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9위 수출국의 아이티 PKO 파견
세계 곳곳을 모두 여행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면 옛 제국의 수도를 우선적으로 방문하는 게 좋다. 볼거리가 풍성하고 과거 풍요의 흔적에 문화의 향취도 그윽하기 때문이다. 런던·파리·베를린·뉴욕 모두 그렇다. 영국박물관이나 루부르박물관을 가 보면 이집트와 그리스 등 중동지역 문화재가 무척 많다는 점에 방문할 때마다 놀라게 된다.
구독일제국 수도 베를린의 페르가몬 미술관도 그렇다. 세계적인 박물관 미술관에 인류의 문화유산이 가득 차 있는 것은 물론 제국주의 시대 군대의 활약에 따른 것이다. 당시 해외파병에는 독특한 현상이 있었다. 군인들 틈에 지질학자에다 고고학자, 역사학자까지 동행시킨 점이다. 이들의 안목 아래 오벨리스크 같은 대문화재가 엄청난 작업 끝에 유럽으로 옮겨졌다.
페르가몬 미술관에도 터키의 고대 헬레니즘 도시 페르가몬의 신전이 통째로 옮겨져 있다. 독일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구입’했다고 적극 안내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다.
후발 신생국이었던 미국은 구대륙 선진국들의 이런 ‘손쉬운’ 방법을 쓸 수가 없었다. 시대가 바뀐 탓이다. 그래도 중동의 고대문화에 대한 동경심은 지우기 어려웠던지 원조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문화재를 매입하는 ‘어려운’ 방식을 택하게 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고대 이집트의 작은 석조 신전이 있는데, 댐 건설을 지원해 주고 옮긴 수몰지역 문화재다.
그러나 19세기께 유럽 제국들 군대의 활약상은 이제 역사가 됐다. 해외진출 군대가 정치·경제에서부터 문화·학술까지 장악하고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던 시대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끝났다. 폭력과 일방적인 힘의 논리가 세상의 흐름을 좌우하던 것에서 인류 동포애와 평화공동번영이라는 가치가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물론 현대에도 많은 나라의 군대가 자국 영토 바깥으로 곧장 나간다. 그러나 목적과 취지는 달라졌다. 무엇보다 분쟁지역과 낙후지역을 정비하고 개발시켜 보다 안전한 지구촌을 만들자는 것이 으뜸 목표인 시대가 됐다. 세계의 안전과 평화가 각국의 안전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안전은 경제가 됐든, 사회민주화가 됐든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의 필수적인 토대인 까닭이다.
국군 동명·다산·상록수·자이툰·청해부대의 파병도 모두 그런 것이다. 최근 아이티 재건에 각국이 동참하는 경우는 특히 인류애라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봐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지구촌의 안전과 안정 성장의 기반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언저리의 경제강국이다. 지난해는 사상 처음으로 수출 9위국도 됐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도 제쳤다. 수출로 경제발전을 유지하는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도 강소 개방 교역국으로 계속 발전해 나가자면 국제사회에 물적으로나 인적으로나 기여도 해야 한다. 아이티에 PKO 병력 250명을 보내기로 한 것은 이러한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파병 장병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되, 구호의 손길이 필요한 이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서두를 필요가 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도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다. 정부의 파병계획에 국회가 동의키로 했다면 효과를 높이도록 신경 써야 좋다. 이 역시 파병부대의 안전 강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http://kookbang.dema.mil.kr/)
허원순(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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