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제재법 세칙발표와 한국의 딜레마
멜라트銀 서울지점 등 2곳 거래금지 리스트에 포함..한국 정부 “제재 동참하겠다”하면서도 독자 제재에는 한계
미국이 '이란제재 세부지침'을 계획된 일정보다 무려 한달반이나 앞당겨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계획된 10월1일로 예정돼 있던 지침 발표 마감시한을 놓고 대응 방법을 논의하던 중 갑자스런 미국의 조기 발표로 발등의 불이 되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16일(현지 시간) 이란과 불법적인 금융거래를 하는 외국 금융기관에 대해 미국과의 거래를 단절하도록 한 내용을 뼈대로 한 이란제재법의 시행 세칙을 재무부 관보를 통해 발표했다.
이 지침에 의하면 미국의 이란 제재 세칙을 고의로 어기는 미국 금융기관에는 형사상 최고 벌금 100만 달러를 부과하고 이를 주도한 사람에게는 징역 20년에 처하는 등 무거운 벌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민사상 처벌은 거래 금액의 2배나 25만 달러 가운데 큰 금액을 벌금으로 부과하도록 했다. 재무부 관보는 또 이란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는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과 석유화학업체인 이란 페트로케미컬 한국법인을 거래금지 리스트에 올리는 등 이란 정부가 소유하고 있거나 통제하는 금융기관들의 리스트도 발표했다.
또 외국 금융기관이 이란과 고의적으로 불법적인 금융거래를 할 경우 미국 금융기관에 관련 결제계좌를 열지 못하도록 하고 기존에 있는 결제계좌도 폐쇄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외국 금융기관은 미국 금융기관과 달러화로 결제하지 못해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하고 결제불능으로 부도 사태를 맞을 수 있다.
이 세칙은 구체적으로 이란 정부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WMD 운반시스템을 지원하는 거래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테러조직과 국제 테러리즘 행위를 지원하는 거래도 금지 대상이라고 밝혔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이란 금융제재 결의안 1737호와 1747호, 1803호, 1929호 등을 위반하는 행위도 불법으로 못 박았다.
이와 함께 이란 중앙은행을 비롯한 이란의 금융기관이 이 같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자금세탁을 하는 것을 지원하는 행위도 불법으로 규정했다. 특히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와 관련 조직에 금융지원을 하는 것도 엄격히 금지했다.
또 미 재무부 장관은 이란과의 무역금융 결제계좌를 규제하고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했다. 이와 함께 이란 금융기관과의 거래 규모와 거래 빈도, 거래 형태, 거래의 복잡성, 상업적 목적 여부 및 사기성 금융거래에 대한 판단을 미 재무부 장관 소관으로 정했다.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한국 정부도 미국의 이란 제재에 동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독자적 제재에는 한계가 있다. 국내 기업의 피해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7일 “정부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이란 제재에 동참할 방침”이라며 “다만 제재 과정에서 불가피한 기업 피해를 어떻게 보호할지 내부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밝혀 정부의 곤혼스러운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이 예상보다 빨리 이란제재법의 시행세칙을 발표한 것은 이란 제재를 서두르는 동시에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제재 동참을 압박하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란제재법에 기본적으로 동참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도 제재로 피해를 볼 국내 기업의 보호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한 당국자는 “국제법의 원칙을 따지고 들면 미국 국내법을 제3국에 적용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이를 정부 차원에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이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국제적 평판에 치명적일 뿐 아니라 미국과 거래를 중단해야 하는 현실적 위험에 부닥친다”며 “정부가 시키지 않아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는 미국의 이란제재법 시행세칙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정부가 아직 세밀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대이란 일반거래는 막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 재무부의 시행세칙 관여자에게 자세한 정보를 얻어 기업과 기관에 알려주는 것이 정부가 앞으로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의 시행세칙 발표 이후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인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이란 제재 결의에 따라 정부가 취해야 일이 무엇인지 △미국의 제재 관련 협조요청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중요한 대책으로 꼽고 있다. 이 3가지 문제가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추가 이란 제재와 연관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가 제재 1순위로 고려하고 있는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해서는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멜라트은행은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제재 대상을 지정한 미국의 행정명령 13382호 제재 리스트에 이어 이번 미국의 이란제재법 시행세칙 리스트에도 올랐다.
미국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해 한국 정부가 폐쇄 등 두드러진 제재 조치를 취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정부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폐쇄 조치를 취하려면 핵 연루 의혹 등 범법행위를 분명히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영국이 핵 연루 의혹으로 멜라트은행 런던지점의 폐쇄 조치를 취하자 은행 측이 소송을 건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경제부처 당국자들은 추가 제재에 대해 “미국의 이란 제재 시행세칙이 나오는 ‘10월 초’까지 일단 기다려보자”고만 말해 왔다.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조치도 그때가 돼서야 결정하겠다고 밝혀 왔다. ‘강도 높은 제재를 검토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와 ‘안보리 결의 수준을 넘는 제재가 이뤄지면 보복하겠다’는 이란의 경고 사이에서 우리 정부가 고심해온 단면이다.
결국 정부의 제재 수준은 일본 수준이냐, 그 보다 한 단계 높게 하는냐이다. 만일 한미동맹국으로서 천안함 사태와 북핵문제에서 우리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면에서는 미국의 입장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이란의 항의와 기업의 피해를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결정의 시간이 많지않은 상황에서 이래 저래 정부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솔로몬의 지혜가 아쉬운 시점이다.(konas)
코나스 권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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