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北인권 표결, 기권 말아야
한국의 인권 수준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아시아를 대표할 정도는 될 것이다. 일본은 과거의 침략 역사를 깨끗이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탓에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중국은 국내 인권 상황이 자유롭지 못하다. 두 나라에 비해 한국은 대외적인 인권 경쟁력에서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인권은 한 나라의 도덕적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이며, 정치·경제·문화적 경쟁력 못지않게 국가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국이 앞으로 인권을 국가 브랜드로 키워나가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장애물이 있다. 북한 주민과 탈북자들의 인권 문제다. 세계 최악의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한국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인권의식 자체를 의심케 만든다. 인권의 본질은 보편성과 국제성이다. 같은 민족의 처참한 인권 상황마저 모른 체하고 있는 한국이 국제 인권문제에 발언권을 갖기는 어려운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북한 인권을 거론해 봐야 실익도 없이 남북관계만 해친다. 그보다는 북한을 지원해 살기가 나아지면 인권도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경제난이 풀리면 저절로 인권이 나아진다는 논리는 어디서도 먹히기 어렵다. 오히려 거꾸로다. 아시아인 최초의 노벨 경제학상(1998년) 수상자인 인도 출신의 아마르티아 센 교수는 “민주적인 정부에서는 심각한 기아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금 국제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북한 인권 문제는 인류 보편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화학무기 개발을 위해 사람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고 체제에 위협적인 인물은 재판도 없이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거나 공개처형하는, ‘인권 침해’라기보다 ‘인간 말살’에 관한 이야기다. 이걸 인권문제라고 하면 사치다.
북한에 압력을 가하면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도 검증되지 않은 허구이다. 지금 북한에 가장 강한 인권 압력을 넣고 있는 쪽은 유럽국가들이다. 그래도 북한은 이 국가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려고 안달이다. 실제로 압력이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북한은 요 몇 년 사이 유엔 인권이사회에 인권 관련 정기보고서를 제출하고 헌법에 거주 이전과 여행의 자유를 신설했다.
유럽국가들과 인권 대화를 갖기도 한다. 물론 이는 실질적 인권 개선과는 무관한 외교적 호도책에 불과하지만 북한정권이 국제사회의 압력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는 조짐임에는 틀림없다.
인권문제는 1대1 국가관계에서는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인권 분야에는 일찍이 여러 국가들이 참여하는 다자간 협정이나 기구가 수없이 탄생했다. 유엔이 그 중심이다. 유엔의 인정을 받는 국제 인권활동은 정당성과 신뢰가 보장된다. 그런데도 한국은 북한 인권문제를 다루는 유엔의 활동에서마저 방관자를 자처하고 있다. 유엔인권위원회의 북한 인권개선 촉구결의안 표결에서 한국 정부는 작년에 불참한 데 이어 올해도 기권 방침을 정해놓고 있다.
오는 15일 총선 날 유엔인권위의 북한 표결이 예정돼 있다. 우리가 온통 선거 결과에 빠져들고 있는 순간 국제사회는 한국을 민족의 인권문제에 등을 돌린 인권 냉담국으로 기록할 것이다. 집권 여당의 총선 공약에도 북한 인권개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으니 무슨 변명이 통하겠는가.
(김현호·조선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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