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통일 위해 애쓴 남편 명예회복이 소원”
故 이한영씨 부인 김종은씨 남편 사후 첫 심경 토로
“아직도 그때의 악몽을 잊을 수 없습니다.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순간 남겨둔 딸과 저,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했을 그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로 한국에 망명해 살다가 1997년 2월 15일 남파공작원 총에 맞아 쓰러진 고(故) 이한영씨의 부인 김종은(金鍾恩·35)씨는 오랜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남편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선 김씨는 24일 남편이 남긴 유언이나 다름없는 ‘김정일 로열패밀리’를 재출간한다.
김씨는 지금 국가를 상대로 남편의 명예회복과, 특수 신분인 그를 지켜주지 못한 국가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남편이 ‘김정일 로열패밀리’를 내는 바람에 신분이 노출돼 위험해졌다는 국정원측의 주장에 대해, 김씨는 “막대한 정보를 국가에 제공했고, 북한의 현실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일부 젊은이들에게 그곳의 정확한 실상을 알리고자 했던 고인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씨는 남편이 사망한 후 국정원은 500만원을 주면서 더 이상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으며, 재판이나 언론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나가지 말아달라는 주문만 했을 뿐 어떤 사과나 보상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김씨는 아직도 남편의 죽음에 대해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피격하기 전 장총을 든 검은 옷의 사람들이 자신을 쫓고 있는 꿈을 꾸며 불안해했다는 이한영씨는 분당의 친구 집에 주소지를 옮겨놓고 열흘에 한번씩 들르곤 했는데 어떻게 그날을 알고 저격했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는 남편으로부터 북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김정일에 대해서는 가족이어서인지 나쁜 얘기는 별로 한 것이 없지만, 정치범수용소라든가 굶주리는 사람들, “김정일이 해외로 망명해 빨리 조국이 통일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한영씨는 입국 이후 사업실패로 큰 시련을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재기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고 한다. “초콜릿 사업으로 우리 부부는 정신없이 일했어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보내고 그 다음 날인 15일에 그이가 피격됐습니다. 21일 딸 예인과 약속한 생일파티에는 끝내 참석하지 못했죠.”
김씨는 “그이를 처음 만났을 때 북한에서 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면서 “유머 있고, 마음씨 곱고 여유가 있어 부잣집 귀공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혼하기 한 달 전 그가 북한의 로열패밀리였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면서 “집안의 반대도 있었지만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이한영씨는 늘 외로웠는지 친구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그럴 때마다 술값은 으레 이씨의 몫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신혼여행 때 출국금지된 자신의 처지 때문에 아내에게 해외여행을 시켜주지 못한 것을 마음의 응어리처럼 간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남편이 남기고 간 딸 예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될 수 있도록 억울하게 죽어간 이한영씨의 한을 풀어주는 게 남은 자의 몫이요, 제 생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 글=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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