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2인자 장성택은 누구인가?
장성택(65). 그는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정권을 보좌할 최측근 인사로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은 인물이다.
장성택은 북한의 김정일 사망 발표 이후 장례식까지 치르는 기간 내내 김정은 바로 뒤에서 김정일이 가는 마지막 길을 함께하면서 차후 김정은 시대를 이끌 명실상부한 북한의 2인자로 부각됐다.
이와 관련해 대북전문가들은 그가 과연 후계자 김정은에게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먼저, 황장엽 前 노동당 비서는 생전에 장성택에 대해 “개혁주의적 성향을 가진, 김정일 이후 북한을 이끌어 나갈 세력”이라며 평가를 했었다.
반면에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로 북한과 오래 협상을 해온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차관보는 "장성택이 외부세계엔 개혁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는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력전환기에 새로운 지도자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김일성 일가에 대한 우상숭배를 지속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일본의 시게무라 도시미쓰 와세다대학교 교수도 "장성택은 김정은의 경쟁자가 아닌 그의 후견인적인 존재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성택은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나왔다. 딸인 김경희와 결혼하기전 교제기간에는김일성이 한때 반대해 장성택을 원산 농과대학으로 쫓아낸 사실이 있다.
김경희와의 결혼으로 신분상승한 장성택은 평양시 당 지도원부터 출발했다. 이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외교부 담당 과장 당시에는 ‘충성의 외화벌이’임무를 수행하면서 그 돈으로 77년 보통강 구역에 김정일의 피로를 회복시켜준다는 ‘피로회복관’을 지어 김정일에게 바쳤다.
이후 장성택은 세계 각국에 있는 대사관들에게 외화를 바치라고 강요해 이때부터 외교관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마약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성택은 78년 동평양에 있는 외교부 초대소에서 1주일에 한번씩 외교부 간부들 중 자신의 측근들을 모아놓고 연회를 열다 김정일의 눈밖에나 강선제강소로 쫓겨난 적도 있다.
그는 한때 김정일에게 북한의 개혁개방을 요구한 적도 있다. 2002년 1월에는 국가예산을 개인목적으로 사용하다 사회안정국에서 처벌을 받고 건강악화로 아내 김경희와 강원도에서 요양하다 2006년 김정일이 주관한 당중앙위원회에서 열린 설 연회에 참석,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 부장 직함을 받으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다음은 장성택의 경력이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1985년 7월 조선노동당 청년사업부 제1부 부장
1986년 11월 최고인민회의 제8기 대의원
1989년 4월 조선노동당 3대혁명소조부 부장
1992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95년 11월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 부장
1998년 9월 제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003년 9월 제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006년 1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 부장
2007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행정부 부장
2009년 4월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
2010년 6월∼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2010년 9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부장),
조선노동당 국방위원회(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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