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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5차 공판 방청기

Written by. 정창인   입력 : 2004-01-10 오전 11: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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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 형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송두율에 대한 제 5차 공판이 2004년 1월 6일 오후 2시 서울 지방 법원 형사 합의 24부 311호 법정에서 열렸다.

이 날 공판은 오길남씨의 비공개 증언을 제외한 공개 재판만 해도 장장 5시간에 걸친 긴 재판이었다. 장시간의 재판임에도 불구하고 방청석을 매운 방청객은 시종 자리를 지켰다. 국민의 송두율 재판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들은 변호인측 증인들이었으며 모두들 지식인이었다. 이 재판을 지켜보면서 지식인들의 위선과 부도덕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함을 느꼈다. 이 날 오길남씨가 마지막으로 검찰측 증인으로 나왔으나 비공개로 열려 참관할 기회가 없었다.

가장 먼저 증인으로 심문을 받은 사람은 유영구 전 중앙일보 북한문제 전문기자였다. 변호인측 심문의 초점은 송두율이 북한의 정치국 후보위원임을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송두율이 1995년 출판한 자신의 저서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에서 김철수를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표기한 것이 자신이 후보위원임을 자인한 것이라는 검찰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었다. 북한이 정치국원이나 후보위원 명단을 한번도 공개한 적이 없기 때문에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소위 크렘린연구방법(Kremlinology)으로 알려진 방법을 사용해 북한의 권력 서열을 추론할 따름이며 공산국가에서 장례위원 서열이 바로 권력서열이라고 인정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송두율 자신이 만약 김철수가 맞다면, 그 자신이 출판한 책 속에 김철수를 정치국후보위원으로 기술한 사실보다 더 정확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본인의 기록보다 제 3의 학자의 해석이 더 증거능력이 있다고 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두 번째 변호인측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길승흠 전 한국정치학회 회장이었다. 그는 통일학술회의는 "내가 만들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검찰에 요청하여 증언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1994년 독일 베르린에 갔을 때 "송두율교수가 북한과 잘 통한다는 말을 듣고 수소문하여 그를 만났다"고 말한 뒤, '통일학술회의가 북의 지령을 받은 송씨에 의해 주도됐다'는 검찰측의 주장에 대해 '통일학술회의는 자신이 구상하고 주도해서 성사된 것이며 북한의 지령에 의해 개최된 것은 아니다'고 반박하였다.

단지 북측 학자의 참가를 주선하는 "중간역할"을 송두율이 담당하였고 그것이 고맙기만 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하였다. 토의 주제나 참가 학자의 선정 등도 자신이 주도해서 이루어 졌으며, 예를 들어 최장집 교수도 자신이 "집어넣었다"고 증언하였다. 또한 그는 이러한 남북학자의 교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통일에 기여하게 된다고 증언하였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 동안 북한과 접촉한 학자들의 수는 엄청나게 많다. 이들은 모두 북한과 접촉하는 대가로 상식을 초월하는 액수의 현금을 갖다 바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중에는 자신들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무언가 '업적'을 쌓기 위한 수단으로 북한을 이용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개인적 성취에 대한 욕망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김정일 군사독재정권을 인정하게 된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이들은 김정일 독재정권의 반역사성과 반민족성 그리고 부도덕한 실패한 정권이라는 사실은 무시한 채 오로지 자신들의 개인적 업적 쌓기에만 열을 올려 결과적으로 북한 주민의 고통만 연장시키고 자유민주체제로의 통일의 기회를 잃게 된다는 사실에는 무감각하다.

길승흠 교수도 통일학술회의를 개최한 자신의 개인적 업적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결국 북한 정권의 부도덕성을 외면하고 있는 수많은 지식인의 위선의 한 단편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음으로 증언을 하게 된 사람은 독일인 라이너 베르닝(Reiner Werning)이었다. 그는 송두율과 함께 88년 올림픽 대회 직전에 『평화로운 게임이 될 수 없는 나라, 남한』(Kein Land fur freidliche Spiele, Sudkorea)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다. 그는 시종일관 이 책은 한국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취지로 쓴 것으로 88올림픽을 반대하기 위해 출판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한번도 88올림픽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책의 제목이 분명히 남한이 올림픽 게임을 치를 만하지 못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줄곧 자신은 "88올림픽을 반대한 적이 없다"는 애매한 답변만 늘어 놓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그의 진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는 마지막 발언 기회에서 "한국은 두 번의 비극을 맞고 있다.

하나는 1910년부터 45년까지의 일본점령이고 다른 하나는 분단과 송두율, 윤이상 같은 사람"이라고 하여 그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다. 사실 일제의 식민통치에 버금가는 비극이라면 북한의 실패한 군사독재정권과 북한주민의 비인간적 생활이 아니겠는가?

나는 여기 또 한번 지식인의 위선을 본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자신이 저술한 책의 제목이 분명하게 남한이 올림픽 게임을 치르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올림픽 게임을 반대한 적이 없다는 애매한 답변으로 일관하는 그의 학자로서의 양심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까?

그가 독일한국협회의 회장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자신의 정치적 편견에 따라 한국을 독일에 편향적으로 소개하고 있을 것이란 점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마지막으로 변호인측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은 박호성씨였다. 그는 송두율을 김철수라고 주장한 황장엽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들이 제출한 공소장의 내용에 대해서조차 잘 알고 있지 못하였으며 송두율에 관한 기본 정보조차 잘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는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하였지만 항소를 포기한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당시 소송을 제기한 민변에서 승소하여 배상을 받으면 민변의 활동자금으로 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였다. 결국 민변도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힌 셈이다.

