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대북정책과제와 한반도의 통일안보 조망
이제 우리는 북한의 대화 제의를 보면서 도대체 북한이 무슨 계략을 갖고 어떤 이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는가를 찬찬히 살필 수 있어야 한다
* 본 내용은 30일 (재)한국통일진흥원 사이버통일안보연구소와 (사)한·미안보연구회, 대령연합회가 공동주최한 ‘제7회 사이버통일안보대토론회’에서 통일연구원 전성훈 박사의 발제문 요약입니다.<편집자 주>
1. '현정은의 합의'의 허와 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을 방문해서 아·태평화위원회와 5개항의 공동보도문에 합의했다. 현회장 방북기간 중 136일간 억류되었던 현대아산 직원이 석방되고,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및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북측의 긍정적인 입장을 확인할 것은 중요한 성과이다. 그러나 현회장의 방북에는 이런 성과를 압도할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
현회장이 정부와의 사전협의도 없이 순전히 개인자격으로 이번 합의를 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산가족 상봉뿐 아니라 금강산·개성·백두산 관광을 추진하고 개성공단을 활성화하는 것 모두 정부의 결심과 관리가 필요한 사안들이다. 투자야 기업이 결정할 사안이지만 사업에 참여하는 국민 개객인의 신변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정부의 몫이기 때문이다.
특히 금강산과 개성에서 우리 국민이 무고하게 피격당하고 무단 억류된 사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때에 관광 재개에 합의한 것은 무책임하다. 금강산 피격사건의 경우 정부의 3대 요구사항(진상규명, 사과 및 재발방지 제도 마련)이 관철되지 않으면 관광을 재개해선 안된다. 개성공단 역시 똑같은 억류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북한 땅에 머무는 우리 국민이 북한정권의 입맛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억류되고 희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회장의 방북을 지난 1994년 핵위기 당시 김일성을 만난 카터나 최근 억류된 여기자 석방을 위해 김정일을 만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 비유하기도 한다. 카터와 현회장의 방북에 유사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제재를 강화하던 와중에 일어나 커터의 개입은 대북압박의 동력을 떨어뜨리고 북한의 핵개발 의지도 꺾지 못했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카터의 방북에 당혹과 분노를 느꼈고 일부 관리는 커터의 행동이 반역에 가깝다는 혹평을 했다. 클린턴 대통령도 분노한 나머지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넘어온 카터에게 워싱턴을 방문하지 말고 전화도 하지 말라고 얘기했을 정도다.
반면에 여기자 석방을 위해 민간인 자격으로 방북한 클린턴은 인도적 목적에 충실하게 행동했다. 여기자 둘만 조용히 데러왔을 뿐 북한과 합의한 사항이라며 발표문을 내지도 않았다. 김정일과 면담내용을 미국 정부에 브리핑하긴 했지만 오바마 행정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절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마도 개입으로 곤혹스러웠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각종 제제와 압박으로 돈에 쪼들인 북한이 한 기업가를 이용해서 돈벌이가 되는 사업 보따리를 우리 정부에 던진 꼴이다. 현회장의 방북이 남북대화의 새로운 관행이 되어서는 안된다. 남북대회는 목표만큼이나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다. 6·15 정상회담이 돈을 주고 산 회담이라고 비판받는 것도 절차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과 유엔의 일치된 대북제재가 북한으로 하여금 더 이상 남북대회를 거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현회장 방북의 가장 큰 성과이다.
