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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정례회.상시화 해야

북한의 이산가족상봉등 대미․대남 유화제스쳐가 언제 변덕스럽게 끝날지 모른다.

Written by. 여영무   입력 : 2009-10-03 오후 4: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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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은 지난 8월 28일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추석(10월 3일) 전인 9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열렸다. 오랫만에 열린  이산가족 생사확인과 상봉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로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남북이산가족 100명씩 9월 26일~10월 1일 상봉

이번 남북간 합의로 2007년 10월 이후 2년간 중단됐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약 1년 9개월만에 다시 열리게 된것은 남북관계에서 의미있는 진전이었다. 남쪽 이산가족들 8만명중 일부 이산가족들은 너무 오래동안 참고 기다렸던 혈육의 정을 잠시나마 나눌수 있었다. 하지만 이산가족상봉은 앞으로는 과거처럼 일시적인 이벤트성 아닌 정례화, 상시화하는 것이 인도주의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목표에  다가서는 길임을 남북당국은 깨달아야 한다.

남측 수석대표인 김영철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과 북측 단장인 최성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8월 28일 금강산관광지구 내 금강산호텔에서 2차 전체회의에서 이산가족상봉 합의서에 서명했으며 이합의에 따라 단체 상봉은 2008년 7월 완공된 이산가족면회소에서, 개별 상봉은 종전대로 금강산호텔 등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합의서에 따라 남측상봉자 100명이 9월 26∼28일 먼저 북측 가족을 만난 뒤 9월 29일∼10월 1일 북측 상봉자 100명이 남측 가족을 각각 만나는 순서로 진행 되었다. 정해진 절차 에 따라 남북은 9월 1일까지 각각 상봉자 200명의 명단을 북측에 보내 생사를 확인한 뒤 9월 15일까지 상봉이 가능한 명단을 보내고 9월 17일 최종 상봉자 100명씩의 명단을 교환했다.

2009년 8월현재 이산가족 상봉신청자(생존)는 8만 8000여명인데 이많은 신청자중 어떤 사람을 선정하느냐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대한적십자사는 인원선정의 개관성과 공정성을 위해서 인선위원회를 통해 등록상봉신청자 8만8000여명 중 상봉 후보자 300명(3배수)을 컴퓨터 추첨으로 선정, 이들에게 상봉의사를 물어 후보자 200명을 다시 추려 북측에 생사확인의뢰를 요청했다.

이산가족상봉은 김정일의 시혜아닌 천부적 기본인권

통일부 당국자는 이산가족상봉 합의서와는 별도로는 과거처럼 이산가족 상봉 때 납북자와 국군포로 20명을 생사확인의뢰 명단에 포함해서 이들도 이산가족 상봉때 만나볼수 있도록 했다. 다소 변칙적이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이산가족범위를 유연하게 넓혀서 이산동기를 불문하고 이산의 아픔을 덜어주려는 노력은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정부는 앞으로는 이기적이며 상투적인 북측의 옹고집에 이처럼 저자세 굴욕적인 대응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다. 보다 적극적이며 당당한 태도로 국군포로와 납북자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해서 해결하려는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야 할 것이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지금까지 김정일 위원장이 남쪽동포들에게 무슨 특혜나 베푸는 양 선심 쓰듯 이용해왔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이산가족문제를 대남통일전략전술차원에서, 혹은 이번처럼 경색된 대미․대남관계를 푸는 정치외교적 지렛대로 이용해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은 분초를 다투는 이산가족들의 절박한 심정을 같은 민족으로서 동정하기 보다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측면이 강했다. 고령인 70대이상 남북 이산가족들은 헤어진 부모형제 친척들을 생전에 만나기 위해서 일일천추 기다림의 고통속에 한맺힌 기나긴 세월을 보내왔다.

이번에도 김정일은 올봄 장거리 미사일발사와 2차핵실험으로 6자회담을 내동댕이치고 한반도와 동북아평화안정을 위험에 빠뜨림으로써 혹독한 유엔안보리제재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자 정략적 차원에서 대미․대남유화제스쳐의 하나로 이산가족상봉 카드를 꺼내들었던것이다. 그예로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8월 16일 현정은-김정일 만남에서 합의되었다.

이튿날인 17일 현대그룹과 북한의 대남사업 총괄 기구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사이 '금강산 관광 재개'와 '올 추석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 5대 사업진행합의내용을 공동보도문을 통해 발표함으로써 이산가족상봉 의제가 등장한 것이다. 특히 북한이 현대아산이란 민간기업체를 창구로 이산가족상봉문제를 제기했다는 것도 평소 남측정부를 경시하는 삐딱한 태도이자 통일전략전술차원의 목표와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공동 보도문에 적시된 5대 합의내용은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중단됐던 각 분야의 남북 교류협력을 재개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어 주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정부는 종전과는 달리 서둘지 말고 '비핵 개방 3000'과 공영상생 원칙과 세계보편가치에 따라 일관된 대응방식을 취해야 할것이다.

