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보다 더 군인다웠던 철도공무원'
6·25전쟁 당시 철도 참전용사들은 목숨을 걸고 군수물자와 병력, 피란민 수송 작전을 전개했다.
6·25전쟁 당시 철도 참전용사들은 목숨을 걸고 군수물자와 병력, 피란민 수송 작전
을 전개했다. <자료 사진>
역사를 보면 불행 중 다행인 사건이 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망설이고 있던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였다. 미국의 참전은 일본의 패망으로 이어졌다.
광복 직후인 1948년 10월 19일 여순반란 사건이 일어났다. 군부에 침투한 좌익계 병사 40여 명이 16명의 장교를 사살하고 군내 폭동을 주도했다. 하지만 우리 군은 이 사건으로 군 안에 침투한 좌익세력을 뿌리뽑는 계기가 됐다.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만약 여순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채 6·25 기습남침이 있었다면 군 안의 좌익들의 준동은 매우 심각했을 것이고,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순반란 사건은 철도노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으로 철도 총파업을 주도하는 등 사회 혼란을 야기했던 철도노조 안의 좌익세력을 제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철도노조는 6·25전쟁 와중에서 군대 못지않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1만 9000여 명 참전… 임무 수행 중 287명 전사
6·25전쟁이 일어나자 철도는 즉각 사람과 화물수송을 중단했다. 병력과 군수물자, 이재민 수송으로 전환했다. 전쟁으로 대부분의 도로망이 파괴된 데다 남아 있는 도로마저 안전하지 못했다.
철도 관련 기능이 있는 사람은 철도공무원으로 징발됐고 각 지방철도국장에게는 임시 중령 계급이 주어졌다. 대전역에 처음으로 설치된 군사수송본부 본부장에는 김일환 육군대령이 부임했고, 철도국에는 류기남 임시 대위가 차출됐다.
수송본부는 6월 28일부터 군에서 필요한 장비와 물자·병력을 수송하는 임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3만여 명의 철도공무원 중 많은 인원이 피란을 떠나 남아 있는 인원은 1만5000여 명에 불과했다.
서울에서 마지막 열차가 피란민을 태우고 떠난 뒤 한강철교가 폭파돼 철도공무원들은 한강을 건너 남하하기도 했다.
미국의 참전 결정으로 윌리엄 딘 소장이 지휘하는 미 24사단이 부산역에 도착했다. 철도는 즉각 선발대 406명을 신속히 대전지역 방어선으로 실어 날랐다. 임시정부가 경북도청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도 인원과 물자 수송을 맡았다.
1950년 7월 11일 평양철도 기관구 폭파 임무를 받은 폭격기가 안타깝게도 이리역 구내를 오폭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54명의 철도공무원이 순직했다. 대전 전투에서 밀려나는 미 24사단 병력을 태우고 남하하던 중 대전시 인근에서 적의 공격을 받았다. 미군 5명과 철도공무원 2명이 전사했다.
하지만 딘 소장이 실종되고 나타나지 않자 철도본부는 다시 대전역으로 가 딘 소장과 탄약 군수품이 실려 있는 10량의 객차를 후송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철도본부는 33명의 특공대를 편성해 대전역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딘 소장은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적의 치열한 공격을 받고 기관사가 전사했다. 2명의 대원이 중상을 입는 피해를 입었다.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적의 공격을 받아 부상병 7~8명만 남고 나머지 대원들이 모두 전사했다.
1953년 6월 17일 휴전을 앞두고 철도수송본부에 긴급 명령이 떨어졌다. 18일 새벽 4시 반공포로 2만7000명이 부산역에 도착할 테니 이들이 무조건 부산을 떠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반공포로들은 머리를 깎고 있어 미군 헌병들이 체포하니 그들이 잡히지 않게 하라는 헌병사령관의 지시도 있었다. 초량역·부산진역·부산역에서 떠나는 모든 객차·화차에 포로들을 무조건 태워 부산을 빠져 나오도록 했다. 757일 동안 처절하게 벌어졌던 동족상잔의 6·25전쟁. 이 전쟁에 철도공무원들은 정확히 1만9300명이 참전해 287명이 전사하고 60여 명이 부상하는 희생을 치렀다.
전쟁 한복판에서 총포탄 뚫고 맹활약
해마다 7월 11일 이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이리역 구내 오폭으로 54명의 철도공무원이 전사한 날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철도참전 유공자회(회장 류기남)가 연 추모행사가 11일이 휴일인 관계로 지난 9일 열렸다. 심형윤 철도공사 부사장, 여형구 국토해양부 종합교통정책관을 비롯해 철도기관대표, 참전·친목단체 회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류 회장은 추모사에서 “6·25전쟁 당시 철도 참전용사들은 국군·유엔군과 하나가 돼 군사 수송작전과 수백만 피란민 수송을 수행했다”면서 “그러한 공적의 바탕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류 회장은 “철도 참전용사들을 영원히 기리기 위한 위령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군번도 없이, 사실상 군인으로서 오직 조국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완수했던 철도공무원들. 꽃다운 젊은 나이에 숨져 간 287명 철도공무원들의 영전에 우리 모두 옷깃을 여미며 명복을 빈다.
임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다. 우리는 결코 이름 없이 전쟁터에서 쓰러져간 임들의 애국투혼을 잊지 않을 것이다. 아니 잊어서도 안될 것이다.(konas)
이정호(재향군인회 공보관 jungho5118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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