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의 `노 대통령 선거중립' 요청 이후
중앙선관위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1주년 특별회견 발언에 대해 선거법상 `공무원의 선거중립' 조항을 위반했다며 공무원으로서 선거중립 의무를 지켜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지지정당에 대한 질문을 받고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선관위의 결정이 알려지자 이해당사자측인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물론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청와대는 일단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키로 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어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정치적 의사표시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토를 달면서 현행 선거법의 시대성을 문제삼아 "제도와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자칫하면 현행법이 구시대의 산물이므로 법 해석을 달리하면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오해를 살 소지가 많은 얘기다. 법 개정은 최소한 총선이 끝난 후의 문제다. 지금은 우선 법절차에 따른 선관위의 결정을 수용하고 불필요하게 정국을 긴장시키는 일을 자제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옳다. 선출직인 시도지사나 구청장이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지역신문.방송기자 질문에 답하면서 특정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나선다면 선거판이 어떻게 될까. 차라리 노 대통령의 뜻과 행동을 지지하고 현 정국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도 공유하는 유권자라면 대통령이 말을 하지 않아도 도와줄 것으로 믿는 게 상식적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의 탄핵 주장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지금 여당은 과거 독재정권처럼 권력기관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관권, 불법 선거를 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의 비율도 마찬가지지만 국회 의석수로 봐서도 여당이라는 열린우리당이 어거지로, 혹은 날치기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따라서 과거 `권력기관'이라고 일컬어졌던 국정원같은 곳이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막무가내식으로 선거개입을 할 수도, 할 리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야당이 툭하면 탄핵을 거론하며 마치 파국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여론을 몰고가는 것은 국민불안을 가중시켜 상대적 이익을 취하려는 정치술수라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혹시 선관위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정치권이 앞장서서 선관위를 탓한다면 정말 이들이 법을 지키고 나라를 책임질 자격이 있는 집단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선관위의 지적을 수용하지 못하는 풍토라면 이제 공명선거 여부의 판단을 누구에게 맡길 것이라는 말인가. 선관위가 과거 독재정권 때는 할 말을 제대로 못하더니, 이제와서 정당한 의사표시를 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정치권의 눈치를 보아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는 식의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대통령이 시대가 바뀐 것을 인식해 진보적인 발언을 한 만큼 선관위도 과거에 못했던 `옳은 결정'을 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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