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우당 과반의석 달성시 한국사회에 주는 의미(1)
Written by. 총선칼럼
입력 : 2004-04-14 오전 10:13:42
열린우리당 과반수 의석 확보는 역사적 소명
조기숙 (열린우리당 총선기획단 자문위원장, 이화여대 교수)
이번 선거는 단순히 선량을 뽑는 한가한 선거가 아니다. 대한민국 역사의 새장을 펼치는 중대선거다. 대한민국 정치 50년사에서 제대로 정권이 교체된 적이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을 교체했고, 노무현대통령이 정권을 재창출했지만 이는 행정부권력에 한정 됐을 뿐이지 실제로 의회권력을 바꾼 적은 없다.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궁극적인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예산권이 의회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힘없는 대통령으로서 국회에 의해 탄핵당하고 직무가 정지된 것에서도 보았듯이 의회는 엄청난 권력을 누린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의회권력을 한 번도 교체해보지 않았다.
현재 우리 국회의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당의 뿌리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과연 의회민주주의를 존중하는 무리인지를. 이들은 5.16 구테타로 권력을 잡았고 형식적인 선거에서나마 패배가 확실해보이자 유신체제를 감행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국민의 반발이 조직적이지 못했기에 쉽게 국회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민이 조직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광주를 피로 물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1987년 6월 총칼로도 권력을 연장할 수 없음을 깨달은 이들은 대통령직선제라는 타협안을 제시해 다시 권력을 잡는데 성공한다. 그 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소수당으로 전락하자 3당 합당을 감행해 다시 의회권력을 틀어쥔다. 이들이 정권과 의회권력을 유지하는데 핵심적으로 동원한 것이 지역주의였다.
사실상 국민은 끊임없이 의회권력을 교체하려고 반대세력에게 표를 주었다. 하지만 군부독재의 후예들은 민주화 배신세력과의 합당으로 지속적으로 민의를 왜곡하면서 의회를 지배해왔다. 이제 그 물타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오자 대통령을 제거하는 의회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다. 지역주의타파를 내건 열린우리당이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으며 지지도 1위를 달리자 이들은 이제는 정말로 의회권력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탄핵의 본질은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의회 내 부패기득권 세력의 도박이라는 데에 있다.
군부독재 세력의 45년 의회지배는 부정부패, 특권이 판치는 정치, 국민의 권한과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를 낳았다. 이들의 실패는 지난 1997년 IMF사태 초래라는 국가적 경제위기로 나타났다. 개발독재가 초기에는 높은 경제성장을 보여주지만 부정부패의 악순환 속에서 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개혁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정책을 도입했어야 했다. 미국 공화당이 초래한 위기를 민주당이 극복하고, 영국 노동당이 초래한 위기를 보수당이 극복했듯이.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겨우 국가부도위기를 넘겼을 뿐이다.
국가부도사태에서 숨죽이고 있던 수구족벌언론이 IMF기금을 갚았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선언이 있자마자 물어뜯기 시작했다. 개혁은 물건너 갔고 경제는 지속적인 침체와 구조적인 난관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신용카드를 남발하고 가계부채로 경기를 부양하는 충격요법을 썼다.
