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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체제의 모순은 북한법 안에 있다(2)

1917년 10월 혁명 후 도미노 현상처럼 확장되어 가던 공산세계가 1세기도 지탱하지 못하고 붕괴하게 된 것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결과

Written by. 전영일   입력 : 2009-09-18 오전 10: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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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헌법을 통해 본 남․북한 국가체계와 권력구조

 (1) 대한민국

 헌법 전문 요약: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민국은 3․1운동에 의한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서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헌법1조.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엄격한 3권 분립 국가로서 국회: 헌법40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정부: 헌법66조 ①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국가를 대표한다. ②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③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법원: 헌법101조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한 법원에 속한다

 (2)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서문 요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김일성 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사회주의 조국이다. 김일성 동지는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시다. 김일성 동지를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높이 모시며,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시켜 나갈 것이며, 국가건설 업적을 법화 한 김일성 헌법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여, ‘인덕정치’로 인민들을 보살피시고 사회를 일심단결된 하나의 대가정으로 전변시키시었다.

 헌법3조 사람중심의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 11조. 조선노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
 노동당 규약 서문): 조선노동당은 맑스-레닌주의 당이며, 당명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성하는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

 (3)헌법을 통해 본 남․북한 국가체계와 권력구조에 대한 평가

 1)대한민국 건국이념(建國理念)과 권력구조

 1947년 11월 14일 유엔총회는 유엔한국임시위원단 감시 하에 1948년 5월 31일 이전에 총선거를 실시하여 한반도의 단일정부를 수립하며, 점령군(占領軍)은 가급적 속히 철수토록 하는 결의를 57개국 중 43개국의 찬성으로 가결하였다.

 이승만은 소련의 세계 공산화전략의 일환으로 김일성을 이용하여 북반부를 공산화 기지로 하여 무력 적화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소련의 전략전술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에 1948년 5월 10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입북을 소련 주둔군과 북측이 거부함으로써 UN감시(監視)가 가능한 남측(南側)에서만의 총선을 실시하여 제헌의원 198명을 선출하였으며, 제헌국회에서 선출된 이승만 대통령은  8월 15일 광복절에 대한민국 건국을 만방에 선포하였다.
 
 대한민국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3․1운동에 의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일제 식민지 이전의 모습인 태극기를 흔들며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의 애국가를 계승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건국이념으로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단군조선 이래 우리나라는 931회의 외침을 당하면서 장정은 군역(軍役)과 노역(勞役)으로 동원되고, 벼슬아치들은 수탈하니 근 반세기동안 보리 고개를 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조(李朝) 21대 영조(英祖) 31년에 새 왕비(王妃)를 간택하는 마지막 물음에서 ①가장 깊은 곳은? 마음, ②가장 아름다운 꽃은? 목화 꽃, ③가장 높은 고개는? 보리 고개라고 답한 규수가 정순왕후였다.

 1961년 5․16 군사혁명을 쿠데타로, 박정희 대통령을 군사독재자로 매도하지만, 많은 젊은이의 희생으로 쟁취한 4․19 민주혁명 후의 정치 사회상과 남․북간의 군사적 대치상황을 안다면 박정희 군사독재를 탓하기 전에 당시의 내노라 하던 정치인과 사회 지도층 인사부터 탓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독재에 대하여 북한부문에서 다시 논하겠으나 진짜 독재자는 국민을 배부르게 하고 민주주의의 발전 등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화라는 사치(奢侈)를 생각조차 할 수 없는데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보리 고개를 극복하고 후일 대통령이 된 사람들조차 극구 반대하였던 경부고속도로의 건설 등으로 오늘의 발전하는 한국을 있게 하였다.
 이것 역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로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이념(建國理念)과 권력구조

 1848년 2월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 즉 세계 공산화에 목표를 둔 것이다.
 1946년 2월 8일 김일성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 수립을 선포하고, 지주의 토지를 무상으로 빼앗아 무상으로 소작인에게 나눠주는 토지개혁, 산업 국유화, 교육개혁 등을 포함하여 20개 정강을 발포함으로써 사실상 정부업무를 시작한 것이다.

 또한 눈만 뜨면 학습회 독보회로 공산주의 우월성을 학습하였으며, 10월1일 남노당에 의한 대구폭동사건이 발생하였음도 북한 인민에게 소개되었다.
 이때 3․8선을 중심으로 한 육로와 해로의 통제가 강화되었으며 소련군은 3․8선을 통치분계선으로 관리했음을 알 수 있다.
 1948년 2월 8일 김일성은 소련의 지원으로 3,000여명의 군사고문단, 소련 출신 한인을 중심으로 제 105전차여단 창설, 아울러 해․공군 창설을 비롯하여 내무성 산하 보안대 ․ 경비대 등의 이름으로 막강한 예비대를 확보하여 인민군(人民軍)을 창설하였다.

 1948년 4월 19일 김구는 남측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김규식과 함께 평양에서 개최한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참석하였다.

 김일성이 주관한 정치회의에 참가할 56개 정당 사회단체 명단에는 남측(南側) 우익(右翼)진영에 속하는 정단 사회단체는 단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김구와 김규식이 추구한 남북협상은 애초부터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목표로 한 김일성과 소련측의 의도를 막을 수 없었으며 결국 김일성에게 명분(名分)만 주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한편 남측 사회는 극심한 좌․우익간의 갈등을 겪으면서 4월 3일 여순반란사건과 연계되어 제주폭동사건이 발생하였다. 김일성은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 수립을 선포하고 정부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면서, 남측이 1948년 8월 15일 단독정부를 수립하였다는 구실로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북한은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노동당의 총서기 김일성의 사회주의(공산주의) 1당 독재국가이다.

 공산주의 독재자는 인민을 다루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는 인민이 배부르면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사치품을 찾게 되기 때문에 배가 고파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평등이라는 좋은 말로서 의,식,주(일율적인 배급제도)에서 개인재산(個人財産)을 가질 수 없으며, 교육에서는 낮은 수준의  평등교육을 실시하며, 영리한 청소년이 발견되면 국가가 별도 관리하게 된다.

 셋째는 놀고먹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 인력관리 면에서 보면 매우 불합리하지만 놀아도 직장의 조직 안에서 임의적인 개인행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며 노동당 산하 조직인 직업총동맹에 의무적으로 가입할 뿐 노동삼권(勞動三權)은 없다. 넷째로 반듯이 복수 근무를 시킨다. 업무상 접하는 사람 간에 개인적인 언행(言行)을 할 수 없도록 상호 견제 내지 감시를 시키기 위함이다.

 즉 인민을 알게 모르게 세포조직망(細胞組織網) 속에서 통제하게 되며, 조직별로 주(周) 또는 월(月) 총화(總和)사업(과거에는 자아비판(自我批判) 또는 호상(互相)비판이라 하였음)으로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한다.

 이렇게 통제를 하여도 북한에는 10여 곳의 강제노동, 또는 정치범 수용소에 25만 ~ 30만 명이 수용되어 있으며, 탈북자도 수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20세기 후반까지 동서냉전시대에 미․소가 쌍벽을 이루었으며, 소련은 노동자의 천국을 건설한다고 일으킨 1917년 10월 혁명 후 도미노 현상처럼 확장되어 가던 공산세계가 1세기도 지탱하지 못하고 붕괴하게 된 것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정치 경제 정책 등으로 인한 결과임을 친북 세력과 김일성 주체사상파들이 깨우치길 바라며, 법과 질서를 지키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한다.(konas)

 전영일(민주평통자문위원/안보교수)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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