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행 열차, 鐵馬는 달리고 싶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통일을 위해서... 강한 국가, 강한 군대, 통합된 국민의 의지로 안보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월정리 역(驛)은 고요히 한가로움에 잠겨 있었다. 지척에 동에서 서로 이어진 155마일 휴전선 철책(鐵柵)이 없다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감을 가로막지 않는 비무장지대(DMZ)가 없다면 서울을 출발해 원산을 향해 ‘부아앙’ 기적소리도 높다랗게 힘차게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련만 열차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1950년 6월, 63년 전 그 날도 서울을 출발해 쉬지 않고 달렸을 경원선 열차는 자그마한 간이역 월정리 역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였을 터인데, 지금 그 기차는 간데없고 6․25전쟁 당시 마지막 기적을 울렸을 객차의 일부 잔해와 유엔군 폭격으로 부서진 녹슨 인민군 화물열차 골격만이 마치 야외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 같은 모습으로 누워 있다. 반 토막 난 오늘의 아픈 이 땅의 현실을 실물로 대변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달리고 싶어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폐역(월정리 역)이 전쟁과 분단의 아픈 상흔을 고스란히 안은 채 하나된 민족, 하나된 문화와 국토 통일로 승화시키고자 국민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듯이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 월정리 역 인근 ‘DMZ 평화 문화공원’에는 짧은 삶을 조국에 바친 위대한 군신(軍神)이 지금도 북녘 땅을 응시하며 통일의 그 날을 고대케 하고 있어 현장을 찾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숙연케 한다.
|
정전을 불과 2주 앞둔 1953년 7월13일 강원도 화천 교암산 전투에서 장렬하게 자신을 바쳐 동료 전우와 조국을 지켜낸 고(故) 김교수 대위와 그가 지휘한 6중대원을 기리는 추모 공적비가 있기 때문이다.
60년 전 1953년 7월의 전황(戰況)은 한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고 치열했다. 전 전선에서 총성이 멈추지 않고 끝없이 전투가 이어졌다. 막바지 휴전이 임박하면서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피아 간 혈전(血戰)에 혈전은 더해만 갔다. 그 혈전 중에 한 청년 장교가 죽음으로 사수하고 이끈 국군 6사단 6중대의 교암산 전투가 있다.
휴전 직전 중공군이 마지막으로 시도한 7․13공세에 김교수(육군종합학교 32기, 마지막 기수) 대위의 6중대가 휩싸였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고꾸라지고 엎어지고 또 넘어져도 떼거리로 몰려드는 중공군을 국군 6사단 2연대 김교수 대위가 이끄는 6중대는 생사의 겨를 없이 총탄을 쏟아 격퇴에 격퇴를 거듭해야 했다. 13일 아침부터 14일까지 이틀에 걸쳐 무려 6번이었다.
‘교암산 전투’라고도 불리는 이 7․13공세는 화천군 적근산과 백암산 북쪽, 교암산을 중심으로 불쑥 솟은 ‘금성돌출부’를 차지하기 위해 중공군은 199사단을 주력으로 대규모 공세작전을 전개, 7월 13일 오전 7시 포병화력을 앞세워 대대적인 공세를 가해왔다.
교암산은 아 6사단이 1953년 휴전 무렵까지 확보했던 국군의 요지로 이 고지는 금성천 동쪽의 아군 주 저항선에서 가장 표고가 높기 때문에 방어편성 상 핵심고지였으며, 이 고지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화천 선까지 철수해야 하는 제2군단 방어진지의 최대 거점이었다.
진지방어에 나선 6중대는 14일 오전 6시까지 비가 내리고 모든 진지가 파괴되고 유선통신마저 두절된 상황에서 무려 여섯 차례에 걸친 적의 공격을 처절한 육박전과 포병의 진내사격으로 물리쳤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적의 포화는 강도가 더해졌지만 6중대장 김교수 대위는 중대의 진두에 서서 작전을 지휘했다. 하지만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물밀 듯이 밀고 오는 적을 100여 명의 중대원이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김 대위와 중대원들은 이 전투에서 6명을 제외한 전원이 전사했다.
하늘은 결코 무심하지 않았다. 김교수 대위와 6중대의 구국의 몸바쳐 살신성인한 전투 결과로 아군은 재정비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교암산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정부는 그에게 군인의 최고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추서(追敍)했다.
7월12일 오전, 민통선 북방 철원평야는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잎새 벼들로 푸르름이 가득하고 시골 내음이 주는 넉넉함으로 평화롭기 그지없지만 월정리 역 DMZ 평화 문화광장으로 가는 산길 옆으로는 철조망에 ‘지뢰’라고 씌어진 삼각표시대가 일순 이곳이 최전방지대임을 퍼뜩 깨닫게 해준다.
11시 ‘故 김교수 육군대위 金敎洙 제6중대장병 공적비’ 앞에서는 60년 전 이 땅을 불법 남침한 북한집단에 맞서 장렬하게 전사한 이들 호국의 수호신을 위한 추모제가 열렸다. 당시 그 때를 상기라도 하듯이 장대 같이 쏟아지는 장맛비 속에서도 유가족(조카)과 6사단장을 비롯한 2연대 장병, 육군종합학교(전시사관학교)전우회원, 지역 내 보훈 안보단체장 등이 참석해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켜낸 김 대위와 6중대 장병의 조국애에 한없는 감사와 명복을 기렸다.
이 날 김관진 국방부장관도 추모사(6사단장 대독)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킨 참전용사들의 위대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그래서 임들을 이 땅의 영웅으로 부르게 된다” 고 추모했다.
육군종합학교전우회 이영호 회장은 “여섯 차례에 걸친 적의 침공을 육탄전과 진내사격으로 무찌르고 실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싸우다 끝내는 ‘이대로 죽을수는 없다. 나가 싸우자’며 선두에서 절규하는 중대장의 뒤를 따라 총검으로 육탄전을 벌이던 그 처절했던 마지막 모습과 절박했던 최후의 상황을 상상할 때 지금도 적개심(敵愾心)이 용솟음친다”며 참전노병의 나라사랑 기개를 그대로 드러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산화시켜 나라를 구한 이 땅의 영웅들. 고(故) 김교수 대위와 6중대 장병들이 ‘호국의 별’이 된지 60주년. 2013년은 한미동맹 60주년(9.30)에 7월27일은 정전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북한 집단은 1953년 정전협정 조인 이래 지난 60년간 정전협정을 43만 건이나 위반하였다. 대규모 침투와 국지도발이 약 3000건(2012년 국방백서)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과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이 대표적이다. 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기습, 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 저격 기도, 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 암살 테러, 87년 11월 28일 대한항공 858기 폭파 테러 등 북한의 도발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북한이 1990년대부터 정전협정 무력화를 시도해오다 지난 3월에는 급기야 정전협정 파기를 선언하며 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나섰다.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우리 국민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이 날 추모식에서 국방부장관은 “그럼에도 북은 적화야욕의 광란을 버리지 못하고 개성공단 폐쇄와 미사일 발사로 국민을 위협하고 있다”며 “우리 군은 강력한 응징과 고도의 대비태세 유지로 적과 싸워 이기는 전투 강군으로 나아 가겠다”고 다짐했다. 강한 국가, 강한 군대, 통합된 국민의 의지로 안보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는 자유 민주 통일을 여는 초석이 되는 길이며, 가로막힌 남북의 경원선이 다시 연결돼 기적소리도 힘차게 통일 행 열차로 내닫기를 염원하는 바람이기도 한 때문이다.(konas)
이현오(칼럼리스트, holeekva@hanmail.net)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