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한국이 중심국가"
백영훈 박사 "서독에 간 광부들과 더불어 박정희 대통령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적이 없습니다"
대통령을 뵈니 눈물이 마구 쏟아져 대통령께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나를 좀 도와달라'고요. 서독을 가야하는데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제가 통역으로 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가 서른 두 살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본 공항에 내리자 태극기가 물결을 이뤘습니다. 독일사람들이 나와서 태극기를 흔들며 '광부나라 만세' '간호부 나라 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드는데 차창 문을 열고 손을 흔드는데 어찌 그리 눈물이 흐르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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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 탄광촌으로 가서 우리동포 광부들을 만나는데 강당을 꽉 메운 300여 명의 광부들이 온몸이 시커먼 석탄으로 칠해지고 눈만 빼꼼이 내민 광부들이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데 애국가가 시작되자 저는 우리 애국가를 부르며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도 울고 광부도 울고 모두가 눈물바다였습니다. 연설문을 읽어 내려가던 대통령이 네 번에 걸쳐 연설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대통령이 그러시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해서 우리 후대에 보다 잘사는 나라, 훌륭한 나라를 물려주자'고요. 모두가 엉켜 엉엉 소리내어 웁니다. '대통령 각하, 저도 고향에 가고 싶어요. 고향으로 같이 데리고 가 주세요'하고 말입니다.
탄광촌을 나오는데도 시간이 걸렸지만 아우토반을 빠져 나오는데도 무려 3시간이 걸렸습니다. 광부와 간호사들이 대통령이 탄 차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손이라도 한번 잡으려고 하는데 대통령께서는 일일이 그들 손을 잡으며 눈물을 훔치십니다. 그 때 차안에는 당시 서독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과 함께 타고 계셨습니다. 그 분이 손수건으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힘을 내시라'고 하는데 목이 메어서 앞에 탄 제가 통역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지요. 당시 광부와 간호원들이 어떻게 서독으로 가게 되었습니까. 서독이 상업차관으로 3천만 달러를 빌려준다고 해서 이들이 몸을 담보로 해서 가게 된 것입니다. 해외 은행들이 당시 우리나라에 지급보증을 해주지 않았어요. 그렇게 해서 광부 5천명과 간호사 2천명이 선발되는데, 광부 공모에 4만8천명이 몰리고 간호원에 2만5천명이 지원했습니다. .
그렇게 해서 고용계약서를 담보로 대사가 각서를 쓰고 지급보증서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람의 몸을 담보로 지급보증한 나라는 이 나라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들이 3년치 월급을 저당으로 잡히고 가게 된 것입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당시 김포공항은 이들을 환송하는 가족들의 태극기 환송으로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때 그 세대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1961년 박정희 장군에 의한 5.16군사혁명은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자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지금까지 한국에 지원하던 경제원조를 중단시켰습니다. 그리고 CIA 요원 200명이 한국에서 조사를 벌이니 한국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찾게 된 게 서독이었고 그 일환으로 나온 게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었습니다. 그에 앞서 저는 그 전인 1955년 웅크라(국제연합한국재건단 UN Korean Reconstruction Agency)에서 시행한 국비장학생 1호로 독일로 공부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해서 4년만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경제학 박사 1호입니다.
귀국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어요. 비행기 값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벌고 있는데, 어느 날 서독 주재 대사인 초대 해군 참모총장을 지낸 손원일 제독이 찾아와 '왜 귀국하지 않느냐?'고 하는 겁니다. 사실을 말씀드리니 손 대사께서 이승만 대통령께 '한국 유학생이 돈이 없어서 박사 학위를 받고도 귀국을 못하고 있다'고 서신을 보내, 이 박사께서 비행기표를 보내 주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앙대 교수로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경제학 박사 1호로 제 강의실은 항상 만원이었습니다. 박사1호를 구경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도 와서 복도 밖에서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쿠데타가 일어나자 1961년 군사혁명정부는 군대 안간 사람, 기피자 소탕작전을 벌여 제가 또 1호로 걸려서 논산훈련소로 끌려 갔습니다. 3개월인가 훈련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육군소령이 와서 보따리를 싸라고 해 지프차로 저를 태우고 서울로 오는데, 남산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김종필씨를 만났습니다.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경제고문으로 중화학공업추진위원과 경제개발계획 자문위원장을 역임하고 9, 10대 국회의원을 지낸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은 2일 아침 국제외교안보포럼(이사장 김현욱, 전 국회의원)에 초청강사로 참석해 1960년대 1차 경제개발계획 과정에서의 당시 어려웠던 시대상황과 서독으로 진출한 광부와 간호사들이 고향을 잃고 조국에 인생과 청춘을 바친 역할에 대해 본인이 직접 겪고 체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설파해 나갔다.
백 원장은 이 날 '21세기 한민족시대, 지도자의 비전과 선택'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한일병탄 100년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1백년 전 우리 조상들은 찬란한 20세기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1905년 일본에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1910년에는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다"며 나라를 잃고 해외로 흩어져 간 우리민족이 175개국 750만에 이른다며 개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조선족들의 아픈 실상을 예를 들어 설명해 나갔다.
백 원장은 "지난 1백년의 역사는 한민족에 있어 가장 비극의 역사로 기록되는 역사"라며 "그럼에도 우리는 잊혀진 한민족 100년의 역사를 잊고 있다"고 역사의 망각이 주는 교훈을 다시금 일깨웠다.
백 원장은 지금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세대간 가치관의 충돌 ▲사회 각 계층간의 갈등과 이로 인한 갈등비용의 심각성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 ▲중산층의 몰락 ▲국민의 무관심과 무감각으로 지적한 뒤 폴 케네디 교수의 말을 인용, 21세기가 아시아 태평양시대 도래임을 강조했다.
그는 폴 케네디 교수의 "21세기 세계역사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과 인도가 주도하는 아시아 태평양시대가 될 것으로 예언하고 있다"며 "그리고 이 시대를 이끌어갈 중심국가가 바로 한국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60년대 수출제일주의를 부르짖으며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뛰면서 ▲부녀자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수출 ▲헝겊으로 인형 제작 ▲인조 꽃 수출 ▲앰프와 한국산 밍크 목도리 수출 등 당시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경제성장을 하나하나 언급한 뒤 "이 작은 땅에서 이토록 세계사에 우뚝선 한민족의 웅장한 모습이 21세기 세계를 이끌어 갈 새 역사의 주역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라며 "이제 이 시대를 책임져야 할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며 대한민국이 안은 미래의 아젠다가 무엇인가에 대해 올바른 진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백 원장님의 강연을 직접 듣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힘드시겠지만 강단에 오르실수 있을 때까지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한번은 듣도록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진정한 애국자요, 국민이였습니다, 또한 시대의 통치권자 였음을 들려 주었습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10-09-03 오후 4:58: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