거리 광화문 일대를 '반미운동의 발원지'로 각인하고자 한 폭거였던 것이다. 따라서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가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꽃다운 나이에 간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을 승화시키는 올바른 방법은 반미감정의 자극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호혜적인 양국 관계를 재정립하여 북핵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진정한 남북 화해협력시대를 열어 사실상의 평화통일을 달성하는 길일 것이다.
'여중생 범대위'가 국민들의 비판을 간과하고서 궤도를 벗어난 '반미'를 심화시키는 불법과 폭거를 계속한다면 그 결과는 국민들로부터 영원히 버림받는 일뿐임을 명심해야 마땅한 일이다. (konas)
정 준(코나스 논설위원)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