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우리 軍의 속앓이

Written by. 유용원   입력 : 2004-04-21 오전 9:49:16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0
“6·25전쟁은 (국제) 연합군이 일으킨 전쟁 아닙니까?”


지난해 연대장으로 부임한 육군 대령 A씨는 한 이등병에게 “6·25전쟁은 누가 일으킨 것이냐”고 물었다가 이런 답변을 듣고 깜짝 놀랐다. A대령은 “왜 그렇게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병사가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고 답변해 또 한번 놀랐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한 야전 지휘관은 비단 A씨만이 아니다. 사단장을 지낸 육군 장성 B씨는 “사단장 시절 10여명의 병사들에게 ‘6·25전쟁을 누가 일으켰느냐’고 직접 물어봤더니 “북한”이라고 대답한 병사는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며 “많은 병사들이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6·25전쟁 도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군 당국은 장병들에 대한 정신교육, 특히 6·25전쟁 등 역사적 사건이나 우리의 주적(主敵)이 누구인가인 대적관(對敵觀) 등에 중점을 두고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10여년 동안 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리잡은 인식이 군대에서 2년여 동안 가르친다고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겠느냐”는 것이 정훈장교 등 군 당국자들의 호소다.


이런 군 내부 문제점이나 어려움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경우에 따라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몸을 사리는 직업군인들의 속성 때문에 외부에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최근의 사회 분위기나 정세에 대해서도 장교나 장군들은 공식적으로는 말이 없다.


군 통수권자가 창군 이래 처음으로 국회에 의해 탄핵을 당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한 뒤에도 군 당국은 그다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4·15 총선을 앞두고도 440명에 이르는 장군, 7만1000여명에 달하는 장교 가운데 정치적 발언 등 돌출행동을 한 경우가 적발됐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직업군인들이 현 정세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거나 선거결과 등에 대해 환영 또는 불만의 감정이 없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우선 이번 총선결과 진보적 성향의 의원들이 대거 국회로 진출함에 따라 이라크 파병문제, 용산기지 이전 등 각종 한·미 현안과 첨단무기 도입 등 군 전력 증강 계획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장교들이 많다.


특히 ‘이라크 파병부대 귀환 및 파병 결정 전범(戰犯) 처벌’ ‘병력 20만명 감축’ ‘주요 신무기 도입 계획 백지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민노당의 약진은 군 관계자들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군의 정치 개입을 부추기는 듯한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상당수 장교들은 “뒷감당 못할, 시대착오적인 말을 하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총선결과 여당이 과반수를 확보함에 따라 앞으로 각종 ‘개혁정책’이 강도높게 추진되고 군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정치권과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자들은 앞으로 각종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처럼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군의 분위기도 감안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군도 더 이상 과거의 사고방식이나 입장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 안보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첨단 미래군으로 발전, 한국 사회에서 역할에 걸맞은 위상을 차지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각오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남침 가능성’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군의 모든 주장을 관철시켜주고 군을 보호해주던 시대는 지났다.


(유용원·조선일보 국방전문기자 04,4,21)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