현-김정일 합의내용은 ∇금강산 비로로봉 관광 개시를 포함한 금강산 관광 재개, ∇남측 인원의 육로통행 및 북한 체류 제한 조치 해제, ∇개성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활성화, ∇백두산 관광 개시,∇추석 금강산 남북 이산가족 상봉 진행 등이다. 이산가족 상봉외 다른 네가지 의제는 한․미․일공조와 안보리 대북제재에 대한 국제공조및 미-북고위층 회담의 추이를 봐가면서 신중히 검토할 문제다. 금강산 관광문제는 박왕자씨 총격사망과 그후 지난 9월에 발생한 북한의 황강댐 무단 방류로인한 임진강 야영객 6명참사사건에 대한 시인사과및 재발방지와 배상문제가 해결된다움 검토될 문제라고 본다.

현정은 회장은 8월 17일 귀환후 "지난 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관련해 김 위원장이 '앞으로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지만 정부는 임진강 참사를 포함 재발방지약속과 함께 제도적 장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금강산 관광재개를 절대 고려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8월 17일 "김 위원장이 16일 현 회장 일행을 오랜 시간 접견하고 현 회장의 청원을 모두 풀어 주었다"며 김위원장의 시혜적 은혜를 선전해댔다.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1985년 이산가족상봉후 24년간 상봉은 고작 1만9천여명뿐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9월의 이산가족 고향 방문 이후 15년간 중단됐다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재개됐다. 이후 2007년 10월까지 매년 한두 차례 상봉이 있었지만 대면(對面)상봉 16차례 1만6212명, 화상(畵像)상봉 7차례 3748명 등 모두 1만9960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감질나게 더딘 상봉 때문에 해마다 고령의 이산가족 3000∼4000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연출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상봉 방식의 근본적 전환이 시급하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상봉문제에도 근원적인 해결처방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정면대응이다.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가족상봉 참가를 신청한 사람만 12만7343명이다. 이 가운데 약 3만9000명이 사망하고 8만8000여 명이 생존해 있다. 지금 같은 방식대로라면 신청자가 모두 상봉하는 데 백년이 걸릴 판이다. 정부가 추정하고 있는 이산가족의 수는 약 767만 명으로 이 가운데 분단을 직접 경험한 이산 1세대는 123만여 명이며, 60대 이상의 고령 이산가족은 69만여 명이다. 특히 80세 이상이 6만3천7백여 명이며, 70∼79세의 고령자는 20만1천여 명 정도로 추정된다. 지금과 같은 거북이 방식으로는 로또복권 당첨보다 더 어려운 이산가족 상봉이 될 것이다. 1년에 한두 차례 이벤트성 상봉으로는 백년하청이다.

북측은 고령이산가족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이들이 금강산 면회소에서 1년 365일 상시로 만날 수 있고 생사확인과 재회가족뿐 아니라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간에도 생사확인의 경우 상시 서신교환을 자유롭게 허용해야 할것이다. 그동안 상봉한 이산가족들간에도 안부서신을 교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할것이다. 북측이 애지중지하는 '민족공조' '우리민족끼리' 슬로건이 입에 발린 구두선이 되지 않도록 입증하기위해서도 이산가족상봉노력에 적극성을 가지고 가속페달을 밟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이번 이산가족회담에서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는 이산가족 교류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등 ‘인도적 문제 해결 3원칙’을 북측에 제시함으로써 북측의 정략적 통일전략전술차원의 의도를 차단한 것은 잘한 일이다. 남측은 특히 북측이 존재 자체를 부인해온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것도 처음 있는 대담한 태도변화로 볼 수 있다.

동서독과 중국-대만의 자유왕래식 이산가족상봉에서 배울때

2차대전후 동서독같은 분단국가는 오랜 분단기간에도 이산가족끼리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그리고 친척방문과 노령세대의 가족재결합을 지속적으로 허용했다. 동서이데올로기 분쟁기간 격렬하게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 대립갈등했던 중국과 대만사이에도 1987년부터 이산가족들의 100% 자유로운 상호방문 길이 활짝 열렸으며 2009년 9월현재 양안(兩岸)사이에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면의 교류협력이 정상적인 국가관계처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로선 참으로 부러운 일이며 특히 시대착오적 폐쇄고립과 민족공멸의 핵폭탄에 집착하는 김정일이 제일먼저 본떠여 할 일이다.

중국-대만사이에는 상호 국가인정을 제외하고는 정상국가간처럼 모든형태의 교류협력이 가능하며 매우 활발하다.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海協會)와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海基會)가 사실상 당국역할을 하면서 이런 교류협력을 주도, 활성화하고 있다. 그 결과 대만인들이 본토인 대륙에서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으며 본토 진출대만 기업인 숫자는 100만명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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