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과 우리 안보
2003년 3월20일 미·영 동맹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이라크전은 시작된다. ‘충격과 공포’ 군사작전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영국 페어몬트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B-52 중폭격기 편대와 인도양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에서 날아온 B-2 스텔스 다목적 폭격기 편대가 공습을 주도했으며 홍해·걸프해·아라비아해 항모전단의 F-18 호닛과 F-14 톰캣이 합류했다. 구축함과 순양함을 떠난 수백 기의 토마호크가 사전에 입력된 표적 정보의 지시에 따라 맡은 목표를 향해 정확히 날아가 타격을 가했으며, 항공기에서 투하된 수십 톤의 정밀표적공격폭탄(JDAM) 또한 바그다드의 목표물을 찾는 데 빈틈이 없었다. 영빈관으로 사용되던 사담 후세인의 상징물 구(舊)왕궁이 완파됐으며 지휘통신 시설과 방공망이 일시에 붕괴 국면을 맞아 이라크가 갖고 있는 대항 수단은 심리전과 비정규전밖에 안 남았다.
이라크전은 합동성 효과의 극대화 및 입체전 수행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미래전의 서막이며 이는 당분간 미국만이 수행할 수 있는 전쟁으로 묘사될 수도 있다.
개전 며칠 후 미·영 동맹군 주력부대의 진격이 나시리야·나자프·카르빌라 지역 등지에서 일시적으로 주춤, 전쟁의 장기화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여론을 부정적으로 몰아갈 때도 미·영군은 진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병참선이 신장돼 측후방이 위협받고 이라크군의 도시 게릴라전과 자살폭탄 공격 등 비대칭전으로 전선이 일시 교착되는 듯했으나 이러한 위협이 작전계획의 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전 3주 만에 미지상군 주력부대가 바그다드 시내를 장악하면서 주요 전투는 거의 마무리됐으며 바그다드 중심가 알피르두스 광장에 서 있던 후세인의 대형 동상과 각지의 상징물들이 성난 시민들에 의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그의 철권통치는 막을 내린다. 수많은 시민들은 시내에 진출한 미군을 환영하며 해방의 기쁨을 보여 줌으로써 전쟁의 정당성이 확보되고 이라크의 안정된 장래 또한 예견되기도 했다.
전쟁이 발발한 지 42일째인 5월1일 부시 대통령이 전투기를 직접 몰고 미 항모에 기착,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미국의 리더십은 절정에 이르렀다. 미국인들은 환호했으며 국제사회는 또 한 번 미국의 엄청난 힘을 확인하는 무대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군사작전과 ‘이라크 민주화작전’은 별개의 전쟁임을 개전 1주년이 되면서 확인되고 있다. 수 개월 안에 25만 명의 대군을 신속히 전개할 수 있는 사전배치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은 두 개의 전구에서 동시에 작전할 수 있는 작전 능력을 과시했으나 점령한 이라크를 민주화해 나가는 데는 힘이 부친 듯 보인다.
왜 미국의 리더십이 도전에 직면하게 됐는가.
첫째, 이라크의 안정화가 더디게 진척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미군은 평정작전 과정에서 이라크인의 인심을 얻는 데 실패, 이라크 민주화라는 전쟁의 제1목표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맞은 것이다.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인식되면서 민심은 떠났으며 이라크인으로 구성된 저항세력과 외부에서 들어온 테러리스트들이 준동하면서 미국은 어려운 상황을 맞은 것이다.
둘째, 부시 행정부의 도덕성에 의혹이 제기되면서 리더십이 도전받게 됐다.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찾는 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알 카에다 테러조직과 후세인과의 연계성을 입증하는 데도 실패했다. 더욱이 의도적인 정보 왜곡과 정보 기만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더욱 손상받게 됐다. 3월17일 부시 행정부의 대이라크 정책 지지도가 겨우 47%라는 내셔널 에덴버그의 여론조사 결과나 스페인군의 6월 철군 선언 등 동맹전선의 균열 조짐 등은 현 부시 리더십의 곤경을 잘 보여 준다.
셋째,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이나 패권주의적 정책행태에 반감을 공유한 경쟁국들과 약소국들의 반미정서가 확산되면서 이는 곧바로 미국의 리더십에 손상을 입히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향후 미국의 대외 군사전략 방향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된다.
어려운 입장에 처한 미국은 동맹전선의 균열을 막고자 급기야 유엔이 다국적군을 통제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스페인의 철수 선언 등 일부 국가의 동요와 더불어 한국군도 주둔지역을 재검토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어 상황이 혼미해 보인다.
그러나 유념할 일은 상황의 부침은 일시적 현상이라는 점, 미국 중심의 질서 재편은 불가피하다는 역사의 흐름을 길게 내다봐야 한다. 이제 한국전쟁 당시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반세기 이상 돈독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우방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시점이다.
<고성윤 한국국방연구원 군사기획연구센터장> (제공:국방일보)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