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는 스탈린 감독에 모택동·김일성 주연 전쟁"
재향군인회, 대북전문가 송종환 교수 초청 강연.."끝나지 않은 6.25 대비 군사비 대폭 증액하고 청와대 안보라인 보강해야"
“6.25전쟁은 스탈린이 계획·감독하고 김일성과 모택동이 주연과 조연 역할을 한 스탈린의 전쟁이었다. 스탈린은 1949년 10월 중국의 공산혁명 등 변화된 국제정세에서 김일성의 남침의지를 이용해 참전이 예상되는 미국과 중국의 국력 약화를 기도하고, 중국의 대서방관계 개선을 저지하고자 했으며, 모택동은 통일을 달성한 중국의 위신을 과시하기 위해 참전했다”
재향군인회가 천안함 폭침을 계기로 60년 전과 같은 북한의 정체를 재인식하고 안보의식을 확립하기 위해, 7일 오전 재향군인회 본부와 산하업체 임직원 100여 명을 대상으로 안보교육에서 명지대 북한학과 송종환 교수는 6.25전쟁을 이렇게 재평가했다.
이날 강연은 ‘공산권 자료로 본 6.25 재평가와 교훈-러시아 측이 공개한 비밀문서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소련 외무성이 1966년에 작성하고, 워싱턴 D.C 소재 우르도루 윌슨 센터가 영어로 번역해 발행한 한국전쟁 관련자료와, 러시아 前 옐친 대통령이 1994년 6월 김영삼 前 대통령에게 전달한 「한국전쟁 관련 러시아 외교문서」 216건 548쪽의 내용을 바탕으로 6.25전쟁의 진행계획을 자세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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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수는 먼저 “요즘 6.25를 북침으로 알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6.25전쟁은 스탈린의 결단과 승인, 작전계획에 따라 김일성이 남침을 개시했음”을 강조하면서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하게 된 일련의 과정을 소개했다.
송 교수는 “1949년 3월5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스탈린·김정일간 회담에서 김일성이 무력통일을 위한 남침에 대해 소련 지도부의 이견을 문의했으나, 스탈린은 한국군과 주한미군 규모·남북한 군대의 우열을 질문 후 북한군이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공격해서는 안된다는 점과,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과 미·소간 38선 분할에 관한 합의를 상기시키며 남침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7월 남한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하자 9월3일 김일성은 38선의 의미가 상실되었다면서 대남 전면공격과 최소한 옹진반도 점령계획을 쉬티코프 소련 대사에게 제시했다.
쉬티코프 대사의 대리인인 툰킨 공사는 9월14일 스탈린에게, 인민군이 남침시 남한내 빨치산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신속히 승리할 만큼 강하지도 못하고, 미국의 강력한 군사개입으로 전쟁의 장기화를 우려하면서 남침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음을 보고하게 된다.
이에 스탈린은 남한내 빨치산 활동 강화계획은 승인하되 전면적 남침이나 옹진반도 점령작전은 미국의 개입으로 분쟁이 장기화됨으로써 통일이 지연될 것이므로 남침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으며, 옹진반도 점령도 남한이 공격해 북한영역으로 들어오도록 한 뒤 반격작전을 하는 방안을 훈령으로 평양주재 소련 대사에게 하달했다.
이후 50년 1월17일 김일성은 쉬티코프 대사에게 다시 ‘1946년 6월 모택동도 중국혁명이 끝나면 북한을 돕겠다고 약속한 바가 있다’면서, 자신이 남한공격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스탈린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불 것을 요청하면서, 총 공격시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내용을 보고받은 스탈린은 중국과 협의한 후 2월9일 군사적 방법으로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평양측 의도에 적극적으로 찬성을 표명하면서, 한반도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의 준비를 시작해도 좋다고 허락하고 탱크, 탄약, 군 장비, 대포, 의약품 및 석유 등을 적극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3월 김일성과 박헌영은 모스크바를 방문했고, 5월에는 모택동을 방문해 스탈린과의 남침합의를 설명하고 중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스탈린은 7월13일 중국의 모택동에게 보내는 전문에서 ‘중공군 9개사단의 엄호를 위해 제트기 124대로 구성된 1개 항공사단을 보낼 것을 약속하고 2-3개월간 중국 측 조종사 훈련과 훈련후 장비 이전’을 통보했다.