2. 남북대회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북한 당국이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과의 협상의사를 표명하면서 대화를 통해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의 북핵 협상과정을 돌이켜 볼 때, 오늘의 기대감 역시 물거품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북핵 협상이 보여준 가장 큰 특징은 대화초기에 부풀었던 장밋빛 희망이 서서히 실망과 좌절로 바뀌는 패턴의 반복이었다는 점이다. 간혹 지루하게 계속된 협상이 어렵게 합의문을 만들어내면 우리는 마치 핵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자축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그 합의문은 휴지조각이 되거나 이행중단 사태가 발생하기 일쑤였다. 대화의 와중에도 북한의 핵개발은 착착 진행되었고, 결국 대화가 핵 개발의 시간을 벌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가장 큰 원인은 물론 북한 정권의 집요한 핵 개발 전략 때문이다. 북한은 김일성이 1992년 2월 남북고위급회담 남측대표단과의 오찬석상에서 밝힌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입장을 공식 정책으로 표방하고 김일성 사후에는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고까지 선전해왔다. 그러나 뒤에서는 남한과 합의한 비핵화 공동선언, 미국과 합의한 제네바 기본합의, 그리고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모든 약속을 위반하며 핵개발에 매진했다. 겉으로는 김일성의 비핵화 유훈을 지킨다면서 뒤에서는 핵을 개발했고, 이제는 조건만 맞으면 핵군축을 할 수도 있다며 대화를 제의하는 것이다.
사실 북핵 협상이야말로 남북분단 이후 북한 정권이 구사해 온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전략이 철저하게 먹혀든 결정판이다. 북한은 1948년 4월 김구 선생 등 남한 지도자를 초청해서 남북연석회의를 하면서 비밀리에 6·25전쟁을 계획하고 준비했다.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을 하고 7·4공동성명에 서명하면서 뒤에서는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남과 북이 핵재처리시설을 갖지 말자고 약속하며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하던 그 시점에 이미 북한은 공장규모의 재처리시설을 가동해서 10-14kg의 핵탄두 제조용 플루토늄을 손에 쥐었다. 미국과 제네바 합의를 협상하는 와중에 파키스탄에 손을 벌려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6자회담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 시리아에 5MWe 원자로를 수출하고 핵기술을 이전함으로써 레드 라인을 넘어섰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와중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계속되었다.
북핵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거나 기피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대화의 장이 북한에게 핵 개발의 시간을 벌어주는 기회가 되거나 국민들에게 근거 없는 기대감과 안보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북한의 대화 제의를 보면서 도대체 북한이 무슨 계략을 갖고 어떤 이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는가를 찬찬히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북한 동포는 뜨거운 가슴으로 포옹하되, 북한 정권과의 대화에는 냉철한 머리가 필요하다.
3, 일본 핵을 자초하는 북한 핵
지난 6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소 수상이 “북한 핵문제가 심각해지면 일본 내부에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에서 일본수상이 직접 이런 얘기를 꺼냈다는 것이 특이하지만, 사실 ‘북한 핵에 대응한 일본의 핵 보유’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본 1967년부터 핵무기를 제조·보유·반입하지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견지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주기적으로 해왔다. ‘비핵 3원칙’을 선포한 사또 수상도 핵무장에 대한 비말 검토를 지시한 적이 있다. 나까소네 전 수상이 방위청장관이던 1970년에 발표된 방위백서는 “소규모 헌법상 공격용 핵을 갖는 것은 어렵지만 자위를 위한 소규모 핵보유는 가능하다는 것이 일본 정·관계의 저변에 깔린 인식이다.
두 발의 핵무기로 패전국이 된 일본국민들의 핵에 대한 저항감, 즉 '핵 알레르기'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핵무장과 군사대국화를 지지하는 의견은 전후 일본사회에서 쉽게 표출되기 어려웠다. 평범한 일본 국민들의 이런 인식을 바꿔놓은 것이 바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다.
