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되어 돌아온 투사 '권인숙'
Written by. 조선일보 김봉기기자
입력 : 2003-09-04 오후 3:23:00
3일 서울 명지대학교 교수실에서 만난 권인숙(39)씨. 지난 86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천경찰서 ‘성(性)고문’ 사건의 주인공이다.
그런 권씨가 올 2학기부터 이 대학 교양학부인 교육학습개발원 교수로 부임, 지난달 25일부터 서울과 용인 캠퍼스에서 각각 ‘여성과 현대사회’ ‘결혼과 가족’ 수업 강의를 맡고 있다.
지난주에 입주한 학생회관 9층에 있는 권씨의 연구실에는 아직 짐을 풀지 않아 빈 책장과 전화기 1대가 놓인 책상만 덜렁 놓여있다. 하지만 검은색 투피스를 입은 권씨는 “고국 강당에 서게 돼서 신이 난다”며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미국에 유학갈 때도 공부를 마치면 한국 강단에 서야지 생각했어요. 제가 일해야 할 곳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었죠.”
지난 2000년 미국 클라크대에서 여성학 박사학위를 받은 권씨는 올 5월까지 미국 사우스플로리다 주립대에서 여성학 전공교수를 역임하다가 명지대의 제의를 받고 지난달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제 경험들이 미국 학생들에게 ‘다양성’을 키워주는데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양국의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달라서 인종차별 같은 그들만의 사회문제를 파고드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어요.”
권씨는 고국 강단에 서서 무엇보다 기쁜 것은 한국말로 한국 학생들과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함께 논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제 수업을 듣는 젊은 학생들 중에는 제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한국 현대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강의에 필요하다면 제 경험들을 녹여서 설명해주고 강의에 활용하고 싶습니다.”
권씨는 9년 동안의 미국 생활을 마친 지금, 그때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변한 것이 있느냐는 기자에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했다. 과거에 ‘미국’과 관련된 질문에 답변했다가 피해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강의를 하면서 요즘 대학생이 과거와 달라진 점을 느끼느냐고 묻자 권씨는 “발랄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생각보다 질문이나 말도 잘 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첫 강의시간이었는데, 한 남학생이 ‘여성학 강의니까 남학생에게 가산점을 줄 생각없느냐’고 묻더군요. 웃으면서 거절했어요.”
권씨는 한국에서 ‘여성학’이 크게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권씨는 “수업교재를 고르려고 보니 여성학 연구자의 숫자, 연구 내용, 일반인들을 위한 여성학 교재 등이 크게 늘어나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투사적인 삶을 계속 살 생각은 혹시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권씨는 “지난 10년간 제가 그렇게 살았나요? 유학을 떠났을 때나 돌아온 지금이나 저는 연구하는 학자로 남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앞으로의 연구계획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남성들이 군대에서 배우는 경험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와 ‘조선족 여성들에 대한 연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권씨는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이던 지난 85년 부천의 한 공장에 주민등록을 변조해 위장취업한 뒤 노동운동을 해오다가 86년 6월 공문서위조 혐의로 부천경찰서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구속됐었다. 당시 권씨가 조사과정에서 경찰관에게 당한 성고문은 공권력에 의한 인권탄압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권씨는 석방 후 지난 89년 서울 가리봉 5거리 부근에 ‘노동인권회관’을 열어 노동활동을 폈으며, 특별 재입학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9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권씨는 미국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군사주의 문화가 우리 사회 남성성과 여성성을 규정하는데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3일 서울 명지대학교 교수실에서 만난 권인숙(39)씨. 지난 86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천경찰서 ‘성(性)고문’ 사건의 주인공이다. 그런 권씨가 올 2학기부터 이 대학 교양학부인 교육학습개발원 교수로 부임, 지난달 25일부터 서울과 용인 캠퍼스에서 각각 ‘여성과 현대사회’ ‘결혼과 가족’ 수업 강의를 맡고 있다.
지난주에 입주한 학생회관 9층에 있는 권씨의 연구실에는 아직 짐을 풀지 않아 빈 책장과 전화기 1대가 놓인 책상만 덜렁 놓여있다. 하지만 검은색 투피스를 입은 권씨는 “고국 강당에 서게 돼서 신이 난다”며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미국에 유학갈 때도 공부를 마치면 한국 강단에 서야지 생각했어요. 제가 일해야 할 곳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었죠.”
지난 2000년 미국 클라크대에서 여성학 박사학위를 받은 권씨는 올 5월까지 미국 사우스플로리다 주립대에서 여성학 전공교수를 역임하다가 명지대의 제의를 받고 지난달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제 경험들이 미국 학생들에게 ‘다양성’을 키워주는데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양국의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달라서 인종차별 같은 그들만의 사회문제를 파고드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어요.”
권씨는 고국 강단에 서서 무엇보다 기쁜 것은 한국말로 한국 학생들과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함께 논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제 수업을 듣는 젊은 학생들 중에는 제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한국 현대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강의에 필요하다면 제 경험들을 녹여서 설명해주고 강의에 활용하고 싶습니다.”
권씨는 9년 동안의 미국 생활을 마친 지금, 그때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변한 것이 있느냐는 기자에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했다. 과거에 ‘미국’과 관련된 질문에 답변했다가 피해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강의를 하면서 요즘 대학생이 과거와 달라진 점을 느끼느냐고 묻자 권씨는 “발랄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생각보다 질문이나 말도 잘 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첫 강의시간이었는데, 한 남학생이 ‘여성학 강의니까 남학생에게 가산점을 줄 생각없느냐’고 묻더군요. 웃으면서 거절했어요.”
권씨는 한국에서 ‘여성학’이 크게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권씨는 “수업교재를 고르려고 보니 여성학 연구자의 숫자, 연구 내용, 일반인들을 위한 여성학 교재 등이 크게 늘어나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투사적인 삶을 계속 살 생각은 혹시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권씨는 “지난 10년간 제가 그렇게 살았나요? 유학을 떠났을 때나 돌아온 지금이나 저는 연구하는 학자로 남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앞으로의 연구계획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남성들이 군대에서 배우는 경험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와 ‘조선족 여성들에 대한 연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권씨는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이던 지난 85년 부천의 한 공장에 주민등록을 변조해 위장취업한 뒤 노동운동을 해오다가 86년 6월 공문서위조 혐의로 부천경찰서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구속됐었다. 당시 권씨가 조사과정에서 경찰관에게 당한 성고문은 공권력에 의한 인권탄압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권씨는 석방 후 지난 89년 서울 가리봉 5거리 부근에 ‘노동인권회관’을 열어 노동활동을 폈으며, 특별 재입학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9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권씨는 미국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군사주의 문화가 우리 사회 남성성과 여성성을 규정하는데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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