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의 권리 그리고 의무
불법 자금으로 줄줄이 구속되는 정치인들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고, 현실감없는 운동권 학생 같은 사고를 드러내는 국회의원들의 언행은 우리를 절망으로 내몰지만, 한편으론 그런 사람들을 뽑아준 유권자들의 책임도 막중하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 바로 이런 경우다.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이 된 것은 어쩌면 영국이나 프랑스의 대중들이 오랜 세월 피를 흘리며 쟁취한 정치적 권리를 우리는 한꺼번에 너무 쉽게 얻었고, 그 결과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한 채 경솔하게 그 권리를 사용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흔히 대중민주주의 이전의 정치제도를 유산자(有産者)들만의 잔치였다고 비난하는데 그것은 역사적 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비판이다. 자유주의에서 참정권을 유산자에게 한정한 이유는 재산이 있어야 사회의 안녕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며, 재산이 있어야 강자(强者)로부터의 침해 없이 진정 독립된 개인으로서 행동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서재필·유길준 같은 개화의 선구자들도 수십 년간의 계몽과 진보가 성취된 후에야 ‘민(民)’에게 정치적 권리를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조선 사회가 처한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이해 가능한 판단인데도 그들을 반(反)민주적이라고 매도하는 글들이 우리 학계에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여성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 존 스튜어트 밀은 국가정책이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수 없다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공리주의를 주창했다. 약자에 대한 그의 배려를 알 수 있는 대목인데, 그런 그가 옹호한 선거제도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한 표씩 던지는 것이 아니었다.
밀은 대중민주주의로의 추세를 인정했지만, 선동정치가 야기할 수 있는 폐단을 보완하기 위해 교육을 근거로 한 복수 투표제를 제안했다. 대학졸업자의 이성적 판단력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낫다는 근거는 없지만, 영국에서는 어쨌든 대학졸업자 복수 투표제가 1948년까지 실시되었다. 낡은 시대의 낡은 제도로 보이겠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숙해온 사회가 겪은 불가피한 과정이었다. 한데 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그 과정을 건너뛰었다.
정치적 권리를 경솔하게 사용하는 폐단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지만, 특히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젊은층에서 더 많이 발견될 수 있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많이 어리다. 물론 어린 나이에 삶의 현장에 내몰리고 지혜를 터득한 청년들도 많지만, 우리 정도 근대화된 사회에서 우리처럼 자식이 오랫동안 부모에 의지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문제는 이 젊은이들에게 어김없이 투표권이 부여되고, 그들은 책임 있는 공적(公的) 역할의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인기영합에 급급한 일부 정당과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나이 제한을 19세로 낮추려는 움직임까지 추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참정권은 그 사회에 속한다고 해서, 그리고 일정한 나이에 도달했다고 해서 그냥 주어지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진정 독립인의 자질을 갖추고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행사하는 특권이자 의무이어야 한다. 그 기준에 적합한지 우리 유권자 모두가 반성해 봐야 하며, 이젠 제발 제대로 자격 갖춘 사람들을 책임있는 자리에 선출하는 성숙한 유권자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16대 국회, 아니 그 이전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오는 17대 총선에서는 '책임있는 유권자'로서의 자격을 행사해야 되겠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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