1993년 5월 북한이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면서부터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북한 위협론’이 일본 국민들에게 먹혀들기 시작한 것이다. 1998년 8월 대포동미사일 시험은 '북한 위협론'이 일본사회에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되었고, 2006년의 1차 핵실험으로 ‘북한 위협론’은 활짝 꽃을 피웠다. 지난 4월 북한이 3차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일본 전역이 비상상태였지만 일본 국민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오죽하면 자위대 군인들이 김정일의 초상화를 향해 절을 한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라는 더 큰 화를 자초하는 화근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북핵문제의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은 북한의 핵보다 정권붕괴를 더 걱정한다. 따라서 북핵을 이대로 방치하면 중국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중국 지도부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은 맞다. 중국전문가들이 일본의 군사적 움직임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아소 수상의 핵무장 발언이 중국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발언들이 축적되어 일본의 핵무장이 기정사실화되는 상황, 즉 일본 핵이라는 ‘절대 악’이 ‘필요 악’으로 둔갑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북한의 핵 보유를 예방하는데 실패한 우리에게 남은 현실적인 대안은 ‘북 핵으ㅢ 관리’이다 북한 내부의 변화를 통해 북한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핵무기를 일거에 없애겠다는 성급한 마음에서 북핵문제에 “올 인”하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정부 차원에서 일본의 핵무장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선을 긋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4. 북·미 대화와 한국 안보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대사가 미국과의 대화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사흘 뒤인 7월 27일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6자회담을 거부하고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호ㅘ 방식은 따로 있다”면서 우회적으로 북·미 직접대화를 촉구했다. 유엔제재를 주도하면서 ‘항상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온 오바마 행정부는 6자회담이 유효하다는 전제하에,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마주보면 달리던 두 열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것처럼, 북핵위기는 충돌국면에서 또 한 차례의 협상국면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이 빨라지고, 적어도 금년 가을부터는 대화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9월 말에는 ‘150일 전투’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자축하는 축제분위기가 연출될 것이고, 10월 6일 평양에서 치러질 북·중 수교 60주년 행사를 통해서 북한정권이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과시하게 될 것이다. 결국 ‘150일 전투’의 성공과 북·중 관계의 강화를 바탕으로 내부를 단속한 북한이 본격적으로 미국과의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미국 역시 북핵문제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야 할 이유가 있다. 바로 내년 5월 개최될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 때문이다. 5년에 한 번씩 열린는 NPT평화회의는 조약의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장래를 평가하는 중요한 회의인데, 북한은 NPT 회원국으로서 이 조약에서 탈퇴하고 핵무기를 개발한 나쁜 선례를 남겼다. 이란이 북한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북핵폐기와 북한의 NPT 복귀는 핵비확산 체제가 와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달성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특히 ‘핵무기 없는 세계’를 정책비전으로 표방하고 러시아와 추가 핵군축에 합의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NPT 체제의 유지는 중요한 정치적 이해가 걸려있는 문제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NPT 체제가 강화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북핵문제의 해결이 중요한 조건이 된다. 즉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서 북한의 협조가 절실하게 필요하며, 북한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대화 제의가 핵을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고, 북·미 대화가 가속화 될수록 한국의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핵문제가 제기된 지난 1990년 이후 북한은 ‘핵을 미끼로 한반도의 안보구도를 바꾸겠다’는 일관된 핵전략을 견지해왔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처음에는 ‘핵개발’ 자체를 미끼로 북·미 대화를 요구하면서 핵을 가진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미동맹의 폐기를 요구했었다. 핵개발이 노골화되지 않았던 1980년 손에 쥔 다음부터는 미국과의 대등한 핵군축 회담을 제의하면서 요구사항도 동북아 주둔 미군의 핵위협 제거로 확대했다.
제2차 핵실험을 통해서 김정일 정권의 목표가 핵보유라는 사실을 미국도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 없는 세계’를 표방하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면 반신반의하며 북·미대화에 응할 것이다. 핵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김정일과 북핵을 인정할 수 없는 오바마 사이의 타협점은 핵무기와 핵시설 100% 제거되었다는 것을확인하기 어려운 ‘어정쩡한 북핵 폐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 대가로 북한은 엄청난 요구를 할 것이고 정치적인 업적을 고려해야하는 오바마 역시 클린턴이나 부시처럼 막판에 북한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할 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은 지금 거론되고 있는 ‘포괄적 패키지’의 기본취지와는 관계없이, 주한미군 대폭감축, 북·미 수교, 한국을 배제한 평화협정 체결 등과 같이 한국의 정치·안보적인 핵심이익이 걸려있는 사항이 될 것이다.(konas)
전성훈(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