노무현 대통령은 거덜난 국가를 물려받았다. 개발독재의 성장모델은 정경유착, 부정부패, 불공정한 경쟁을 특징으로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투명성과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시장주의 개혁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 동안 맘껏 특권을 누리던 재벌, 족벌신문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 심지어는 4-5년이 걸리기도 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이룩한 구조조정의 효과를 클린턴 대통령이 혜택을 본 데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경제를 망친 한나라당이나 경제를 확실히 살리지 못한 민주당은 입이 열개라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경제파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대증요법을 쓰는 대신 지난 1년간 고통을 감내했다. 이것이 노대통령이 포퓰리스트가 아니라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신용불량자를 구제하려는 법을 비롯하여 야당의 발목잡기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걸핏하면 장관을 해임하고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야당과 국정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사회 갈등이 깊어진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사회에 성장한 시민계급들이 부도덕한 주류에 대항해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개혁적인 비주류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데에 있다. 의회쿠데타를 통해서라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회권력과 이를 교체하려는 시민권력의 사생결단식 대결이 원인인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 필자의 열린우리당 입당을 곡학아세라고 비난하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역사의식이 있는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칭송하는 사람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들 사이에 타협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링컨이 남북전쟁을 통해 갈등을 전면에 드러내 놓고 승리한 끝에 남쪽을 끌어안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번 선거에서 표로 전면전을 펼쳐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패자는 완벽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는 패자를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대통령과 의회 권력을 나눠 놓아서는 한 쪽이 승리할 때까지 사생결단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국내외 저명한 경제 전문가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끝없이 추락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가 살려면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고 투자심리는 국정이 안정될 때 살아난다. 정치의 불확실성 만큼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것도 없다. (최근 한 경제부 기자가 쓴 정통한 보고서가 인터넷에 돌고 있으니 참고할 것) 경제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도 대통령에게 협조적인 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서구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경제위기가 등장할 때에는 한 정당이 의회를 30년 이상 지배했을 때이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다. 국민들은 경제위기를 기화로 반대정당에게 힘을 몰아준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견제와 균형이다.
민주주의에서 견제란 여야의 힘이 비슷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공정한 선거를 정기적으로 치르는 데에 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현정부를 심판함으로써 다른 정당으로 갈아 치울 기회가 존재하느냐에 달려있다. 다음 선거에서 수권정당이 될만한 대안의 정당이 존재하고 또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면 견제와 균형이 살아있다고 볼 수 있다.
견제와 균형을 원리로 하는 미국에서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을 때에는 국민이 대통령에게 힘을 몰아주었을 때이다. 루즈벨트와 레이건이 그 예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같은 정당이 대통령과 의회를 차지했다고 해서 일당독재라는 무식한 말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수당의 당수가 수상이 되는 의원내각제 국가는 모두 일당독재라는 말인가.
대통령제 국가에서 권력분립이란 의원 하나하나가 헌법기관으로서 대통령을 견제하라는 의미에서 권력을 분산시킨 것이다. 여든 야든 국회의원은 모두 대통령을 합리적으로 견제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민주국가와 독재의 차이다.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태에 사퇴를 가장 먼저 요구한 사람은 같은 당인 공화당 의원들이었다. 열린우리당의 일부 후보가 정동영 의장의 선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당대표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정당에서 이런 민주주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독재와 권위주의 경험 밖에 없는 국민들에게 '거여'는 참으로 공포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독재자의 후예가 거여견제론을 들고 나온 것은 국민사기극이다. 이런 주장이 먹힐 수 있도록 족벌언론들 곡학아세하느라 참 수고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민주적이며 검찰, 언론, 국정원 등 권력기관이 한국 역사상 최대의 자유와 독립을 누리고 있다.
이번 선거는 탄핵에 대한 심판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한다면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할 것이다. 헌재의 판결은 선거결과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탄핵 용인이나 하야 모두 불가능한 대안이 아니다. 이를 반대하는 노대통령 지지자들은 확실한 역사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가진 고학력자, 화이트칼라, 20,30대 층이다. 이들이 역사를 배반하는 의회쿠데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 이후는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경제전문가들이 열린우리당 과반수 의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책임성에 있다. 정권을 잡은 정당이 자신의 정책을 실시해 보고 다음 선거에서 표로 심판을 받는 것이다. 국정에 한 번 실패한 정당을 심판하지 않고 견제세력으로 키워 둔다면 철저한 반성과 재탄생은 불가능하다. 영국에서 보수화된 노동당이 ‘제3의 길’을 내세우며 다시 집권할 수 있게 된 것도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기에 가능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공공연하게 ‘국민소득이 5천불로 추락해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찾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나라가 망해도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은 야당의 역할이 발목잡기인줄로 알고 있다. 야당이 대안을 제시하는 견제세력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단호한 심판이 가장 좋은 약이다. 그래야 야당도 환골탈태해서 새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기숙 (열린우리당 총선기획단 자문위원장, 이화여대 교수)
이번 선거는 단순히 선량을 뽑는 한가한 선거가 아니다. 대한민국 역사의 새장을 펼치는 중대선거다. 대한민국 정치 50년사에서 제대로 정권이 교체된 적이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을 교체했고, 노무현대통령이 정권을 재창출했지만 이는 행정부권력에 한정 됐을 뿐이지 실제로 의회권력을 바꾼 적은 없다.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궁극적인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예산권이 의회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힘없는 대통령으로서 국회에 의해 탄핵당하고 직무가 정지된 것에서도 보았듯이 의회는 엄청난 권력을 누린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의회권력을 한 번도 교체해보지 않았다.
