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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는 ‘반미’가 아닌, 민족적 자존심의 표현이라고??

Written by. 정준   입력 : 2004-02-10 오후 3: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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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마지막 밤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 시위를 마치고 미  대사관으로  향하던 시민들과 이를 가로막으려던 전경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군사정권시절 반(反)독재투쟁으로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평판을 들었던 한완상교수가 그를 찾아간 ‘오 마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좀처럼 납득할 수 없는 논리로 ‘김수환 추기경의 시국 우려 발언’을 폄하하여 말썽을 빚은 동지(同紙) 논설위원 손석춘씨를 옹호하고 나섰다.

한완상 교수의 별난 안보논리 가운데 하나가 「촛불시위」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해석이다. 그는 최소한의 국가적 민족적 자긍심의 표현인 ‘촛불시위’를 반미로 몰아치는 것은 잘못된 시대인식이다.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해 명복을 비는 인간적 동포애적 동조(同調)표현으로서의 촛불시위를 어떻게 ‘반미’로 표현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그는 이를 '이념적 반미'와는 구분되는 ‘평화주의적 반미’이고, 미국의 세계지배에 방해되는 세력을 악(惡)으로 규정하고 선제공격을 부추기는 미국 행정부와 네오콘들 그리고 소파(SOFA)개정과 관련하여 미국의 불성실하고 오만한 자세에 대한 반미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촛불시위는 공(功)보다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과(過)’를 저질렀다. 촛불시위는 사회 전반에 반미감정을 촉발시킨 것은 물론, 태평양 건너 대다수의 미국국민들에게 ‘혐한(嫌韓)의 씨앗’을 뿌렸다.

한미동맹체제의 핵심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역할- 그 자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동맹국으로서의 미국국민 대다수가 한국에서의 전쟁 발발시 한국의 안전과 한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총체적인 가치관의 문제임을 감안한다면 미국사회의 혐한(嫌韓)분위기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촛불시위’가 사고로 진정 숨진 두 여중생의 혼령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한 두 차례의 항의성 시위로 끝났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를 배후 조종한 '여중생 범대위'(汎對委)는 이 촛불시위를 범국민적 축제 형식의 이벤트성(性) 행사로 둔갑시켜 1년 이상 지속시키면서 전국을 ‘반미(反美)’의 돌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엄청난 ‘이념적 반미’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외친 「주한미군 철수」 구호는 국가안보 기틀을 흔들어댔고, 많은 외국투자가들의 발길마저 돌려놓았다. 한미관계를 보다 호혜적이고 균형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한 점을 공(功)으로 내세울 처지가 못된다.

이들은 또한 작년 한미상호방위조약 50주년을 맞아 6․25 한국전쟁 당시 자유 대한민국을 빈사상태에서 살려낸 혈맹국 미국에 대해 감사의 정(情)을 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점령자> <조국통일의 장애물> <전쟁 광신국(狂信國)> 등으로 몰아세우며 전통적인 대미인식을 바꾸어놓는 일에만 급급했다.

그런가 하면 시위기간 중에 북한의 서해교전 도발 1주년을 맞고도 김정일정권에 대한 원망이나 우리 군(軍) 희생자에 대한 애도도 철저히 외면했다. ‘두 여중생 사망’은 추모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반미(反美)를 위한 이념적 수단이고 빌미였던 것이다.

미국은 과연 그들 주장대로 점령자이고 조국통일의 장애물인가. 주한미군은 우리의 요청에 의해서, 그리고 우리의 안보상의 필요에 부합되기 때문에 주둔하고 있다. 이들의 주둔은 미국에 좋기 이전에 우리에게 좋은 것이고, 우리의 국익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어왔다. 주한미군의 전쟁억지력 덕분에 우리는 전후 50년간 남북 대치의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사상 초유의 외침(外侵)이 없었던 ‘평화 반세기’를 누려왔음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좌경세력은 「사건」이 아닌, 훈련 중에 일어난 「단순사고」였던 미군 장갑차에 의한 두 여중생의 희생을 촛불시위 형식을 빌어 이 나라 10대의 순진한 감상주의에 불을 질러 드라마를 엮었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세기를 이어온 한미혈맹 관계에 지울 수 없는 오점(汚點)이 아닐 수 없다.

30대의 ‘몰(沒)이념적 반미’와 20대의 ‘무구(無垢)한 감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빚어낸 촛불시위는 저들의 통일전선전략과도 일치하는 「상징 조작술」의 극치였고, 달리 보면 이 땅에 공공연한 반미(反美)운동의 물꼬를 터준 효시로 기록될 것이다.

최초 두 여중생의 죽음은 ‘사고’였지만, 이들에 대한 추모를 빌미로 시작된 촛불시위는 반미(反美)의 불을 지펴나가는 과정에서 ‘주둔국지위협정(SOFA)개정’ 요구로,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이라크 파병 반대’로 이어간 것 외에 지난 2002년 말의 대통령선거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일대사건이었다.

반미와 미군철수 요구로 이어져 온 이 흐름이 지속될 경우 결국 한미동맹관계의  파국 → 전쟁방어력의 공백 → 막대한 군사비의 추가부담 → 국론 분열 및 이념 갈등 심화 → 안보불안․사회불안 가중 → 국가위험도 상승 → 총체적 국가 위기로 이어질 것임은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우리는 이미 그 반대급부를,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피부로 체험하고 있다.

‘촛불시위’가 가능했던 것은 기실 남북한이 첨예하게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이라는 전쟁억제력이 버팀목이 되어주었기에 가능한 자유민주주의 토양 덕분이 아닌가. 돌이켜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한미동맹체제는 싫든 좋든 주권국가로서의 생존유지와 국민복리 증진을 위한 사활적(死活的) 국가이익이 걸려있는 절대적 사안(事案)이다. 안보현실을 외면하는 우매함을 두둔하는 궤변에 가까운 발언이 이 나라 지도층으로 분류되는 석학들의 몫일 수는 없다.

단순사고로 숨진 이들 여중생을 마치 ‘신화적인 존재’ 또는 ‘열사’인양 치켜세워 가짜 류관순 구조물을 만든 후 대한민국 상징의 거리 광화문 일대를 ‘반미운동의 발원지’로 각인하고자 범국민적 합의도 없이 불법으로 ‘촛불시위 기념탑’을 세우기까지 한 행위가 ‘애국’일 수는 없다.

꽃다운 나이에 간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을 승화시키는 올바른 방법은 반미감정의 자극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호혜적인 양국 관계를 재정립하여 북핵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진정한 남북 화해협력시대를 열어 가는 길일 것이다. (KONAS)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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