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이라크 파병동의안 늑장 처리. 시민단체 목소리보다 '국익'이 우선이다.
국회 국방위가 전체회의에 상정된 이라크 추가파병안을 두고 시민단체의 방청허용문제로 위원장과 위원간에 실랑이 끝에 결국 산회하고 말았다고 들린다. 동의는커녕 심의 자체가 후일로 미뤄진 것이다. 한차례 정회시간을 틈타 열린 간사협의도 '파행'을 돌려놓지는 못했다. 지난 16일 오후의 일이다.
"파병안은 투명하게 논의되어야 하고 국민에게 논의과정이 가감 없이 전달돼야 한다"는 소신 아래 시민단체 관계자 3명의 방청을 자의로 허용키로 했다는 국회 장영달(張永達?열린우리당) 위원장의 의견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과연 그럴까.
이번 파행은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한 국방위원들의 '못난 처신' 탓이다. 장위원장은 그러고도 "시민단체가 들어와야만 투명한 것이냐" "위원장이 회의를 일방적으로 회의를 주관해도 되느냐"는 국방위원들의 항의에 "방청 허용문제는 위원장의 고유권한"이라고 맞받았다.
국회가 본원적인 사안은 젖혀두고 지엽적인 일로 국가지대사(國家之大事)를 파행으로 이끌 일이 아니질 않은가. 그것은 '일 저지르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행위일 뿐이다. 국민과의 약속은 물론, 나라 체면과 대외신인도가 걸려있는 사안이다.
노 대통령과 정부가 국익을 고려하여 고심 끝에 결정한 추가 파병안이었다.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일을 존중하고 보필하는 것이 여당 출신 위원장의 본연의 몫이거늘, 국회가 시민단체의 방청허용 여부로 늑장을 부리는 것은 이 나라 정치를 시민단체에 맡기는 꼴이나 진 배 없다. 그것이 과연 이 나라 안보를 걱정하는 국회 국방위원들의 모습인가.
우리 국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파병에 찬성하는 국회의원들을 표적으로 삼아 총선에서 떨어뜨리겠다는 시민단체의 정체는 무엇이며, 바로 이 시민단체들이 두려워 상임위원회 전체회의를 파국으로 몰고 간 장영달 위원장은 누구인가.
그는 그간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해 심정적으로 반대하는 듯한 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 '서두를 게 없다'는 투의 파병안 처리방식 역시 그런 사고(思考)에서 유추된 것임을 어림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공정한 의사진행을 위해서라면 국방위원장은 파병의 당위성을 강조해온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의 대표도 당연히 방청에 초치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유독 파병을 계속 반대해온 시민단체만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은 국익이다. 국제사회에 경제규모 세계 12위 국가로서의 위상을 거양하는 일이며, 이라크 민주사회 건설과 전후복구에 참여하는 길이다. 경제적으로는 에너지자원의 확보전망을 높이는 일이고, 군사적으로도 미군의 선진 지휘통제전술을 익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2차대전의 패전국 일본의 파병부대는 '국익을 위해' 이미 사막의 석유시장을 향해 발진했다.
그간 남북 대치의 정전상황에서 미국의 절대적인 지원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전후 반세기동안 평화와 경제성장을 누려온 우리가 미국이 당면한 어려움을 '나 몰라라'하고 외면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더 이상 무임승차는 있을 수 없다.
이제는 서방세계 일원으로서 의연하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정녕 국익(國益)이 아니라, '표밭의 행방'이란 말인가. 이번 국방위원들의 이라크 파병 동의안 파행은 국익보다는 차기 당선을 더 걱정하고 있다는 명백한 반증이다. 국민들이 정치인을 '기득권 유지에 여념 없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명예를 추구하기보다는 '기득권' 지키는 일에 더 집착하고, 시민단체들이 벌이는 '낙선운동의 속죄양'이 되는 불운(不運)을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떤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에게 국가안보를 맡길 수는 없다. 이처럼 '실망스러운 행태'를 일삼는 국회의원을 신뢰할 국민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장영달 국방위원장은 바로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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