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총선 쟁점화는 안된다
탄핵정국에서 치뤄지는 17대 총선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엄격해진 공직선거법 때문에 비교적 차분하게 선거운동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야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벌이는 막판 유세는 열기를 더하고 있다.
이런 때 이라크 전투병 추가파병 문제가 다시 정치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은 지난 8일 "국민여론을 다시 수렴해 이라크 추가 파병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해 포문을 열었다. 곧 이어 민주노동당도 파병철회론을 제기했다. 반면 한나라당과 열린 우리당은 기본적으로 파병원칙이 훼손돼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만 김근태 열린 우리당 원내대표는 10일 미국이 이라크에 통치권을 넘긴 후에 국군을 추가 파병하자는 제안을 내 놓아 정가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라크 파병의 총선 쟁점화는 최근 이슬람 저항세력의 연쇄적인 민간인 납치, 테러전에서 내전으로 치닫는 전면전 확대 양상, 미국의 강력한 소탕작전 등으로 우리 국민의 테러위험 노출 가능성이 높아진 데 기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라크 사태를 총선 민심을 자극하는 계기로 활용해, 불리한 선거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득표전략의 일환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시민단체들이 전개하는 이라크 파병 지지후보 낙선운동과 표심(票心)을 붙잡으려는 '눈치 작전'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이 파병을 둘러싼 각 당의 공방을 지켜 보면서, 씁스레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이익보다 파당적 이익을 앞세우고 총선에의 유·불리만을 계산하는 소아(小我)적이고 대중인기 영합적인 자세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라크 파병은 외교적 신뢰의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투병 추가파병은 한·미동맹 강화 차원에서 이미 양국간에 합의된 사안이다. 지금은 파병지 변경문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일방적으로 파병결정 자체를 번복한다면, 이는 한·미간에 오랫 동안 쌓아온 전통적인 우의와 신뢰를 깨는 행동이 된다. 물론 북핵문제 해결, 주한미군 재배치 협상, 대미 철강 수출 등 산적한 국가적 현안을 해결해 나가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 파병철회 시 국제법적 책임을 야기할 수도 있다.
파병철회는 국가정책 결정의 권위 훼손이라는 보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이라크 파병은 행정부와 국회가 오랜 기간 심사숙고하여 공동으로 결정한 사안이다. 그런 만큼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마땅하다. 단순히 우리 국민과 전투병의 안전을 들어 변경할 게 못된다. 만일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밀리기 시작할 경우, 참여정부의 리더쉽에 큰 상처를 입게 될 뿐 아니라 앞으로 시민단체들에게 계속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정부가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책임정치를 다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사실 이라크의 정세불안을 들어 추가파병에 주저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우리는 중동의 평화 정착과 이라크 재건지원을 위해 전투병을 보내는 것이다.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종국에는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대의(大義) 때문인 것이다. 파병철회는 평화재건 지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라크인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더불어 비인간적·반문명적인 테러는 '응징'의 대상이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국제사회가 테러(不義)의 세력에 무원칙 하게 양보를 하거나 굴복할 경우, 또 다른 테러(犯罪)를 양산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한국은 테러진압 및 반테러전쟁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우리 국민과 파병국군의 안전은 별도의 철저한 신변보호대책과 이라크 내 '민사 심리전' 등으로 해결함이 마땅하다.
외교는 국익과 직결돼 있다. 따라서 외교는 초당적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 국회가 이라크 파병 동의안을 통과시킨 게 엊그제 일인데, 작금 총선정국에서 이를 정파적으로 이용하려는 기회주의적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총선)정치에도 도리가 있는 법이다. 아무쪼록 이번 17대 총선은 꼼수와 기교의 정치를 버리고, 정도(正道)와 순리의 정치를 펴는 장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총선이 끝난 후에도 파병문제를 재론하자는 무책임한 주장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국민들의 냉정한 판단과 올바른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konas)
제 성 호( 중앙대 교수, 법학 jhejhe@ca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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