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이 회장, "튼튼한 국방 여성이나서 적극 지원하자"
재향여성군인협의회 자문.운영위원 및 시.도 회장단 회의 개최

<김옥이 재향여성군인협의회장이 18일 자문위원·회장단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다.>
'어 퓨 굿 맨(A Few Good Men)'. 1992년에 개봉돼 전 세계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다. 데미무어가 겔로웨이 소령으로 열연했다. 겔로웨이 여군 법무관은 병사 2명의 살해사건에 관해 치밀하고도 이성적으로 진실에 접근하려 한다. 합의 위주로 사건을 무난하게 처리하려는 남자 캐피 중위와 대조되면서 깊은 감명을 줬다.
지구상에서 여군의 역사는 사실상 인류의 역사와 동시에 시작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있어 왔고, 이 전쟁은 여자라고 해서 비켜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전쟁이 있을 때마다 한국의 여성들은 군인 아닌 군인으로서 밥을 짓고, 군수품을 나르며 부상병을 치료했다.
특히 한국 여성들의 전쟁 참여는 행주산성 전투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행주치마로 돌을 날라 전쟁을 도왔다고 해서 행주산성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우리 역사는 어느 나라보다도 여성들의 호국 의지가 강했다.
공식적인 기록에 나타난 여군의 역사는 18~19세기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1년 에스파냐 전쟁 중에 여군이 처음 창설됐다.
그 후 1942년 여군단이 발족됐고, 1948년 10만여 명의 여군으로 성장했다. 1972년 세계 최초로 여군 장군이 탄생했다. 영국은 1949년에 정식으로 여군이 상비군에 편성됐다. 서독·덴마크 등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 여군이 창설됐다.
세계 최강의 여군은 단연 이스라엘군을 꼽는다.
이스라엘 여군은 독립 이전에는 유대 임시정부 밑의 비밀조직에서 남군을 도왔다. 독립 이후에는 아랍전투에서 용맹을 떨쳤다. 국방군의 막강한 헨(Chen·히브리어로 여군)으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군은 1950년 9월 6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여자의용군 교육대가 발족되면서 창설됐다.
1951년 11월 여자의용군 교육대가 해체되고 육군본부 고급부관실 여군과로 편입된다. 그 후 1955년 7월 여군훈련소를 설치했고 1959년 1월 육군본부 여군처로 개편, 1970년 12월 여군단으로 승격했다.
지금까지 우리 군은 2만3000여 명의 여군을 배출했다. 현재 현역 복무자는 장교 2900여 명, 부사관 2500여 명이다. 1만8000여 여군 출신들이 사회에 나가 각계각층 중요한 위치에서 국가 발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특히 2002년 여군 육사출신 장교가 첫 배출된 이후 해사·공사에서도 여성 사관생도가 탄생했다. 지금은 육사 157명, 해사 107명, 공사 출신 153명의 여군장교가 각급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여군에서는 지금까지 5명의 여성 장군이 배출됐다.
현재 예비역으로는 김옥이(62·여군19기·육군대령) 국회의원이 국방위원회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김 의원은 여군 출신들의 모임인 재향여성군인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18일 회장단 회의를 열었다. 여군협의회는 2001년 12월 12일 류석연(예비역 대령) 회장의 취임과 함께 정식 창립됐다. 현재 1500여 명의 회원들이 뜻을 함께하며 여군과 일선 회원들의 권익증진, 그리고 튼튼한 국가안보를 위해 바쁘게 뛰고 있다.
김 회장은 이날 “일찍이 여성의 몸으로 국가안보 전선에 뛰어든 우리 여군협의회가 국가안보의 제2보루인 재향군인회의 일원으로서 튼튼한 국방을 적극 지원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21세기 나라의 성패가 여성 인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미래 학자들은 한결같이 예언한다. 데미무어를 뛰어넘는 한국의 수퍼우먼 2만3000여 ‘여전사’ 출신들. 그들이 활짝 웃을 때 대한민국이 활짝 웃을 것이다. (konas)
이정호(재향군인회 공보관 jungho5118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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