이번 재판을 방청하면서 느낀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송두율에 대한 재판은 중대한 의미가 있다. 우선 송두율을 국가의 기본법을 어긴 이적행위자로 재판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 지식인으로서 수행한 학문활동의 내용에 대한 재판을 하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송두율이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어 국제적 성격도 가지고 있는 만큼 재판의 공정성이 무척 중요한 만큼 그에 걸맞는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제와 관련하여 재판과정이 좀 더 명확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먼저 송두율을 분단된 조국의 이념 갈등에 희생된 한 '경계인'으로 취급하고 그를 한 희생자로 동정하려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송두율을 한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부각시키려한다. 그러나 우리는 고뇌하는 한 지식인을 심판할 수도 없으며 또한 심판하려 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송두율이 남한과 북한의 어느 곳에 충성을 바쳤느냐가 중요하다.

그가 아무리 남한의 군사정권을 싫어하여 북한을 선택하였다고 하드라도 만약 그가 북한에 충성하였다면 그것은 조국을 배반한 이적행위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가 송두율을 고민하는 지식인으로서가 아니라 적과 내통하고 협력한 이적행위자로서 처벌하는 것이 이번 재판의 목적이라면 그가 노동당에 가입하고 김일성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북한으로부터 공작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아무리 조국의 정치나 정권 또는 정권 담당자가 싫더라도 그들과 투쟁하는 것과 조국을 배반하는 것은 엄연히 의미가 다르다.

다른 하나는 송두율이 만약 남한의 독재정권을 혐오하였다면, 그리고 그가 진정 자유와 인권을 걱정하는 양심 있는 지식인이라면, 북한의 군사독재정권의 반역사성과 반민족성에 대해서도 용감하게 나서서 고발하고 싸웠어야 한다. 단지 남한 정부가 마음에 안 든다고 북한의 독재정권에 충성하였다면 이는 이적행위 이전에 지식인으로서의 기본적 양심을 저버린 행위다.

다음으로 재판의 진행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어야 한다. 이 날 공판에서 웃지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송두율이 검찰측의 번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 용어인 "악순환"을 "악마의 굴레"로 잘못 번역하고 이에 바탕을 두고 검찰이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짐작컨대 검찰측에서 송두율의 글을 번역하도록 의뢰한 사람이 아마 사회과학자가 아닌 독문학자였던 것 같다. 사회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악순환을 악마의 굴레로 번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할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측에서 독일인 베르닝씨의 통역인으로 나온 사람에게 "Kein Land"의 의미가 "부적합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뜻인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이에 대해 통역인은 "내가 그런 질문에 답할 자격이 있느냐?"고 반문하였다. 본인의 생각에 그 용어의 의미가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하다면 즉흥적으로 통역인에게 질문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별도로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재판이 중요한 만큼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원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너무도 중대한 재판이 하나의 희극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이 날 재판정에서 한 대선배님을 뵙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 선배님의 얼굴에서 세월의 잔인함을 목격할 수 있었다. 평생 늙을 것 같지 않던 그 동안이 어느 새 주름으로 덮혀 있었다. 그냥 헤어지기 섭섭하여 우리는 근처 설렁탕 집에 들려 저녁식사를 함께 하였다.

"내가 오늘 이 재판에 나온 이유는, 지난 번 공판에서 송두율이 북한 정치국후보위원인지의 여부에 대해 북한 노동당에 문의해보자는 변호인측 주장에 대해 재판부에서 논의해보겠다고 답했기 때문이야. 간첩을 보낸 북한이 그런 질문에 대해 사실대로 답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게 큰일이야." 선배님은 목에 힘을 주어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런데 내가 동기생이나 동창들에게 꼭 이번 재판에 나오라고 했는데 아무도 안나왔어. 장군들이 이래서 되겠어?"

생각해보면 친북세력은 직업혁명가가 이끌고 있지만 보수세력은 모두들 자신의 개인적 출세에만 급급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난관을 과연 극복할 조직적 그리고 대중적 힘을 모을 수 있을는지 사실상 걱정된다.

이 날 재판에서도 나는 언론을 통해 무수히 낯에 익은 한 인물을 발견하고 온 몸이 전율에 휩싸였다. 바로 문정현 신부가 방청석을 유유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겉으로 내건 직업은 가톨릭 신부이지만 저 사람의 진짜 직업은 혁명가, 선동가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얼굴에서는 무언가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 기운이 있었다.

저 사람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문정현이 유유히 방청석을 돌아다니듯이 그 날 송두율은 의기양양하게 재판 과정에 수시로 의사표현을 자유롭게 하였다. 내 옆자리에는 독일 대사관 직원이 나와서 일일이 재판 과정을 메모하고 있었다.

독일 국적을 가진 송두율에 대한 정당한 관심의 표현이리라. 이런 상황을 보면서 나는 자유를 파괴하기 위해 자유를 사용하는 반자유주의자의 자유도 자유란 이름으로 보호해야 하는 현실적 한계에서는 모든 자유인의 현명하고도 단호한 선택만이 자유를 지키는 힘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안보연구소 정창인 박사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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