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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영웅, 연제근 상사』

"적탄에 맞아 거목(巨木)이 쓰러지듯 피를 뿌리며 쓰러지니 연 중사! 그의 나이 스물넷이었다."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0-05-26 오후 2: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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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강의 도하 돌격 - 연재근 분대(제3사단 22연대)>

『1950년 9월16일. 맥아더 원수의 기적 같은 인천 상륙작전이 단행된 이틀째인 이날, 최전선의 상황은 급전하기 시작했고 적은 이미 낙동강 전선 도처에서 동요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아군은 총반격의 기치를 들기 시작했다. 물고 뜯기는 살육전의 서막을 알리듯 포항 근해에 있는 전함 미조리(Missouri)호를 포함한 미 해군 기동함대가 16인치 함포로써 900여톤의 포탄을 형산강 북쪽 제방을 연한 적 진지를 강타하는 등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적의 시체가 강물에 퉁퉁 불어 강상에 점점이 흩어져 떠내려가고 있었다.

'형산강을 도하하여 포항을 탈환하라'는 사단의 공격명령이 드디어 하달되었다. <중략> 도하 통로 개척임무를 받은 연 중사 분대는 최후발악을 하고 있는 형산강 북안의 적을 향하여 서서히 이동했다. 아군의 공격준비사격이 대안의 북괴군 진지를 강타하는 순간, 탄띠와 멜빵 가득히 수류탄을 찬 연 중사를 포함한 돌격대는 새벽의 어둠을 뚫고 가슴까지 차는 물살을 가르며 강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무차별 총탄을 퍼부어 대던 적 기관총에 의해 분대원의 반수는 이미 붉은 피로 강물을 물들이고 있었고 연 중사도 왼쪽어깨에 관통상을 입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의 수중돌진은 멈추지 않았다.

일개분대는 그러나 강북 대안에 닿았을 때 불과 3명만 남아 있었다. 연 중사는 많은 부하들을 강물 속에서 잃고 자신도 어깨의 중상으로 고통이 컸으나 비례하는 투지와 적개심으로 몸을 번쩍 일으켰다.

다음순간 그는 준비했던 수류탄을 적 기관총 진지에 투척하였다. 집념 어린 투척이었다. 한발, 두발, 그리고 세 발을 던지고 나서 적탄에 맞아 마침내 거목(巨木)이 쓰러지듯 피를 뿌리며 쓰러지니 연 중사! 그의 나이 스물넷이었다.

적의 저주스러운 기관총 진지를 기어이 박살내고 장렬히 전사한 연재근 이등중사 분대의 투혼을 목격한 제22연대의 성난 반격작전이 형산강을 넘어선 것은 바로 10분 뒤였다.』

 ▲ 6.25한국전쟁의 영웅 ''''연제근 상사''''. 포항 전투의 결정적 승인을 제공케 한 연제근 상사가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포항에 새롭게 조성된 공원에서 역사의 교훈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누님이 소장하고 있던 한 장 남은 사진이 복사돼 국립 서울현충원 그의 묘비와 여러 동상에서 그를 보게 하고 있다. ⓒkonas.net

......<국방군사연구소 편찬 '한국의 전쟁영웅들' - 형산강의 도하 돌격, 연재근 분대 중에서>

 "형님을 마지막으로 본게 그러니까 1949년 10월이었어요. 제가 9살 정도 되었을 때였는데, 형님은 국방경비대원으로 자원 입대했다가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 참전해 공비 9명을 생포한 전과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훈장을 받고 특별 포상휴가를 받고 집에 왔었는데, 그게 우리 어머니 아버지, 모든 가족들과 함께 한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우리 집안에서 가장 든든한 큰아들이자 장형으로 일직 천자문을 떼고, 8척 장신에 씨름선수처럼 양어깨가 떡 벌어진 큰형님의 그 때 모습이 어린 내 눈에도 선연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늠름하던 모습의 맏형이 지금도 가장 자랑스럽고 강인한 인상으로 눈에 선하게 남아 있다는 '6·25한국전쟁 - 형산강 전투의 영웅 연제근 상사'의 동생 연제은 씨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 기자와 만나 형님을 떠올리며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리는 동생 연제은 씨. ⓒkonas.net

'6·25전쟁 영웅' 연제근 상사.

