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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장군 기념물 제막식 거행

6·25 전사(戰史)의 결정적 시기, 결정적 장소에 그는 언제나 병사들과 함께 있었다..명예 원수 추대 하루빨리 이뤄져야

Written by. 강치구   입력 : 2010-03-10 오전 1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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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육군 1사단 내 전진광장에서는 백선엽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물 제막식이 사단 주최로 거행됐다.

 ▲ 백선엽 장군과 육군 1사단 관계자들이 기념물 제막식을 마치고 박수를 치고 있다.(국방일보 제공)

 육군 1사단은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선배 전우들이 이룬 자랑스러운 부대 역사와 공적을 기리기 위해 이번 행사를 열게 됐으며 기념물 제작 비용 또한, 사단 전 장병이 모금운동으로 마련했다.

 백선엽 장군과 사회단체들도 적극 모금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제막식 후 백 장군과 노병들은 6·25 기록 사진을 관람하며 당시 주요 전투 상황을 증언했다.

 기념물은 사단 약사와 6·25 전투 경과를 기록한 1점, 백 장군 공적을 새긴 1점, 역대 대통령 부대표창을 기록한 기념석 8점 등 10점의 기념석으로 구성돼 있으며, 62년간 1사단이 이룩한 공적을 한눈에 보여준다.

 이날 행사에는 6·25전쟁 당시 1사단장을 역임했고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백 장군을 비롯해 1사단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경기 파주시 6·25참전전우회·무공수훈자회 소속 노병 20명이 참석해 자리를 더욱 더 빛냈다.

 한편, 주요언론 중 조선일보는 3월 10일자 지면 사설을 통해 백선엽 장군 기념석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다음은 조선일보 사설 전문이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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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1사단에 세워진 백선엽 대장 기념石을 바라보며

 육군 1사단이 9일 경기도 파주 사령부 광장에서 6·25 전쟁영웅 백선엽 대장 기념석(石) 제막식을 가졌다. 1950년 30세 육군 대령이자 1사단장 백선엽은 6월 25일 서울에 잠시 나왔다 북한군이 밀려온다는 사령부 급보(急報)를 받고 그대로 문산 전선(戰線)으로 달려간 이후 낙동강 방어선, 칠곡 다부동 전투, 38선 돌파와 평양 입성(入城), 그리고 1·4후퇴 뒤 서울 탈환을 최선봉에서 이끌었다. 백 장군은 6·25 전사(戰史)의 결정적 시기, 결정적 장소에 언제나 병사들과 함께 있었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뒤엔 휴전회담 대표를 지냈고, 1953년 33세에 한국군 최초 대장에 올라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의 중임(重任)을 맡다 1960년 군을 떠났다. 기념석 제막식 날 이제 구순(九旬)이 된 백 장군은 그와 함께 전선을 누볐던 팔순 노병(老兵) 20여명과 함께 1사단을 찾았다.

 이 기념석은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군이 6·25의 살아 있는 전사(戰史)이자 전설인 백 장군을 위해 처음 마련한 기념물이다. 참으로 무심한 나라다. 북한군이 남침했을 때 그의 아내는 딸을 낳은 지 몇 달도 되지 않았다. 백 장군은 눈에 밟히는 아내와 딸을 찾아보지도 못하고 38선에서 낙동강까지 밀렸다. 그가 부산 단칸방에서 어렵게 살던 아내와 딸을 다시 찾은 것은 51년 4월 진급신고를 하러 부산에 갔을 때였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그 갓난 딸이 환갑을 맞는 해에 백 장군을 기념한 것이다.

 국방부는 작년 3월 백 장군을 우리 군 처음으로 명예 5성(星) 장군인 '명예 원수(元帥)'로 추대하겠다고 했다가 1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명예 계급인데도 '현역 4성 장군만 원수가 될 수 있다'는 군 인사법에 막혀 넘어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사령관 부임식이나 이임식 때는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이라는 말로 인사말을 시작하는 전통이 있다. 미군 장성 진급자들이 가입하는 캡스톤그룹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필수 코스가 '한국에 찾아가 백 장군 만나기'다. 주한미군 장성 모두가 참가하는 6·25 전적지 견학에도 반드시 백 장군을 초대한다. 미 국립 보병박물관은 백 장군의 6·25 경험담을 육성으로 담아 전시하고 있다.

 백 장군은 다부동 고개에서 굶주리고 지친 병사들이 퇴각하자 맨 앞에 나서 "미군이 싸우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고 했다. 힘을 낸 병사들이 고지를 다시 빼앗은 다부동 전투는 미 군사학교 교재와 전사(戰史)에 실려 있다.

 정작 우리에게 6·25는 잊혀진 전쟁이고 백선엽은 잊혀진 영웅이었다.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의 세계대전 기념비들엔 로렌스 비니언의 헌시(獻詩)가 새겨져 있다. "그들이 늙고, 나이가 그들을 시들게 하고, 세월이 그들을 잡아먹어도 우리는 그들을 기억한다." (조선일보 3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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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의 영웅    수정

    현역 원수가 아닌 명예 원수로 추대하는 데 무슨 걸림돌이 있는지? 대통령 특별 명에 의해 국민의 자랑스런 영웅 백선엽장군을 지체없이 원수로 추대해야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10-03-10 오후 9: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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