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창덕궁 日왕실에 넘기려 했다
대표적 친일파 이완용(李完用, 1858~1926)이 1919년 3.1운동 직후에 창덕궁을 일본 왕실의 별궁(別宮)으로 만들자고 사이토 마코토(齊藤實) 조선총독에게 두 차례 제안했던 문건이 발굴됐다.
일본 근현대정치사 전문가 박환무(49) 인하대 강사는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소장된 식민지시대 일본정부의 문서철인 '공문잡찬'(公文雜纂) 중 '청원'(請願) 권25에서 찾아낸 이 비밀문건을 13일 공개했다.
'경성(京城)에 이궁(離宮)을 설정하는 건(件)'이란 제목의 이 문건은 사이토 총독이 1921년 7월8일자로 일본 내각총리대신 하라 다카시(原敬)에게 보낸 것으로, 이완용이 두번째로 사이토 총독에게 올린 건의서 내용 전문을 일본어로 번역해 싣고 있다.
이 문건에서 이완용은 새로운 별궁을 만드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임을 지적하면서 당시 창덕궁에 거주하던 순종을 덕수궁으로 옮기고 창덕궁을 별궁으로 개조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박씨는 "정궁인 창덕궁은 조선의 상징적 정치공간이기에 이곳이 별궁이 된다는 것은 조선이 일본에 완전 편입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시가 된다"라면서 "이완용은 고종이 승하하자 곧 창덕궁을 별궁으로 만들자고 총독에게 제안함으로써 자신의 일본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입증해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용의 이런 요청에 대해 사이토는 "창덕궁을 이궁으로 전용하고 싶다는 의견은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서울 장충동에 있던 옛 통감 관저를 별궁으로 고쳐 쓰자고 했음을 이 문건은 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씨는 "별궁 건설은 한국병합 초기부터 논의돼 왔고 또 사이토도 그 필요성을 알았지만, 창덕궁을 별궁으로 만들 경우 초래될 조선인의 반발을 우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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