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령장전투 전승기념행사 거행
경북 상주 화령초교 송계분교에서 화령장 참전자, 6·25참전자, 주민·학생·군인 등 1,600여명 참석
Written by. 정미란
입력 : 2009-07-21 오후 5:41:18
6·25참전유공자회 김경찬 총무국장은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으면 최선이지만 어쩔 수 없이 전투를 해야 하면 열세의 병력으로도 최소의 피해로 최대의 전과를 올려야 하는 것이 군사작전에 절실히 요구되는 바, 바로 화령장 전투가 이에 모범이 되는 전투”라며 이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화령장 전투는 북한군에게 연전연패하며 후퇴하던 전쟁 초기 1950.7.17~25에 국군17연대가 화령장 일대에서 북한군 15사단을 맞아 단 4명의 전사자만을 기록한 가운데 적 600여명을 사살하고 적 박격포 36문, 대전차포 9문, 기관총 53정, 소총 1,400여정 등을 획득하는 전과를 올린 전투로서, 대구를 조기에 점령하려던 적의 기도가 분쇄되고 국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획득하는데 크게 기여하여 17연대 전 장병이 1계급 특진한 대첩이다.(konas)
화령장전투 전승기념행사가 21일(화) 오전 11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인 경북 상주시 화서면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에서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회장 박희모)의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기념식은 이종정 국가보훈처 차장, 당시 전투 참가자와 6·25참전자, 각계대표 및 지역대표, 주민, 학생, 군인 등 1,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식전행사, 국민의례, 전사소개, 기념사, 격려사, 6·25의 노래 순으로 약 30여 분간 진행되었으며, 기념식 후 참전자들의 안내로 기념식장인 송계분교 앞 계곡을 따라 당시 전적지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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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유공자회 김경찬 총무국장은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으면 최선이지만 어쩔 수 없이 전투를 해야 하면 열세의 병력으로도 최소의 피해로 최대의 전과를 올려야 하는 것이 군사작전에 절실히 요구되는 바, 바로 화령장 전투가 이에 모범이 되는 전투”라며 이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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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장 전투는 북한군에게 연전연패하며 후퇴하던 전쟁 초기 1950.7.17~25에 국군17연대가 화령장 일대에서 북한군 15사단을 맞아 단 4명의 전사자만을 기록한 가운데 적 600여명을 사살하고 적 박격포 36문, 대전차포 9문, 기관총 53정, 소총 1,400여정 등을 획득하는 전과를 올린 전투로서, 대구를 조기에 점령하려던 적의 기도가 분쇄되고 국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획득하는데 크게 기여하여 17연대 전 장병이 1계급 특진한 대첩이다.(konas)

<화령장전투 참전용사들=6.25전쟁 당시 '화령장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국군 제17보병연대 소속 참전용사들이 21일 전투 현장인 경북 상주 화서면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에서 열린 전승기념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듣고 있다>
코나스 정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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