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3] 오늘도 걷는다... '조국을 내 품에 안고'
대학생 6·25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 대원들, 조국산하를 가슴에 품다
"해외 입양후 7년이란 해외 중 최근 저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시간을 가져보게 되었습니다. 거울에 비춰진 겉모습은 물론 한국사람이지만 문화와 가치관에서는 미국사람이라고 하기에 더 적절한 제 자신을 보고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저의 참된 정체성과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성을 좀 더 배우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습니다." (이화선, 워싱턴대 3학년)
"올해로 60주년이 되었다고 하지만 6 25는 제게 있어 먼 역사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와는 상관없는 옛날 이야기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할머니댁을 가서 6 25전쟁에 참전해 전사하신 큰 할아버지와 큰공을 세우고 제대하셨다는 친할아버지에 외할아버지까지 제 생각보다 많은 주변의 사람들이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참전했다는데 그동안 먼 역사 이야기로만 이해 했다는게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인터넷을 통해 6 25 국토대장정 소식을 알고는 바로 지원했습니다. 역사를 알고 저를 더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유리, 평택대 3학년)
"(예비)교사로서의 자질도 부족한 것 같고, 세상을 살아오면서 인내와 끈기, 도전정신도 약간 부족했던 건 아니었는지 고뇌하고는 했지만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좀 더 성숙해져서, 미래의 제자들에게 가치 있는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 의미있는 선생님이 꼭 되고 싶습니다." (최성, 부산교대 2학년)
"할아버지께서는 6 25 당시 2사단 소속으로 은성화랑 무공 훈장 등을 받으셨습니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는 30년 이상 군수사에서 군무원으로 계시고 저는 3사단 GOP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그래서 3대가 모여 앉으면 자연스럽게 군대이야기가 나오곤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우리나라가 휴전 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6 25전쟁이 60년이 지났으니 그러려니 해도 핵과 미사일을 가진 지구상 가장 군사화된 나라와 24시간 대치중이라는 사실을 너무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분단국가의 젊은이로서 우리나라를 더 깊게 이해하고 더 넓은 가슴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위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전쟁이 너무나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깨우치게 하고, 전적지 답사를 통해 피난민이신 할아버지의 아픔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자 합니다." (김무성, 부경대 2학년)
하고 싶은 얘기도, 쓰고 싶은 얘기도 무척 많아 보였다. 아니 그 보다도 어떻게 하면 또래의 젊은이들이 함께 하는 대장정에 동참해 몸과 마음으로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시험해 보고 싶다는 젊은이로서의 풋풋함과 기개도 함께 묻어나는 듯 했다. 6 25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박세환)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제3회 6 25전쟁 60주년 기념 대학생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 (이하 대학생 국토대장정)에 참가하는 대원들의 참가 변(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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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대학생 대원들이 전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 6월19일이었다. 6월25일 대장정을 시작하는 출정에 앞서 오리엔테이션이 열렸기 때문이다. 물론 충청이남과 수도권 지역을 각각 나뉘어 한번씩은 했기에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날 모임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전체가 모여 호국 안보 평화의 3개 팀으로 나뉜데 이어 각각의 분대(分隊)를 편성하고 11박12일 대장정 기간 동안 함께 할 스텝진과 상견례, 개인별 각종 물품을 지급 받고 자기소개와 인사, 분대 단위로 자신들을 드러낼 독특한 아이디어 짜기와 구호 선정 등으로 어느새 대원들은 하나의 마음으로 뭉쳐가고 있었다.
그 날 기자와 마주한 스텝 대원에서 일반 대원 학생들 역시 마음의 준비와 각오는 대단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장장 636km 거리. 물론 학생들이 순수하게 걸어야 할 거리는 이보다 훨씬 단축된 287km. 그래도 하루 평균 24km거리다. 정상적인 훈련을 하는 군인들이 1시간에 4km를 걷는다 해도 적어도 하루 6시간을 걸어야 하는 강행군이다. 그것도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아스팔트 위의 지열, 폭우와 세찬 바람도 뚫어야 한다. 모기 등 벌레와의 싸움도 각오해야 한다. 호흡을 내뱉기 힘들 정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고갯길도, 금방이라도 무릎이 꺾일 것 같은 내리막도 발길을 무겁게 한다. 물집이 잡히고 터지기를 반복하며, 퉁퉁 부은 발을 부여잡고 끙끙대며 잠 못 이루는 고통도 감내(堪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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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들은 어떤 두려움이나 나약해 보이는 모습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나 자신과 젊음의 패기, 그리고 조국-대한민국이 가슴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가슴 속에는 60년 전 북한 김일성 집단의 불법 침략으로 국토가 초토화되고 피로 물들인 조국 산천 격전지(激戰地)를 두발로 밟으며 뜨거운 가슴으로 나라를 수호하다 장렬히 숨져간 당시 또래 젊은이(호국영령)들을 만나 보고픈 열망 또한 가슴속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6월25일 오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108명(남학생 68명, 여학생 40명)의 대원들은 4천여명의 참전용사, 시민들의 힘찬 격려와 성원을 등에 엎고 대장정에 올랐다. 서울 국립현충원에 들러 호국영령과 순국선열 앞에 머리를 숙일 때 어쩌면 많은 것이 교차되었을 것이다.
기자는 지난 1·2회 일부 지역이지만 대원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동행 취재를 하면서 젊은이들만이 느끼고 간직하는 조국애와 동료애, 그리고 청춘의 뜨거운 기운을 접할 수 있었다. 대장정에 참가한 그들은 결코 심약하지도,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시대의 흐름을 간과하는 그런 학생들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주장하며, 오늘을 사는(분단국) 이 땅의 젊은이들이 지녀야 할 자세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거기엔 분노와 절규도 있었고, 고통과 환희도 있었다. 눈물과 웃음, 때로 한숨도 새어 나왔다. 그러나 종래 그들은 모두가 하나였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 뭉치고 단결한다는 한국인의 습성처럼 대원들은 서로서로 은근과 끈기라는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엮어가며, 고난(苦難)과 역경(逆境)을 영광(榮光)이라는 미학(美學)으로 승화시키는데 한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대원들은 20Kg이 넘는 배낭을 짊어진 채 30℃에 육박하는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가며 구리 빛으로 변색된 피부를 훈장 삼아 걷고 또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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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로 나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알아보고 싶다." "할아버지가 참전하신 6·25전쟁, 그 현장을 가보고 싶다." 그리고 "전적지 답사를 통한 국토대장정을 통해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청년이요, 할아버지께 자랑스런 손녀딸이 되고 싶다"고.
6·25참전용사 손자·손녀도 있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여군장교를 꿈꾸는 학생도, 해외로 입양되었다가 조국을 찾아 자신의 정체성을 찾겠다는 가슴 시린 사연의 주인공도, 이민간 학생과 해외 유학생도 방학기간 대거 동참하고 나섰다.
이제 대한민국의 건강한 젊은이로 호국선열의 피와 땀이 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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