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종착역, 한반도 평화공존 ①
1. 서 언
한국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고 휴전상태에 있을 뿐이다. 한,미 대 북,중의 대결 구도 역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60 여 년이 흐르는 동안 국제사회에서 차지 하는 동북아의 정치, 경제, 군사적 비중이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한 한반도의 전략적 비중 역시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동서냉전의 전초 기지(frontline state)에 불과했던 한반도가 오늘날 미,일 해양세력이 아시아 대륙으로, 중,러 대륙세력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교두보(bridgehead)로서, 또한 미,중 양 강대국 간 패권경쟁의 완충국(buffer state)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한반도의 전략적 비중이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다. 또한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는 오늘 날 지구상에서 탈냉전 기의 유일한 냉전지역으로 남아 있으면서 휴전선을 경계로 100만 병력이 대치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군사 대치 지역이다.
한민족의 오랜 역사를 통해서 한반도는 중,일,러 주변 3강의 패권경쟁의 각축장으로서 희생을 강요당해 왔다. 임진왜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이 대표적 케이스라 할 수 있다. 한반도가 38선을 경계로 분할된 것도, 한국전쟁이 일어난 것도 미,소간 동서냉전의 산물이며, 휴전이 성립되고 지금까지 휴전체제가 지켜지는 것도 미,중 양 강대국 간 전략적 묵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한반도 평화공존이 이루어지는 것도, 궁극적인 통일로 연결되는 것도 미,중 양 강대국 간 전략적 묵계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한반도의 현실이다.
북한이 수령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남조선 적화통일을 목표로 남조선 배제정책을 추구하는 한 한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수령독재체제를 포기케 하고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공존을 수용토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극단적 폐쇄성과 극단적 경직성으로 일관해 온 수령독재체제의 본질적 속성에 비추어 북한 당국이 스스로 한반도 평화공존을 수용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오히려 지금까지 해온 바 대로 파국점을 향해 관성적 질주로 내달으면서 연명수준에서 버티다가 (muddle through) 김정일 시망후 김정은 체제에 따른 정변, 극단적인 경제피폐로 인한 민란 우려 등 스스로의 해결이 불가능한 비상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북한이 비상사태에 직면하는 경우, 유일한 동맹국이자 3대 후계체제의 후견자인 중국에게 ‘SOS’를 청하고, 중국은 자신의 경제대국화 추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북한으로 하여금 남침전쟁을 포기하고 중국 식 개혁을 추진토록 요구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하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북한이 한반도 평화공존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할 것이다.
미,소 간이든 미,중 간이든 한반도에서 패권경쟁을 벌이는 양 강대국이 각자의 국익과 전략을 펼 수 있는 최대공약수는 현상유지와 세력균형을 바탕으로 한 ‘평화공존’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한국전쟁이 종결되는 것 역시 북한이 수령독재체제를 포기하고,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중 양 강대국이 각자의 국익과 전략에 비추어 한반도 평화공존을 수용하는 전략적 묵계를 하는 것이며, 현실적으로 주한미군의 존속과 북핵의 안정관리를 상호 인정하는 것이 묵계의 핵심요소가 될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국제금융위기 이후 미,중 패권경쟁이 가시화되면서 오히려 한반도 현상유지(status quo)와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을 담보하는 주한미군의 존속과 북핵 문제의 안정관리 쪽으로 미,중 양 강대국이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한국전쟁을 매듭짓는 한반도 평화공존의 길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할 것이다.
2. 미,소 군정의 차이점
미,소간 동서냉전은 2차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장차 종전 후 동서냉전의 도래를 의식한 채 물밑에서 은밀히 진행되었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독,소 불가침 조약이 성립된 사실 자체가 스탈린의 세계 공산화를 목표로 한 영토적 야심과 결코 무관치 않다. 같은 맥락에서 2차 세계대전 내내 소련은 동부전선에 미국의 참전을,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 소련의 참전을 종용한 사실에서 미,소 양국의 종전 후 전개될 동서냉전에 대비한 전략적 복안을 엿볼 수 있다. 소련은 미국의 원폭 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기 불과 1주일 전에 대일선전 포고와 함께 군대를 북한에 진주시켜 38선을 경계로 미,소간에 한반도를 양분하면서 48.8월에 남한 정부가, 48.9월에 북한 정부가 수립되기 까지 3년 여 기간 미,소의 군정이 실시되었다.
소련은 한반도 사정과 국제정세에 정통한 정치장교 출신의 스타코프 대장을 군정장관으로 임명하여 공산정부 수립과 장차 남침전쟁에 대비한 군사력 증강을 일사불란하게 진행시켰다. 이에 반해 미국은 전형적인 무골로서 한반도 사정과 국제정세에 관한 식견이 없는 하지 중장을 군정장관에 임명하여 민주경험이 전무한 남한에 200년 전통의 미국적 민주주의를 무리하게 적용하면서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반도에 가장 가까운 오끼나와 주둔군 사령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정장관에 임명된 하지 중장은 당시 현실성이 전무한 소위 ‘북침’을 저지한다는 이유로 군을 치안유지를 위한 경찰수준으로 유지했을 뿐 북의 ‘남침’을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고, 전혀 대비하지도 못했다.
소위 ‘미국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남한사회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십분 이용한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이 종횡무진 구사되면서 제주도 폭동, 여수,순천 반란 사건, 대구폭동, 지리산 게릴라전 등 북한의 대남적화 차원의 무력폭동이 난무하면서 남한의 치안이 극도로 혼란한 상황에서 남한은 아무런 준비 없이 북한의 남침전쟁을 맞게 되었다.
정치식견이 없는 하지 중장을 군정장관으로 임명한 사실 자체가 당시 미국정부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며, 장차 한반도가 국제정세에서 차지할 전략적 비중을 꿰뚫어 보고 예의 대처해 온 소련정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하겠다.
특히 하지 군정장관은 한국의 정치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두 가지 큰 실수를 범했다. 독립운동의 본산이자 대한민국 정통성의 근거인 상해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은 점과 사회혼란 예방 차원에서 일본의 관리 체제를 존속시키면서 소위 ‘일제 유제 미 청산’의 오점을 남긴 점이다. 이 두 가지 모두 김일성 공산정권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역작용을 했고, 일제 유제의 철저한 청산을 통해 민족정기를 쇄신한 북한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북한 공산정권이 남한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할 것이다.(2부 계속)
(konas)
김명배(호서대학교 초빙교수, 전 주 브라질 대사, 평화통일국민포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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