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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랑스 6·25 참전용사 초청위로행사

지평리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 세워 대한민국 전사에 기록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0-05-25 오후 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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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처장 김 양)와 재향군인회(회장 박세환)는 6·25전쟁 당시 UN군으로 참전한 미국과 프랑스 2개국 참전용사와 그 가족 약 180여 명을 초청하는 ‘UN군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를 가졌다.

 ▲ 김양 국가보훈처장이 참전용사를 환영하는 인사말을 하고 있다.ⓒkonas.net

 올해 3번째로 초청된 이번 방문단은 지난 24일 입국해 5박 6일 동안 국가별 전적지와 참전기념비 방문, 판문점·전쟁기념관 견학, 국립묘지 참배, 민속촌 및 인사동 견학 등의 일정을 마친 뒤 오는 29일 출국한다.

 김양 국가보훈처장은 환영사에서 “대한민국이 현재 누리는 자유와 평화, 풍요로움은 여러분이 흘린 땀과 피의 결과”라며 “한국에 계시는 동안 여러분이 지켜 낸 대한민국을 지켜보며 즐거운 추억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 1952년 한국전쟁 당시 함포사격지원을 담당했던 Richard Halferty 미군 예비역 해군 대령이 답사를 하고 있다.ⓒkonas.net

 이에 한국전쟁에 참전해 1952년 함포사격지원을 담당했던 Richard Halferty 미군 예비역 해군 대령이 답사에서 “여러 번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이 이룬 성과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감회를 밝혔다.

 특히 해군답게 “한국의 조선업은 세계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제조업과 화학산업에서도 한국이 세계 경제성장의 축을 이루고 있다”며 한국의 경제성장에 관해 놀라움과 자부심을 나타냈다.

 또 "나의 형인 Van Halferty 소위는 1950년 9월1일 전사했다“며 “고국에 돌아가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는지 사람들에게 전할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고 이번 초청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프랑스 참전용사 대표로 답사를 한 Serge Cours씨는 “프랑스는 2007년부터 한국군 참전용사의 희생과 영광을 추모하는 흔적을 찾는 ‘추모의 길’ 사업을 시작했다”며, 이는 “쌍터널, 1037고지, 961고지(단장의 능선), 홍천, 가평, 화살머리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쟁의 역사를 회고하기 보다 프랑스군이 어떻게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가졌는지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사업의 목적을 밝혔다.

 또한 “한국전쟁은 한국과 프랑스가 군사협력을 넘어서 동맹으로 발전을 도모하는  계기가 됐다”며 “참전용사들은 지난 60년간 프랑스에서 한국과 프랑스를 연결시키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한국과 프랑스의 영원한 우정을 과시했다.  

 ▲ 박세환 향군회장과 김양 국가보훈처장이 미국과 프랑스의 참전용사 대표에게 'Thank you 액자‘를 증정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왼쪽부터 박세환 향군회장, 미군 참전대표 Lynne A. Freeman씨, 프랑스 참전대표 Germain Denys씨, 김양 국가보훈처장)ⓒkonas.net

 이어 박세환 재향군인회장과 김양 국가보훈처장은 참전용사 모두에게 참전에 대한 감사의 뜻이 담긴 'Thank you 액자‘를 증정하고, ’평화의 사도’ 메달을 수여했다.  

 박세환 재향군인회장은 “참전용사들의 조국과 대한민국의 번영, 참전용사 각 개인의 건승, 한국과 미국·프랑스 간의 변함없는 우정,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 건배를 제의했다.
 
 한편 한국전쟁에서 미국은 참전국 중 가장 많은 178만 여명의 병력을 파병했으며, 약 37,000명이 전사하는 등 13만 7천여 명의 인명손실을 입었다.

 프랑스는 한국전쟁에 최초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는데, 함정 한 척과 대대급 병력 3,400여 명을 파병, 전사자 262명을 포함해 전체 참전용사의 1/3 이상인 약 1,300명의 인명손실을 입었다. 

 미국과 프랑스는 지평리 전투에서 함께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낸 바 있다.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13일부터 16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일대에서 미국 제2보병사단 23연대와 여기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가 중공군과 3일간 벌인 격전이었다.

 미군 23연대와 프랑스 대대는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됐으나 철수를 하지 않은 채 3일간 중공군의 파상공격을 물리치고 진지를 고수했다. 중공군은 2월 15일 후방으로부터 미군 증원부대가 지평리에 도착하자 포위망을 풀고 후퇴했다.

 미 제23연대와 프랑스 대대는 이 전투에서 중공군 3개 사단에 대해 치명적인 손실을 가했으며, 이 전투는 지평리-여주 방향으로 진출해 유엔군 전선을 양분하려던 중공군의 기도를 좌절시킴으로써 중공군 참전 이후 아군에 불리하던 전세를 역전시킨 첫 전투로 이후 UN군의 재반격 계기로 작용했다.

 ▲ 프랑스의 생망데시 시장이자 하원의원인 파트릭 보두앙씨가 이날 초청에 참여했다. 보두앙 시장은 프랑스 한국전 참전용사협회장을 7년째 맡고 있다. ⓒkonas.net

 특히 이번 방한 인원 중에는 프랑스의 생망데시 시장이자 하원의원인 파트릭 보두앙씨가 포함돼 있다. 보두앙 시장은 1953년 출생으로 6.25전쟁과는 관련이 없지만 참전용사였던 전임 시장과의 인연으로 프랑스 한국전 참전용사협회장을 7년째 맡고 있으면서 그동안 꾸준히 한국을 방문해 양국의 친선을 도모하고, 프랑스군 전적지를 찾아 기념비를 세우는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에 참전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 프랑스 전쟁영웅 몽클라르 장군을 들 수 있다. 몽클라르 장군은 제1ㆍ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하고 중장으로 예편했으나 한국에 파병되는 프랑스대대를 지휘하고자 중령급인 지휘관으로 현역복귀 신청을 했다.

 상부에서는 이를 만류했지만 그는 곧 태어날 자식에게 아버지가 평화를 수호하는데 일조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계급은 중령이었지만 이러한 배경을 알기에 UN군사령부와 미군 장병들은 그를 ‘몽클라르 장군’이라 불렀다.

 몽클라르 장군은 6.25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하나인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지휘, 혁혁한 공을 세웠다.

 ▲ 박세환 향군 회장이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며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konas.net

 이 밖에도 참전당시 프랑스 대대 한국군 중대장으로 단장의 능선전투에서 전사한 구필 대위의 친동생인 구필 전직 프랑스 합참차장과, 한ㆍ불 상원의원 교류위원장 및 프랑스 정부 대표인 게리 상원의원도 초청에 참석했다.

 프랑스군이 싸운 단장의 능선 전투는 1951년 7월10일 휴전회담 개최중에 공산군 측이 고의적으로 회담을 지연시켜 회담이 결렬되자, 유엔군측이 공산군측을 회담에 응하도록 하는 한편 당시의 방어선을 보다 유리한 지역에 설치할 것을 목적으로 실시한 전투로, 이 전투에서 유엔군 3,700여 명, 북한 공산군 2만 5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전투가 끝난 9일 후 휴전회담이 재개됐다

 단장의 능선 전투는 전투기간중 연합통신의 종군기자 스탠카터가 미2사단 전방대대 구호소를 방문했을 때, 한 부상병이 벌벌 떨면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서” 라고 고통스럽게 부르짖는 장면을 목격하고 전투상황 보도시 단장의 능선 (Heart Break Ridg Line)이라고 보도하면서 961고지 일대가 단장의 능선이 됐다.

 현재 강원도 양구에 있는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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