그러나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후에도 중국은 ‘중공군의 준비 부족, 중공군 참전시 미·중전쟁의 가능성과 미국의 중국내 반동세력 사주 가능성’ 등을 이유로 참전을 미루다가, 스탈린이 ‘소련을 배후에 둔 중국의용군 참전은 한반도 문제 논의시 북한에 유리한 방향으로 미국을 압박, 한반도의 대륙 침략 가능성 사전 방지, 미국의 대만포기 유도’ 등을 내세우자 10월8일에 김일성에게 참전을 통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참전결정을 번복하려 하자 스탈린은 ‘중국의 참전 거부는 북한의 붕괴로 인해 중국 북동지역에 북한 망명정부 수립의 필요성’을 내세워 북한 포기를 중국측에 제의하고 김일성에게도 북한군 철수계획을 실제로 제시함으로써 중국의 참전 최종 결심을 유도했다.
한편 1950년 9월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스탈린은 9월30일 모택동과 협의후 10월1일자로 즉각 정전, 외국군 철수 및 국제 감시하 총선 등을 유엔총회에 타전했으나 승리를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유엔총회는 소련측 결의안을 부결시켰고, 10월19일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너 공격하자 이번에는 유엔총회에서 중국이 수락할 정전조건 제시를 요청했다.
이에 주은래는 12월7일 ‘한반도에서의 모든 외국군 철수, 대만 및 대만 해협으로부터의 미군 철수, 한국 문제의 한국인 스스로 해결, 중국정부 대표의 유엔참여 및 대만정부 대표 축출, 일본과의 평화조약 준비를 위한 4강국 외상회의 개최’ 등의 정전조건을 스탈린에게 제시하면서 의견을 문의했으나, 스탈린은 ‘미국과 유엔이 먼저 정전조건을 제시토록 하는 전략을 택할 것’을 지시했다.
1951년 1월11일 유엔 측이 다시 정전 제안을 하자, 스탈린은 ‘한반도에서의 장기전은 중국군이 전장에서 현대전을 연구할 기회를 갖게 될 뿐만 아니라, 트루먼 정부를 흔들고 미·영국군의 국제적 위신을 실추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한국전쟁의 속도를 빠르게 하지 않아야 한다’며 강경입장을 종용했다.”
결국 6.25전쟁은 스탈린이 사망한 2주일 후인 종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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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수는 올 3월의 천안한 폭침사건을 60년전 한반도 전쟁과 연결시켜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한반도 공산화 통일을 노리는 김정일 수령유일지배체제가 지속되는 한 북한의 전쟁도발 의지는 변함없고(특히, 서해 백령도 해역이 북한의 도발에 의한 국지전 대상이 될 수 있으며), 1949년 7월 미군 철수 후 남침준비가 가속화 된 것에 비추어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의 전면 도발 가능성이 커지므로 우리 스스로 방어할 의지와 방어력 증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남북한 체제 및 경제력 경쟁에서 패배한 북한은 6-8개의 핵무기, 1,000여 발의 탄도미사일, 2,000-5,000톤에 이르는 생·화학 무기, 장사정포, 세계 최대규모인 18만 명의 특수부대와 70여 척의 잠수함(정) 등 비대칭 전력에 의한 선제공격과 속도전, 침투·국지도발이 계속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송 교수는 “한국군은 당면한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의한 일촉즉발의 비상상황에서 북한이 도발하면 즉각 응징 보복하는 태세로 전환했음을 내외에 선포하고, 분명한 주적개념의 정립과 국방예산을 증액해 경계장비를 현대화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2007년 24조 여원이었던 국방비는 2008년 26조(7.4% 증액), 2009년 28조(7.1% 증액), 2010년 29조(3.6%) 증액 등으로, 2010년 현재 육군이 32,2%, 공군이 27.9%, 해군 23.5%, 기타 16.4%로 해군이 차지하는 예산이 제일 적다”며, 서해상에서의 북한 도발을 예방하기 위한 해군 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송 교수는 “한미연합 방위태세를 보다 긴밀히 하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인접국가와 유엔과 공존하는 양자외교와 다자 차원의 외교를 강력히 전개해 핵, 미사일 등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대남 군사적 도발을 억지하는 국제공조체제를 강구할 것”과, “청와대 외교·안보·통일업무 조정체계 개선”을 주장했다.
아울러 중국에 대해서는 “계속되는 북한의 군사도발이 동북아는 물론 세계평화와 중국의 번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중국이 ‘북·중혈맹의 냉전적 사고’에 매달리지 말고 2008년 5월에 체결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인 한국에 당연히 해야 할 의미있는 역할을 다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의 모색에 대해서도 “북한의 핵 폐기를 포함한 긴장완화, 평화정착과 교류, 경제협력의 병행을 추진해야 하며, 북한에 진출한 민간기업에 대해서도 스스로 ‘통일전사’임을 주장하며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기보다 기업 스스로의 수익과 위험 판단하에 시장경제와 글로벌 표준에 맞게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6.15, 10.4 선언의 처리가 심각하다"며 "햇볕정책을 청산하고 결집된 의지로 하나가 되어 국가안보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강의를 마무리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