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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병 롤 모델 수기집〕청춘의 여름

Written by. 송민준   입력 : 2013-02-01 오전 8: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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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2012년 8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등 현역병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에 실린 내용임. 이번 수기집은 실제 사례를 통해 현역병 모집제도의 장점을 소개하고, 입영대상자 스스로 복무 할 군과 복무분야를 선택해서 지원 입영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편집자 주)

 젊은 시절, 그 뜨거운 나날을 군대 안에서 보내야만 하는 현실에 우리네 청춘은 왠지 손해를 보는 것만 같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이전의 선배들도 그랬던, 모두가 겪었던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다녀온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역시 군대는 다녀와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단순히 우리도 다녀왔으니 너희도 가라는 속 좁은 이야기가 아니다. 군 생활을 통해 우리가 지금껏 겪지 못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변화와 성숙을 갖출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군 생활을 통해 책임감과 자신감을 배양할 수 있고 친구들과 가족 등 우리 곁에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기에 더욱 그렇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지만 누구나 알 법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나의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나는 전공하는 학과와 관련된 분야에서 군 복무를 하고 싶었고 지원 가능한 분야를 살펴보다 ‘일반물자관리’라는 분야에 지원했다. 지원 후에 제출해야하는 증빙서류가 꽤나 많았다. 서류를 모두 송부하고 난 이후 서류전형이 끝나 합격소식을 듣고 면접전형을 거쳤다.

 군 입대를 하는 과정도 전문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느꼈다. 면접에서는 다양한 질문이 오갔고, 나 스스로도 솔직하게 답변했기에 떨어져도 후회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소식이 문자 메시지로 전송되었고, 나는 다음해 2월 12일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

 신병 때의 일은 누구나 다 같을 것이다. 故김광석 씨의 이등병의 편지처럼 헤어진 가족의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낯선 건물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하는 모습이 왠지 안쓰러울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신병시절을 보냈고 4주간의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이후 자대에서 군수과로 배정되었다. 처음에 맡았던 업무는 보급업무 중에서도 특수보급으로 분류되는 탄약업무를 배우게 되었다. 부대마다 사정이 있어 사실 특수직책이 때에 맞춰 정확히 분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생각보다 잦았다.

 난생 처음 해보는 업무에 처음에는 실수도 많이 하고 문제도 많이 생겼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업무에도 많이 적응이 되고 다른 업무도 도와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가 탄약 관리병이 교육과정을 끝마치고 군수과에 편입됨에 따라 내가 원래 지원했던 일반물자보급으로 업무가 변경되었고, 처음부터 업무를 다시 배워야하는 사정이 생겼다.

 그렇지만 사수(주책임자)의 노력과 담당관의 꾸준한 관심덕택에 빠르게 업무에 적응하며 이내 탄약부터 일반물자까지 폭넓은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 식량보급과 유류보급 관련된 업무를 지원함에 따라 식량부터 장비부속품까지 총괄된 보급업무를 경험하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은 실제업무를 하는 담당자들이 분류되어 있었기에 나를 일반물자의 경우만 주책임자에 편성되고 전 분야에 부책임자로 배정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부책임자로 배정된 후에는 매일을 바쁘게 보내야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쉽게 할 수 없는 업무들과 경험들을 가질 수 있었구나’하는 마음에 뿌듯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돌이켜보아 쉽게 이야기해도 사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후회도 해보고 고민도 해보았다. 하지만 고민해보아도 쉽사리 변하지 않을 현실이었고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자괴감만이 커져갔다. 주간에 업무를 하고 야간에는 탄약고 경계근무를 서며 어떤 날에는 불침번까지 서야했다.

 날은 매우 추웠고 하루하루 근무에 지쳐가고 있었다. 너무 힘이 들어 탄약고 근무를 서다 한숨을 쉬니 그 소리를 들은 선임병이 내게 물었다. “웬 한숨이냐?” 나는 선임병의 말에 이리저리 푸념했다. 내 가슴에 쌓인 이야기들, 업무의 힘겨움과 근무의 피곤함 등 꽤나 오랜 시간동안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선임병은 피식 웃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무가 끝난 후에도 그 일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지나가 버렸다. 처음에는 ‘왜 물은 거지?’하는 생각뿐이었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때의 질문이 단순히 한숨에 대한 질문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 선임병이 전역하는 날 나에게 말해준 이야기였다.

 그 때의 기억을 잊고 있었던 것은 나인데, 선임병은 지금껏 이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랄만한 일이었다. 선임병이 말하려고 했던 것은 처음엔 단순한 위로의 말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투덜대는 내 모습에 굳이 그런 위로의 말은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냥 말없이 들어주자 했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지쳐있었고 단순히 누군가 나의 불평을 아무런 이유 없이 들어주기를 간절히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도 간간히 그 선임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전우로서, 그리고 힘들 때 묵묵히 곁에서 응원해주던 사람으로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탄약고 경계근무 시절을 이야기하고는 한다.

 그런 경험을 하고서 나는 매사에 더욱더 매진하게 되었고 마침내 전역이라는 영광스러운 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발자국 내딛기 힘들었던 위병소를 뚜벅뚜벅 걸어 나오니 허전함이 맴돌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한 번 더 내가 근무했던 대대 위병소를 바라본 후 귀향길에 올랐다. 그렇게 귀한 경험을 얻었던 나의 군 생활은 학업에 꽤나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경영학전공으로서 유통과 물류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군수업무는 나에게 있어 최적이자 최대의 경험이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학문적인 부분에서만 느껴야하는 것을 직접 다루어보고 관리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인해 학업적인 이해 또한 수월했다. 그리고 군 시절에 많은 물건들을 다루기에 나 혼자의 힘으론 부족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인원을 분배하는 법과 효과적으로 일을 수행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되어 경영학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팀과제를 진행하는 과정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 교내 대회에서 출전하여 상을 타는 등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지금도 취업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느껴질 때마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뜨겁고 단단한 청춘의 시기, 힘든 훈련과 업무들, 그리고 차가운 겨울날 텐트에서 바라보았던 청명한 밤하늘까지도. 지금 나는 현재 차량 관련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에 복귀할 때면 녹초가 되기 십상이고 공부도 병행해야하는 입장이기에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다.

 부쩍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도 줄었다. 매일같이 땅을 보고 살며 기계와 먼지, 떡하니 올라간 지붕을 바라보며 피곤한 몸을 뉘여 잠을 청할 뿐이다. 그 때 그 시절, 군 생활 속에서 바라보았던 하늘이 그립다.

 갇힌 생활이었지만 마음은 한결 편했던, 그리고 모두가 같은 생각과 시공간 속에 존재하며 때로는 삐걱거리고 때로는 활기찼던 내무생활도 그립다. 지금은 모두 바라볼 수 없지만 그 시기에만 느낄 수 있었던 내 청춘의 여름, 마치 소나기와 같은 시원함과 상쾌함이 느껴지던 그 시절 그 때가 나는 너무도 보고 싶다.

 타임머신은 언제쯤 만들어질까? 내가 될 순 없지만 그 때의 내 모습을 멀리서나마 보고 싶다. 꿈처럼 영화처럼, 어차피 그 땐 내가 될 수 없는 내 모습이라도.(Konas)

송민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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