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60주년을 넘어선 새로운 과제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는 한 우리의 확고한 억지력과 대비태세만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지났다. 환갑을 넘었다는 뜻이다. 동서고금의 세계사 속에서 가장 오래 유지된 협정이라 자랑스러워할 만도 하다. 그러나 정전협정 60주년은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정전체제를 넘어 평화통일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더기가 된 정전협정
북한이 정전협정만이라도 제대로 준수했더라면 남북한은 이미 통일 한국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과 위협, 그리고 정전협정 무력화 전략으로 인해 최소한의 평화보장체제인 정전체제마저도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북한은 정전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수없이 도발했고 정전협정 자체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북한은 지난 60년 동안 43만 건에 달하는 정전협정을 위반했다. 또한 북한은 정전협정의 핵심 축인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도 와해시켜버렸다. 북한은 1994년, 군사정전위원회 공산측 대표였던 북한군 및 중국군 대표를 일방적으로 철수시켰으며, 1993년에는 중립국감독위원회의 공산측 대표였던 체코를, 1995년에는 폴란드를 강제로 철수시켰다. 이로써 북한은 정전협정을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정전체제의 양대 기구를 무력화시킨 북한은 1996년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중무장 병력을 투입하기도 했다. 육상에서의 정전협정 무력화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판단한 북한은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을 전후하여 NLL을 무력화하기 위한 도발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1․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등이 모두 이런 사례에 속한다.
정전협정 60주년인 올해 북한은 그야말로 실제 행동과 ‘말 폭탄’을 통해 정전협정을 유린하면서 남북관계를 파탄내기 시작했다. 북한은 제3차 핵실험을 단행했으며, 금융사 및 언론사에 대해 사이버 공격을 실시했고,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일방적으로 철수시켜버렸다. 또한 ‘남북 불가침 합의 백지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백지화,’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포했으며 심지어 ‘전시상황에 돌입한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북한이 기념하는 정전협정 60주년은 한반도의 평화를 자기 멋대로 파탄지경으로 몰아가는 것이었다.
미북 평화협정만을 고집하는 북한
북한은 정전협정을 무력화시키면서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만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과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유엔군사령부도 해체되어 한국을 쉽게 적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체결했던 ‘파리 평화협정’만을 기억하면서 여기에 매달리고 있다.1973년 체결된 파리 평화협정으로 미군이 철수하고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무력으로 통일했던 그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전체제도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는데 어떻게 평화협정을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정전체제를 파괴시켜야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고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적화통일을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사실상 한반도에는 평화체제에 대한 문서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한 당국자의 자유로운 의사로 체결하고 1992년에 발효한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이 바로 이런 것이다. 남북화해, 남북불가침, 그리고 남북 교류 및 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와 이에 대한 각각의 부속합의서, 그리고 비핵화 공동선언은 평화체제를 넘어 오히려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런 종이 문서는 한반도에 아무런 평화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오히려 ‘말 폭탄’을 통해 이를 백지화하고 있고 동족을 향해 사용할 ‘핵폭탄’ 개발에 여념이 없다.
평화로운 한반도를 향하여
정전체제는 정전협정이 반드시 체결돼야 작동되는 체제이지만 평화체제는 평화협정이 체결돼야만 가동되는 것은 아니다. 정전협정만 잘 준수되어도 최소한의 평화체제는 가동되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한반도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간단히 이해가 된다.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돼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무역을 하고 투자를 하며 서로 자유롭게 여행을 한다. 서로 갈등을 겪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로 무력 도발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들이 중국과 일본을 자유롭게 왕래하듯이 남북한 동포들이 서로 자유롭게 남북한을 왕래하면 된다. 굳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더라고 상호간에 신뢰만 쌓이면 아무런 문제없이 작동될 수 있는 것이 평화체제인 것이다.
남북한과 상황이 비슷한 중국과 대만을 보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중국과 대만은 정정협정을 체결한 것도 아니지만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대만 사이의 무역과 투자는 그 어떤 국가들보다도 활발하다. 또한 양안(兩岸)의 국민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자유롭게 상대방 영토를 방문한다. 법적으로 통일 국가는 아니지만 사실상의 통일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부럽기 짝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 국민들도 서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된다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 북한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참전용사 추모사’에서 밝혔듯이 “북한이 지금이라도 핵을 포기하고,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남북한 공동발전과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해”나갈 수 있다.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워싱턴 근교 한국전 기념관에 새겨져 있는 문구이다.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는 한 우리의 확고한 억지력과 대비태세만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konas) 출처:나라사랑
김열수(성신여대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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