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체제와 평화구축
한국 초계함 침몰사건을 계기로..분단체제의 억제 기능이란 무엇인가?
최근 몇 년간, 한반도 분단을 둘러싼 국제정치사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분단'이란 무엇인가를 질문 받는다. 미·소에 의한 분할 점령 후 '독립을 추구하면 통일이 불가능하게 되고, 통일을 달성하려고 하면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는 상태', 즉 '독립과 통일의 상극'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분단 상태가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를 성립시켜 통일전쟁을 재촉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후에 출현한 '분단체제'는 단순한 분단 '상태'와는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정쟁 후, 분단 '상태'가 분단 '체제'로서 제도화되어 남북 대립도 세계적인 냉전체제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한국전쟁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1954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1961년 북한과 소련 및 중국과의 상호원조조약이 체결되어 국제정치학적으로는 지역적인 상호 억제체제가 성립한 것이다.
미소중이 정치경제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분단에 직접 관여했기 때문에, 그 후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사실, 휴전이래 56년 간, 제2차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분단체제란 '전쟁이 불가능한 체제'인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반드시 평화로운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분단체제의 완성은 오히려 전쟁이외의 폭력적 수단에 의한 도발이나 파괴, 즉 '저강도 분쟁'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그것이 분단체제의 '역설'이다. 1960년 대 이후, '남조선혁명'을 표방하면서 북한 지도부는 한국 국내외에서 군사도발, 요인암살, 무력침투, 폭탄테러 등을 반복했다. 그 마지막이 1987년 폭파였다.
그러한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해서 한미측은 반드시 효과적으로 반격할 수는 없었다.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습격을 기도하다 실패한 후, 박정희 대통령은 동일한 부대를 실미도에서 훈련시켰지만 그들을 북한에 침투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북한 미그기에 의해서 EC-121형 전자 정찰기가 격추되었을 때, 닉슨 미 대통령은 핵폭탄을 탑재한 F-4기를 군산 기지에 대기시켰지만 끝내 적공군 기지 공격을 허가하지 않았다. 랭군 폭탄테러나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한국은 반격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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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80년 대 말 냉전이 종결하고, 소련이나 중국도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그후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한 러시아는 북한과의 조약을 개정하고, 상호원조 조항을 삭제했고, 중국도 북중간 조약의 상호원조 조항, 즉 '체결국 일방이 어느 일국 또는 수 개국 연합으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음으로써 전쟁 상태에 빠진 경우'라는 규정을 엄격히 해석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인해 동맹조약을 부정하는 사람마저 있다. 게다기 '9.11'테러사건 이후 부시 정권 일부에서는 북한의 레짐 체인지(체제 전복)가 거론되었다.
그와 같은 냉전 종결 이후의 상태라고 해도, 분단체제의 '역설'은 가능하는 것일까? 올해 3월 한국 해군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건을 둘러싼 논의에서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것은, 대한항공기 폭파로부터 20년 이상에 걸쳐 억제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북한 지도부가 다시 큰 도발 행위를 실행으로 옮겼는가 하는 문제제기이다. 천안함 침몰의 첫 보도를 접하고, 북한에 의한 수많은 테러사건을 떠올리면서도, 그 가능성이 과소 평가된 것은 북한 지도부가 장기에 걸쳐 도발 행위를 억제해 왔기 때문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냉전종결 후 분단체제의 억제 기능 저하를 두려워하여, 대규모 도발행위를 실행할 수 없는 가운데, 북한 지도부는 그 노력을 독자적인 억제력 개발에 집중했던 것이다. 도발 행위를 실행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실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1990년에 소련의 쉐바르드나제 외상이 평양을 방문해 한국과의 국교수립을 통고했을 때, 북한의 김영남 외상은 "자위를 위해서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것은 북한 고위급 인사에 의한 핵무기 개발에 대한 첫 발언이었다. 그렇다고 하면 핵무기나 미사일 개발의 진전을 배경으로 이번 천안함 침몰사건은 북한이 독자적인 억제력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건 분석의 세 가지 레벨
최초로 천안함 침몰 뉴스에 접했을 때 북한 범행설이 뇌리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랭군 폭탄테러 사건,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등을 연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치더라도 운항중인 해군함정을 순간에 파괴하는 작전을 계획하여 은밀히 실행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곧바로 부정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북한의 잠수정이 초계함 천안함을 잠복하여 특수 어뢰를 발사했다고 해도 그것을 1발로 명중시키고 그 후에도 탐지되지 않은 채 도망에 성공하는 등 용이하게는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북한 범행설에 부정적이었던 하나의 이유는 청와대 습격, 프에블루호 나포, 랭군 폭탄테러와 계속된 북한의 군사적 도발 행위가,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이후 20년 이상이나 중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북한 잠수정이 동해안에서 좌초하거나 남북 해군함정이 서해안 바다에서 교전하거나 했지만, 그것들은 군사 도발도 테러 사건도 아니었다. 따라서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범행에 의한 것이라면, 남북관계의 역사가 20년 이상이나 후퇴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군민 합동조사가 진전되어 천안함의 절단된 선체나 어뢰의 추진기 부분이 인양되는 과정에서 함내사고, 좌초, 기뢰폭발 등의 가능성이 차례차례로 부정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5월20일의 최종 조사보고는 천안함의 침몰원인을 북한 소형 잠수정에 의한 어뢰공격이라고 단정했다. 또 5월24일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 해역에서의 북한 선박에 의한 해상교통로 이용 금지, 남북간 교역과 교류의 중단(개성공단 제외), 유엔 안보리이사회의 요청, 황해에서의 한미 해상군사연습 실시 등을 포함한 대북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이렇게 하여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에 빠진 것이다.