현재 우리 국회의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당의 뿌리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과연 의회민주주의를 존중하는 무리인지를. 이들은 5.16 구테타로 권력을 잡았고 형식적인 선거에서나마 패배가 확실해보이자 유신체제를 감행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국민의 반발이 조직적이지 못했기에 쉽게 국회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민이 조직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광주를 피로 물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1987년 6월 총칼로도 권력을 연장할 수 없음을 깨달은 이들은 대통령직선제라는 타협안을 제시해 다시 권력을 잡는데 성공한다. 그 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소수당으로 전락하자 3당 합당을 감행해 다시 의회권력을 틀어쥔다. 이들이 정권과 의회권력을 유지하는데 핵심적으로 동원한 것이 지역주의였다.
사실상 국민은 끊임없이 의회권력을 교체하려고 반대세력에게 표를 주었다. 하지만 군부독재의 후예들은 민주화 배신세력과의 합당으로 지속적으로 민의를 왜곡하면서 의회를 지배해왔다. 이제 그 물타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오자 대통령을 제거하는 의회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다. 지역주의타파를 내건 열린우리당이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으며 지지도 1위를 달리자 이들은 이제는 정말로 의회권력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탄핵의 본질은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의회 내 부패기득권 세력의 도박이라는 데에 있다.
군부독재 세력의 45년 의회지배는 부정부패, 특권이 판치는 정치, 국민의 권한과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를 낳았다. 이들의 실패는 지난 1997년 IMF사태 초래라는 국가적 경제위기로 나타났다. 개발독재가 초기에는 높은 경제성장을 보여주지만 부정부패의 악순환 속에서 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개혁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정책을 도입했어야 했다. 미국 공화당이 초래한 위기를 민주당이 극복하고, 영국 노동당이 초래한 위기를 보수당이 극복했듯이.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겨우 국가부도위기를 넘겼을 뿐이다.
국가부도사태에서 숨죽이고 있던 수구족벌언론이 IMF기금을 갚았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선언이 있자마자 물어뜯기 시작했다. 개혁은 물건너 갔고 경제는 지속적인 침체와 구조적인 난관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신용카드를 남발하고 가계부채로 경기를 부양하는 충격요법을 썼다.
