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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15〕진짜 사나이?

Written by. 홍성찬   입력 : 2014-01-24 오전 11: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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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박창명)이 2013년 육·해·공군 및 해병대에서 현역병 복무를 마친 예비역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2013』에 실린 글임.(편집자 주)

 군대에서 강조하는 ‘진짜 사나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춘 근육질의 남자 정도가 되겠지만, 난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건 몰라도 근육질의 남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난 군대에서 무용지물일 따름인가. 일선 부대에서는 ‘진짜 사나이’가 필요할지 몰라도 후방부대에 있던 나는, 비록 ‘진짜 사나이’는 아니지만 부대 내에서 꽤 유용(?)한 존재였다.

 나는 해군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하여 입영하게 되었다. 해군에는 운전병, 통신병, 전기병, 시설병 등등 다양한 보직이 있다. 나는 별다른 특기가 없는 까닭에 일반병(갑판병)으로 지원했다. 일반병인 특성상 함정생활을 할 가능성이 컸고, 함정 내에서도 잡일을 맡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일반병의 상식적인 루트에서 벗어나 나는 첫 발령부터 육상근무를 하게 되었다.

 처음 맡은 업무는 보초 서는 것이었다. 초소지에서 몇 시간이고 사주를 경계하는 것이었는데, 그때만큼 고독한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다. 일병에서 막 상병으로 진급하려던 때, 나는 대대 행정병으로 2차 발령을 받았다. 그때 당시 내가 왜 행정병으로 발탁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중학교 때 따놓은 워드프로세서 자격증과 정보처리 자격증이 그 빛을 발해 행정병으로 뽑히게 된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처음엔 좋았다. 보초서면서 고독한 시간을 갖는 것도 인생 전반적으로 봤을 때 필요한 시간이지만, 사실 조금 지루했다. 물론 혼자 보초서는 것은 아니었지만, 매번 같은 소속 사람과 번갈아 섰기 때문에 대화 소재가 다양하지 못했고, 여자얘기 하는 것도, 처음엔 설렜지만 갈수록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찰나에 행정 업무를 맡게 된 나는, 그래도 처음엔 좋았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행정업무는 선임들 사이에서 선호하는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몸을 쓰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난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선임들은 그저 “해보면 알아.”라며 일축했다. 그렇게 맡게 된 행정업무는 선임들 말마따나 해본 사람들만 아는 그 업무만의 고통이 있었다. 예컨대, 행정업무에 관한 체계적인 매뉴얼이 없어서 갓 입문한 행정병은 ‘깨지면서’ 배우는 게 관례였다. 신참인 나는 자주 실수를 저질렀고, 선임들은 이를 강하게 응징(?)하였다. 몸은 비록 편하지만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때였다.

 한 6개월쯤 지났을까. 실수는 거의 드물었고, 몸과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때 난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바로 신참 행정병을 위한 대대적인 매뉴얼 만들기! 공문 작성방식, 한글‧엑셀에서 자주 쓰는 기능, 상급자에 대한 보고요령, 작업원 차출 요령 등을 인수인계서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상급기관에 보고하는 요령은 이렇다. 서류 제출기한이 15일인데, 서류 준비가 덜 됐다면, 13~14일 정도에 미리 상급기관에 연락해서 기한 연장을 요구하든지, 아니면 일단 준비 안 된 서류를 내고 준비가 되는대로 보완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군대 내에서 행정병으로 살아남으려면 ‘미리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괜히 제출기한 도래했는데 그때서야 제출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요구하면 무책임해보이고 불성실해보이기 십상이다.

 작업원 차출 요령은 이렇다. 상급 기관에서 작업원 10명을 뽑으라고 지시했다고 가정하자. 우리 소속 부서에 이를 전파해야 하는데, 이때 임의적으로 부서를 택하지 말고, 엑셀 같은 데다 부서별 차출현황을 기록해서 어느 정도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각 부서에서 “왜 우리만 맨날 차출하냐?”라는 말을 반박하는 데 용이하다.

 또 중요한 것이 있다. 상급기관에선 10명 차출하라고 했지만, 우리 소속 부서에 전파할 때는 12명이라고 알리는 것이다. 각 부서에서 나에게 차출인원을 줄여달라고 협상할 때, 그 때 인심 쓰는 척 인원을 줄여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천 원짜리 수박을 팔기 전에 만원이라고 부르고, 손님이 깎아달라고 하면 “에잇, 그럼 오천 원에 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후임한테 편지 쓰듯이 매뉴얼에 기록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전역하기 두 달 전 나는 드디어 후임을 받았다. 오랜 시간과 노력 끝에 작성한 매뉴얼은 후임에게 전달되었고, 후임은 매뉴얼을 통해 업무를 익혀 나갔다.

 후임은 내게 무척이나 고마워했지만, 나 또한 후임에게 고마운 게 많았다. 상상속의 후임을 생각하며 매뉴얼을 작성하는 동안, 나 역시도 업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글쓰기의 순기능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글로 정리하는 것은 내가 아는 것 이상의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내가 작성한 매뉴얼은 곧 후임들 사이에서 ‘수학의 정석’급이 되어버렸다.

 부대 내 행정업무가 얼추 비슷하기 때문에 매뉴얼은 여기저기 할 것 없이 퍼져나갔다. 그때 난 부대 내에서 유명세를 탔지만 별다른 포상을 받진 않았다. 너무 아쉬웠다. 물론 그런 걸 바라고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매뉴얼 작성하며 업무를 체계화한 경험은 내가 행정공무원이 되겠다는 소망을 갖는 데 크게 일조했다. 전역하고 나서 얼마 지난 후, 행정업무를 잘 할 수 있겠다는 믿음 아래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2012년 내가 사는 지역이 대량 공채를 하게 되면서 운 좋게 ‘문 닫고’ 합격했다.

 공무원이신 우리 아버지는 내가 입대하기 전에도 끊임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땐 난 단호하게 거절했다. 난 사무실에 박혀 행정업무를 보는 것 보다 뭔가 활동적인 업무를 하고 싶었다. 비록 ‘진짜 사나이’처럼 체력 좋고 체격이 우월한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자나 스포츠 에이전트처럼 외근이 적당히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군대에서의 행정병 경험은 단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과 내 소질로 인해 내가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고 이를 수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말하자면,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앞서 말한 활동적인 일이지만,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내 소질이 거기에 없다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그리고 막상 행정업무를 해보니, 거기엔 나름 재미가 있고 감동이 있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했던 것, 예컨대 행정업무는 마냥 단조롭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 경험 부재의 오판이다. 그래서 행정병 경험은 소중하다.

 지금 공무원으로서 일한 지 4개월째 되어간다. ‘진짜 사나이’라는 TV프로가 성황리에 방영중인데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본다. ‘나는 군대 다녀와서 ‘진짜 사나이’가 되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마른 체격에, 저녁 10시만 넘어서면 졸음이 쏟아지는 걸로 보니 군대에서 말하는 ‘진짜 사나이’는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삶을 살다보면 자신의 소질을 발견할 수 있는 시공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경험 하나하나는 무척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군대에서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고 이를 꿈으로 실현시킨 나 같은 ‘진짜 사나이’도 있다는 것을.(Konas)

홍성찬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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