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쿠크 주둔 미군들의 눈물겨운 민심잡기
지난 달 30일 오전 10시 키르쿠크 서쪽 인근 야이치시 청사 앞 마당에는 이라크인 200여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 앞에는 담요와 석유 난로, 카펫 등이 놓여있고, 대형 천막 안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는 닭고기와 양고기, 샐러드, 빵, 과자, 사과, 오렌지 등 음식도 준비돼 있었다.
잠시 후 미군 탱크 3대와 험비, 트럭 등의 경호를 받으며 이 지역 관할 미군 부대장인 윌리엄 셰이퍼 중령이 나타났다.
셰이퍼 중령은 압둘 카린 알리 야이치 시장을 비롯한 원로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준비된 선물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담요와 난로, 카펫 이 외에 2만-2만5천 이라크 디나르(약 1만6천-2만원)씩 든 봉투도 50여개 전달했다.
셰이퍼 중령은 주민들에게 "항상 도와줘서 고맙다. 야이치지역 주민 및 지도자들과의 관계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미래를 위해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고 연설을 했다. 셰이퍼 중령이 선물을 나눠주고 봉투를 전달하는 사이, 다른 미군들은 풍선을 불어 어린이들에게 선사했다. 알리 시장 등에겐 미군 제4보병사단 1대대의 상징메달을 줬다.
그래도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크게 고마워하거나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 시큰둥한 표정으로 담요나 난로, 봉투를 받은뒤 셰이퍼 중령과 차례로 악수를 했다.
행사가 끝나자 셰이퍼 중령을 비롯한 미군들은 천막 안에 마련된 음식을 주민들과 나눠 먹었다. 음식은 손으로 먹었다. 아랍 사람들처럼 손으로 양고기를 집어먹으며 대화를 계속하는 그들의 표정엔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곤혹스러움이 배어났다.
미군들은 이라크 주민들을 위압적으로 대하고, 신발을 신고 집안까지 들어가고, 여자들을 수색해 민심을 잃었다는 이야기만 들어온 터에 이날 행사는 새삼스런 것이었다.
그러나 알고보면 키르쿠크 주민들의 민심을 잡으려는 미군들의 노력은 이런 단순한 행사 차원을 넘어서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키르쿠크 주둔 미군 부대장인 윌리엄 메이빌 미군 173공정여단장은 손에 이슬람 묵주를 들고 다닌다. 현지 주 정부나 부족, 종교지도자들을 만날 때 뿐 아니라 미군 부대 안에서까지 묵주를 들고 이슬람 신자들처럼 묵주알을 센다.
메이빌 여단장은 키르쿠크의 주요 지도자들도 직접 찾아다니며 미군에 대한 지지와 협력을 호소하고 있다.
미군 저항세력의 근거지인 하위자의 최대 가문인 오베이드 부족의 셰이크 가산 알 아시 부족장은 무려 6차례나 집으로 찾아갔다. 또 자필로 엽서를 써보내 협력을 호소하기도 했다. "존경하는 아시 부족장님, 키르쿠크 시 의원직을 맡으셔서 함께 일해주시길 간청합니다"라고 메이빌 대령은 썼다.
미군들은 학교와 상수도 시설 등도 새로 짓거나 고쳐주고 있다. 자신들의 지원으로 문을 열게된 하위자지역 리야드시 여자학교를 자랑스레 보여줬다. 새로 페인트 칠을 한 학교 벽에는 "여러분의 학교로 돌아오라(Return back to your school)"고 적혀 있었다. 미군들은 또 리야드 주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해주는 상수도 시설도 미군이 와서 보수해준 것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미군들이 탱크 2대와 험비 등 무장차량까지 동원해 학교와 상수도시설들을 보여주는 건 어쩌면 아이러니로 비쳐졌다. 자신들이 고쳐준 학교와 상수도시설을 보여주는 데에도 탱크와 무장차량의 경호 없이는 안될 만큼 키르쿠크의 민심은 여전히 미군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키르쿠크=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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