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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와 동맹은 보완관계

Written by. 김용구   입력 : 2004-01-17 오전 10: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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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 오판해 망한 조선 … 국제정치 감상적 접근은 금물

우리는 자폐증 환자인가? 정신적 고아인가? 이런 질문 자체가 외부 세계와 차단하고 국제정치의 암흑기를 자초한 1801년 신유사옥(辛酉邪獄) 이래 지금도 앓고 있는 역사적 질병의 유산이다.

이때부터 조선이 세계를 보는 인식의 틀은 위원(魏源)의 ‘해국도지(海國圖志)’와 서계여(徐繼 )의 ‘영환지략(瀛環志略)’이라는 매우 불완전한 서적들에 의존하게 되었다. 임금과 신하들의 대화에서 중국 이외의 세계에 관해서는 “해국도지에 의하면…”이라는 단서가 어김없이 붙어 있었다.

이런 지적 수준에서 조선은 1866년 프랑스의 침략이라는 엄청난 국가적 재앙을 맞는다. 침략이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이 취한 첫 번째 조치는 나라의 방위가 아니라, 프랑스에 정보를 누출시킨 ‘배신자들’의 색출이었다.

1871년 미국의 침략을 거치면서 고종(高宗)은 드디어 친정(親政)을 하게 된다. 정신적 오지(奧地)에서 나라를 지키려는 고종의 피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고종의 기본 구상은 ‘동맹을 통한 자주’였다. ‘동맹’은 공자의 ‘춘추’에 나오는 말이고, ‘자주’도 전통적인 사대 질서에서 즐겨 사용해 온 오래된 낱말이다.

서로 대립되는 용어가 결코 아니었다. 고종의 동맹론은 외국들과 조약을 체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조약들을 통해 나라의 자주를 보존한다는 정책이었다. 매우 현대적인 구상이었고 근대 국제사회의 본질을 파악한 대응이었다.

동맹을 통한 자주 외교는 1880년 김홍집의 일본 파견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미국에 대한 비밀 접촉 채널이 형성되었고 한반도는 복잡한 국제 문제로 변한다. 고종과 그를 보필한 대신들이, 김홍집이 가져온 ‘조선책략’과 ‘방아론(防俄論)’의 참뜻을 간파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조선책략’은 중국 정책이, 그리고 ‘방아론’은 영국의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고종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이들이 지닌 높은 대외 인식에도 불구하고 동맹을 통한 자주 외교는 결국 실패하였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격변하는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출세에만 급급했던 일부 위정척사파들의 거센 저항 때문이었다.

19세기의 동맹을 통한 자주 외교에서 보듯이 자주와 동맹은 서로 보완되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 두 낱말을 대결시켜 사용하는 것은 실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두 용어를, 미국에 대한 찬·반의 태도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마치 진보와 보수, 또는 개혁과 수구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면 국론의 분열을 초래하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속칭 ‘자주파’이건 ‘동맹파’이건 간에 오늘의 한국 외교 방향을 설정하고 책임지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무엇보다 구 소련이 붕괴된 1991년 이후의 미국은 과거의 미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부 식자들은 ‘미국은 제국(帝國)’이라고 아무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다. 9·11사태 이후로는 새로운 국제사회를 창설하려고 과거와는 다른 국제정치의 명분을 제창하고 있다. 이런 변혁기의 세계 흐름을 빨리 터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새로운 미국’의 등장으로 야기된 국제정치 구조의 변화에 대해 감상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런 태도는 바로 세계 정치의 주변 지역이 갖고 있는 오지 사고의 특징이다.
역사적 질병을 치유해야 할 이 중요한 시점에 언어의 유희에 의한 대립을 조장할 시간은 없다.

갑신년 새해를 맞아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일어난 신유사옥에 이어 갑신사옥(甲申邪獄)으로 확산되지 않으리라 누가 단언하랴.   (김용구·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제공 ; 동아일보 (0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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