다만 당연한 일이지만 군민 합동조사단의 최종보고는, 왜 북한이 그러한 군사적 도발을 실행했는지, 그 의도나 목표에 관한 설명이 부족하고 있다. 그것들에 관한 분석은 연구기관이나 연구자 개인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북한 잠수정에 의한 천안함 격침은 어떻게 분석되어야 할 것인가? 그것이 합리적인 행위라고 상정한 아래에서 세 가지 레벨에서의 분석이 가능하다.
그 첫째는 전략적이고 국제적인 레벨에서의 분석이다. 작년 4월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나 5월 2번째 핵실험 실시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둘러싼 전략환경은 반드시 개선되지 않았다. 부시 정권과는 달리 오바마 정권은 북한과의 직접 교섭을 계속 거절했기 때문이다. 안보리 이사회의 결의 채택을 위해서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제재 결의 채택 후에는 북한 화물선을 추적하거나 골드버그 대북 제재 담당 조정관을 임명하기도 하는 등, 그것을 엄격하게 이행하는 태도를 명확히 했다. 요컨대, 오바마 정권은 북한에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고, 클린턴 정권의 '유화'정책과도, 부시 정권의 '공갈'정책과도 다른 '전략적 인내'를 발휘했던 것이다.<중략>
따라서 첫째 레벨에서의 분석에 의하면 3월26일 천안함 격침은 북한이 핵실험 이후 전략적인 한계를 군사적인 도발 행위에 의해서 타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에 의해서 오바마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의 비핵화 우선 정책을 명확하게 거절했으므로 그것은 본질적으로 제3차 핵실험 의 대체물이다.
그러나 그것과 동시에 사건 후 김정일 총서기의 2차례에 걸친 중국 방문에 나타나듯이 그것은 중국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의 부활을 수반하는 전략 환경 그 자체의 재편성을 의도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둘째는 전술적인 남북레벨의 분석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의 전문가들 대부분이 지적한 것은 작년 가을 해군함정의 총격전을 포함한, 서해바다에서의 일련의 남북 교전과의 관련성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천안함 격침을 일련의 패전에 대한 보복이라고 간주하는 해석이다.
또 그것은 올해 초부터 공공연하게 논의된 북한 급변사태론이나 핵기지 선제공격론에 대한 반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은 6월초 한국에서 실시되는 통일지방선거와 관련이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냉전종결 후 20년을 지난 군사도발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평화와 안정을 최우선 한 것처럼 북한 지도부는 지역적인 상호 억제가 기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는 북한의 국내 정치적인 레벨의 분석이다. 북한의 국내정치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의 상당수는 천안함 격침 사건 후의 대외적 긴장이, 단순하게 북한군 내의 사기 고양이나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전가뿐만이 아니라 건강 불안을 극복할 수 없는 김정일 총서기의 후계문제와 관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추측했다.
왜냐하면 올해 초부터 3남 김정은의 후계자로서의 대두를 시사하는 현상이 얼마든지 지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추측은 6월 최고인민회의에서의 국방위원회 인사에 의해 증명되었고, 나아가 노동당 정치국에 의한 노동당 대표자회 소집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되었다. 9월에 개최되는 당대표자회에서의 주요한 의제가 '노동당 최고 지도기관선거'이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김정은이 당 지도자로서 공식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평화체제는 어떻게 구축되는가
천안함 겨침사건에 관한 세가지 레벨의 분석은 모두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 북한 지도부에 있어서 그것이 국제정치, 남북관계, 그리고 국내정치 레벨에 있어서 각각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복합적인 사건임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미북교섭이나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되지 않으면 북한은 앞으로도 독자적인 억제력 구축과 중국과의 긴밀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결과 한반도에는 새로운 '분단체제'가 성립할지도 모른다. 북한의 정치체제 존속은 핵무기 개발에 의한 독자적인 억제력, 경제적인 중국 의존,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의 세 기둥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다.<중략>
천안함 사건이래 중국지도부는 북한의 모험주의에 대한 불신감을 증대시켜 그 폭주나 불안정화를 경계하고 있다. 중국에 있어서 그것은 큰 정치, 경제, 그리고 안전보장 리스크이다. 그것은 장래적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중국 의존 확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북한정책이 크게 변화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중국이 북한에 기대하는 것은 그 경제체제의 변혁, 즉 시장원리를 도입한 개혁개방이며, 그것을 토대로 하는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북한의 존속이다. 적어도 당분간, 그것은 결코 남북간의 체제 통일은 아니다. 예를 들면 작년, 중국정부는 지린성연변조선족자치주, 지린시, 창춘시를 포함한 도문강 유역 지역을 '개발 개방 선도구'로 지정했다. 이것은 국경지대에서는 첫 국가급 개발구이며, 중국정부에 의한 대북한 경제지원이 동북개발계획의 일부로서 추진되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정책의 본질을 이해하면 북한의 대중국 의존확대는 한국에 있어서 나쁜 상황만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북한의 다음의 지도자로 취임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북한의 경제체제를 변혁시킬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개발에 수반하는 경제의 개방개혁이 진전되지 않는 가운데, 북한이 정치체제의 변혁으로 나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 그것 없이 비핵화나 남북통일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중국에 의한 북한의 개발지원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회의 창'일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연설에 있듯이, 어쨌건 간에 단계적인 남북통일이 모색된다면, 거기에 대국화하는 중국의 전략적인 이익이 반영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국가연합적인 남북통일의 가능성이 보여올 것이다.(konas)
오코노기 마사오(게이오기쥬쿠 대학 교수)
* 이 글은 지난 17일 극동문제연구소와 한반보평화연구원 등이 공동으로 주최한 한일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강연한 내용임.
오코노기 마사오(게이오기쥬쿠 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