노무현 대통령은 거덜난 국가를 물려받았다. 개발독재의 성장모델은 정경유착, 부정부패, 불공정한 경쟁을 특징으로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투명성과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시장주의 개혁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 동안 맘껏 특권을 누리던 재벌, 족벌신문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 심지어는 4-5년이 걸리기도 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이룩한 구조조정의 효과를 클린턴 대통령이 혜택을 본 데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경제를 망친 한나라당이나 경제를 확실히 살리지 못한 민주당은 입이 열개라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경제파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대증요법을 쓰는 대신 지난 1년간 고통을 감내했다. 이것이 노대통령이 포퓰리스트가 아니라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신용불량자를 구제하려는 법을 비롯하여 야당의 발목잡기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걸핏하면 장관을 해임하고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야당과 국정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사회 갈등이 깊어진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사회에 성장한 시민계급들이 부도덕한 주류에 대항해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개혁적인 비주류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데에 있다. 의회쿠데타를 통해서라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회권력과 이를 교체하려는 시민권력의 사생결단식 대결이 원인인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 필자의 열린우리당 입당을 곡학아세라고 비난하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역사의식이 있는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칭송하는 사람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들 사이에 타협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링컨이 남북전쟁을 통해 갈등을 전면에 드러내 놓고 승리한 끝에 남쪽을 끌어안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번 선거에서 표로 전면전을 펼쳐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패자는 완벽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는 패자를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대통령과 의회 권력을 나눠 놓아서는 한 쪽이 승리할 때까지 사생결단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국내외 저명한 경제 전문가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끝없이 추락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가 살려면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고 투자심리는 국정이 안정될 때 살아난다. 정치의 불확실성 만큼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것도 없다. (최근 한 경제부 기자가 쓴 정통한 보고서가 인터넷에 돌고 있으니 참고할 것) 경제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도 대통령에게 협조적인 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서구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경제위기가 등장할 때에는 한 정당이 의회를 30년 이상 지배했을 때이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다. 국민들은 경제위기를 기화로 반대정당에게 힘을 몰아준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견제와 균형이다.
민주주의에서 견제란 여야의 힘이 비슷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공정한 선거를 정기적으로 치르는 데에 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현정부를 심판함으로써 다른 정당으로 갈아 치울 기회가 존재하느냐에 달려있다. 다음 선거에서 수권정당이 될만한 대안의 정당이 존재하고 또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면 견제와 균형이 살아있다고 볼 수 있다.
견제와 균형을 원리로 하는 미국에서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을 때에는 국민이 대통령에게 힘을 몰아주었을 때이다. 루즈벨트와 레이건이 그 예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같은 정당이 대통령과 의회를 차지했다고 해서 일당독재라는 무식한 말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수당의 당수가 수상이 되는 의원내각제 국가는 모두 일당독재라는 말인가.
대통령제 국가에서 권력분립이란 의원 하나하나가 헌법기관으로서 대통령을 견제하라는 의미에서 권력을 분산시킨 것이다. 여든 야든 국회의원은 모두 대통령을 합리적으로 견제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민주국가와 독재의 차이다.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태에 사퇴를 가장 먼저 요구한 사람은 같은 당인 공화당 의원들이었다. 열린우리당의 일부 후보가 정동영 의장의 선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당대표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정당에서 이런 민주주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독재와 권위주의 경험 밖에 없는 국민들에게 '거여'는 참으로 공포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독재자의 후예가 거여견제론을 들고 나온 것은 국민사기극이다. 이런 주장이 먹힐 수 있도록 족벌언론들 곡학아세하느라 참 수고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민주적이며 검찰, 언론, 국정원 등 권력기관이 한국 역사상 최대의 자유와 독립을 누리고 있다.
이번 선거는 탄핵에 대한 심판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한다면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할 것이다. 헌재의 판결은 선거결과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탄핵 용인이나 하야 모두 불가능한 대안이 아니다. 이를 반대하는 노대통령 지지자들은 확실한 역사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가진 고학력자, 화이트칼라, 20,30대 층이다. 이들이 역사를 배반하는 의회쿠데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 이후는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경제전문가들이 열린우리당 과반수 의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책임성에 있다. 정권을 잡은 정당이 자신의 정책을 실시해 보고 다음 선거에서 표로 심판을 받는 것이다. 국정에 한 번 실패한 정당을 심판하지 않고 견제세력으로 키워 둔다면 철저한 반성과 재탄생은 불가능하다. 영국에서 보수화된 노동당이 ‘제3의 길’을 내세우며 다시 집권할 수 있게 된 것도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기에 가능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공공연하게 ‘국민소득이 5천불로 추락해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찾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나라가 망해도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은 야당의 역할이 발목잡기인줄로 알고 있다. 야당이 대안을 제시하는 견제세력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단호한 심판이 가장 좋은 약이다. 그래야 야당도 환골탈태해서 새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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