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朝鮮 9월호]金正日의 妻弟 고영숙부부, 美 망명
1998년5월 스위스 거쳐 망명…김정일 해외비자금 정보제공
美, 신분 확인후 망명 허가…뉴욕증시에 투자된 비자금 동결
金正日의 애처(愛妻) 高英姬(50세)의 여동생 고영숙(45)과 그의 남편(朴모·40대 후반)이 1998년5월에 스위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여 현재 미국정부 보호하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18일 발간된 月刊朝鮮 9월호의 보도로 밝혀졌다. 金正日의 처제인 고영숙 부부는 망명후 미국 정보기관에 金正日의 해외 비자금에 대하여 중요한 정보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이 부부로부터 金正日이 뉴욕과 런던의 주식시장 및 스위스 은행에 비자금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뉴욕 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동결시켜버렸다고 한다. 月刊朝鮮은 고영숙 부부를 면담 조사했던 미국측 인사와 한국 정부 당국으로부터 망명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망명 당시 미국 국무부에 근무했던 한 高官에 따르면 고영숙 부부는 스위스에서 생활하던중 스위스 주재 미국 대사관을 통해서 망명을 신청했다고 한다. 미국 당국에서는 이 여인이 과연 高英姬의 여동생인지 확인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자 망명신청을 받아들이고 미국 정부의 보호하에 두고 신문을 시작했다고 한다.
고영숙은 망명 동기에 대해서 “金正日에 대해서 너무 아는 것이 많아 그 때문에 살해되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고영숙의 남편 朴모씨의 신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스위스는 金正日이 40억 달러로 추정되는 비자금을 예치하고 있는 곳이고 별장도 있어 金正日의 친족들이 유학도 하고 유람도 하는 근거지이다.
고영숙은, 언니 고영희와 金正日 사이에서 난 두 아들 正哲·正雲이 스위스 베른 근교 빌라에 살면서 국제학교를 다닐 때 따라와 이들을 보살펴 주는 일을 한 적도 있다. 고영숙은 북한 외교관 신분을 갖고 있었으며 이 빌라의 소유주로 등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5년 전 고영숙의 남편 박씨와 면담한 한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40대 후반의 아주 세련되고 자존심이 강한 인상이었다고 한다. 朴씨는 “金日成 사망 후 金正日이 굉장히 불안해 하고 있다. 내가 나서서 그를 미국으로 망명하도록 주선할 용의가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고영숙 부부가 탈출한 시기는 金正日 정권의 핵심부가 大飢饉(대기근)사태로 한창 흔들리고 군부와 측근에서 반란모의가 잇따르고 黃長燁씨가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미국 정부 일각에서는 고영숙 부부 망명후 북한의 비상사태시 金正日을 스위스로 망명시키는 공작계획도 검토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편 10여년간 金正日의 전속 요리사로 있다가 2년 전에 탈출했던 ‘金正日의 요리인’저자 후지모토 겐지씨는 月刊朝鮮 기자에게 아주 흥미로운 증언을 했다. “고영희의 여동생 부부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金正日 집안 사람들과 자주 식사를 하고 놀았다. 이 여동생의 아들은 김정일-고영희 부부 사이의 둘째 아들 김정운과 친하여 농구도 함께 하곤 했다. 그런데 1996년에 내가 일본으로 일시 귀국하였다가 1998년6월에 돌아가니 고영희의 여동생이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짐작이 간다.”
고영희는 1953년생으로 올해 쉰이고 미국으로 망명한 고영숙은 다섯 살이 아래이다. 고영희는 제주도 출신의 재일교포 고태문의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고영희는 북한의 만수대 예술단이 1973년 일본에서 공연을 가질 때 단원으로 참가,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때 처음 일본언론에 고영희 얼굴이 공개되었다.
일본 공영방송 NHK 취재진에 따르면 고영희의 아버지 고태문은 일본의 유명한 유도 선수인데, 이북 출신의 일본 프로레슬러 力道山과 친했다고 한다. 고태문은 力道山의 도움으로 북한을 방문, 金日成 앞에서 유도 시범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태문 가족은 1960년대 초, 北送船(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들어갔다.
고영희는 만수대 예술단원 시절인 1974년 무렵 金正日의 눈에 띄었다. 金正日은 자신의 별장 중 하나인 창광산 관저(평양 소재)에 고영희를 들여 앉혔다. 안기부 출신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고영희에 대한 金正日의 애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여러 모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金正日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씨는 “고영희를 알고 난 뒤부터 金正日의 여성 편력이 줄었다”고 말했다.
여동생 부부의 탈출 망명 이후에도 高英姬에 대한 김정일의 애정을 변치 않고 있고, 작년 말부터 북한군에선 고영희를 우상화 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는 고영희의 소생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옹립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 아닌가 관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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