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편지'
탈북자 문제를 인권과 자유의 보편적 가치로 다뤄 주십시오
북한이 1990년대 초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을 화학무기 실험용으로 가스실에서 처형한 인권유린 실태가 탈북자 권혁씨의 증언으로 밝혀진 가운데 (사)탈북자동지회에서 발간한 '탈북자들 1월호'에 실린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편지'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으로 재직 중인 김성민씨가 쓴 이 편지는 함경북도 청진에서 살던 12살 난 철민이가 식량난을 견디다못해 아버지와 함께 탈북을 시도하다 아버지는 성공하지만 철민이는 탈출하는 과정에서 굶어죽어 결국 시신만 한국으로 돌아온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하면서, 정부가 탈북자 문제를 인권과 자유의 보편적 가치로 다뤄줄 것을 촉구했다.
특히, "선거 때마다 대북관이 바뀌고 탈북자들에 대한 인식도 정당이나 정책당국의 입지에 따라 방황하는 한복판에 탈북자들을 세워 두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면서, "탈북자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자유민주 체제로 통일하는 것과 직결되며 북한 독재정권의 붕괴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정부가 국제사회를 향해 탈북자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조건 없이 받아들일 의지가 있다는 것을 선포하고, 이를 실행해 철민이의 죽음과 같은 슬픔이 이 땅에서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덧붙였다.(konas)
김성민씨가 '노무현대통령께 드리는 공개편지' 전문은 다음과 같다.
바쁘신 대통령님께 거두절미하고 탈북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003년 9월1일, 오두산 통일전망대 분향소에서 한 탈북 어린이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는 추모제가 있었습니다. 유철민이라고 하는 열두 살의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함경북도 청진의 어촌마을이 고향인 철민이에게도 단란한 가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1998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강낭 떡 한 덩이에 실리는 남들만큼의 기쁨이 있었고, 닳아빠진 양말에서나마 한 뜸 한 뜸 고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던 소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이듬해 철민이는 두 살 아래인 누이동생마저 언 땅에 묻어야 했습니다. 남들이 먹다 버린 과일 껍질을 입에 문 채 마을길이 끝나는 곳에 쓰러져 있는 누이동생을 부둥켜안고 어린 소년은 아버지를 향해 간절히 외쳤다고 합니다.
“아빠, 세상에 배고픔을 모르고 살 수 있는 곳은 없나요?”
그렇게 철민이와 철민이 아버지는 두만강을 건넜고, 세상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탈북자가 되었습니다. 말 한 마디 통하지 않고 중국 공안의 서슬 푸른 위협이 시시각각 느껴지는 타향 땅에서 그들 부자는 살아도 삶이 아닌 운명을 원망했고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에 짓눌렸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1년여…. 철민이 아버지 유상준은 또 한번의 죽음을 각오하고 중국 국경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2001년 2월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습니다.
하지만 철민이는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7월, 아버지를 찾아 중국 국경을 넘은 철민이는 몽골의 저 목 타는 사막에서 탈진해 쓰러졌고, 죽어 가면서 동행하던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 죽더라도 우리 아빠한테 데려가 주세요!” 
자유를 찾은 유상준에게 삶의 이유였고 목적이었던 아들 철민이는 끝내 배고픔을 모르는 이 밝은 세상을 밟아 보지 못했습니다. 소원만 남기고 죽어간 아들을 1년이 지난 후에야 안아올 수 있었던 철민 아버지가 아들의 유분을 서울의 중랑천에 뿌리며 소리 없이 흐느낄 때, 세상이 그냥... 막막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내 아들은 죽어서라도 이 땅을 밟게 되었으니 다른 애들에 비하면 행복하다.”
철민이 아버지가 곡하듯 중얼거릴 때는 가슴이 터지는 것만 같아 숨조차 쉴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님. 아들이 아비보다 먼저 가는 이 비참한 현실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대통령님도 과연 모르고 계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철민이가 한 모금의 물과 한 조각 빵을 숨 줄처럼 움켜쥐고 자유를 향하여 필사적인 몸부림을 할 때 이 나라의 아비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철민이의 추모제가 있던 그 날은 마침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했던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돌아가던 날이었습니다.‘민족공조’와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던 그들을 향해 환송연이 베풀어지고 사진기의 플래시가 축포처럼 터질 때 몇 사람의 탈북자들, 몇 사람의 북한인권단체 회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철민이를 보내야 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이것은 모순입니다. 독재자 김정일의 선동분자들, 대남 전략의 파견원을 향해서는 박수를 보내고 독재가 싫어서, 굶어 죽기 싫어서 그 땅을 떠나 대한민국을 그리도 갈구하던 탈북자를 외면하는 것은 통일을 향한 이 나라 국정의 대표적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시민단체는 중국 현지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굶주림에 지쳐 중국 땅을 헤매는 탈북자가 이미 30만 명에 육박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공안에 대한 신고를 미끼로 성노예가 되어 죽지 못해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3년 석 달 죽기로 일하고도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쫓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탈북자를 향한 정부의 공식 입장은 너무나 미온적입니다. 북한을 탈출한 국군 포로가 한국대사관 직원한테 냉대받는 장면이 TV에 보도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과거 탈북자들의 귀순 사건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다양한 행사를 정부 차원에서 벌였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심지어 탈북자들이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중국이나 북한 눈치를 살피지 말고 인권과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 문제를 다루어 주었으면 합니다. 선거 때마다 대북관이 바뀌고 탈북자들에 대한 인식도 정당이나 정책당국의 입지에 따라 방황하는 이 한복판에 더 이상 저희들을 세워 두지 말았으면 합니다.
탈북자에 대한 입장은 통일 한국을 위한 노무현 정부 정책의 시금석이라고 믿습니다. 탈북자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자유민주 체제로 통일하는 것과 직결되며 북한 독재정권의 붕괴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희들은 이 해부터 라도 정부가 국제사회를 향해 탈북자, 그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조건 없이 받아들일 의지가 있다는 것을 선포하고 이를 실행해 철민이의 죽음과 같은 슬픔이 이 땅에서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04년 1월 김성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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