 북한군이 남침과 동시에 파죽지세로 남하를 계속해 낙동강 방어선이 경각에 달려 포항이 적의 수중으로 떨어지느냐 마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연제근 상사는 포항 남쪽을 흐르는 형산강을 중심으로 한 전투에서 자원해서 1개 분대로 돌격대를 편성 형산강을 도섭(渡涉), 적 기관총 진지에 수류탄을 투척해 진지를 파괴하고 아군으로 하여금 반격작전을 성공리에 달성해 포항탈환의 결정적인 공훈을 세운 형산강 전투의 영웅이다.

 그 형산강 전투의 영웅인 연제근 상사의 유족인 동생 연제은(70. 충효예 실천운동본부 감사)씨를 서울 용산 용사의 집에서 만났다.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자주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어릴적 가장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웠던 형님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는 연제은씨는 "지금도 서울 현충원 자주국방실에 모셔져 있는 형님 사진과 당시 전사 내용들을 보노라면 가슴 언저리가 싸 해지면서도 어릴 때 건장한 몸매에서도 근동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노래를 잘 불렀던 형님의 단단한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고 회고했다.

 "형님은 우리 가난한 8남매 중에서도 6척 거구로 얼굴도 제일 잘 생겼지만 다섯 살 때 천자문을 뗄 정도로 신동 소리를 들었어요. 큰아버지가 시골에서 훈장을 하셨고, 또 그 집에 아들이 없었기에 양자로 들이기 위해 일찍부터 개인지도를 하면서 글을 가르쳤는데 나중에 늦게 아들을 보셔서 양자로 가지는 않았지요.

 어려서도 마을에서 병정놀이를 하거나 명절 때 씨름을 하면 형님을 당할 자가 없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게 보이는 듯 합니다. 하지만 군대에 가셨다가 특별휴가를 나와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해서 우리 가족 모두가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 서울 현충원 27단지 형님의 묘비 앞에서 묵념을 올리는 동생. ⓒkonas.net

 고(故) 연제근 상사는 1930년 1월4일 충북 증평군 도안면 노암리 괴정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 도안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1월30일 국방경비대에 자원 입대해 청주 7연대에서 복무하다 1949년 육군 3사단 22연대1대대 분대장으로 전속,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 참전해 공비 9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1950년 6·25발발 후인 9월17일 포항 전투에서 분대장으로 특공대를 이끌고 형산강 도하 통로개척 임무를 성공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연 상사의 형산강 전투에서의 특공작전의 성공은 포항 탈환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 같은 전공에 힘입어 이후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북진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정부는 연 상사에게 을지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무공포장을 추서했다. 또한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으며, 2001년 도안초등학교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지고 2003년 1월에는 전쟁기념관에서 이 달의 호국인물로 현양행사를 갖기도 했다.

 동생 연제은씨는 아픈 가족사도 토로했다. "형님이 일직 결혼했으나 전사함으로 인해 절손 가정이 되고 그로 인해 부모님도 제천에서 조치원을 오가는 기차만 보면 농사를 짓다가도 '제근아'를 부르며 철길을 따라 달려가곤 하시다 돌아가시고 직계손이 없다는 이유로 연금  후혜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년이 6·25 60주년임을 상기하고는 "다시는 이 땅에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6월에만 반짝하는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되고 청소년들에게 1년 내내 충·효·예 교육 등 관련 내용을 가르쳐 역사의 교훈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단호한 의지가 묻어나고 있었다.


 ▲ (위)연제근 묘비, (아래)현충원 자주국방실에 비치된 연제근 영웅의 유품 ⓒkonas.net

 한편 포항시는 승전 60주년을 맞아 해도 근린공원에 연제근 상사의 조각상과 당시 특공용사를 포함한 참전 용사들의 공적 선양비를 제막한다.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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