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보여주는 北의 상투적 위장평화 공세를 경계해야 한다
1950년6월 북한의 6.25 전면 남침 계획은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선전포고 없이 감행된 기습에 의한 남침을 앞두고 북한은 일련의 위장평화 공세를 펼치는 상투적인 기만전술(欺瞞戰術)을 들고 나왔다.
북한은 6월9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명의로 소위 ‘평화통일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 ‘호소문’의 내용은 “① 통일된 최고입법기관을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를 8월5일부터 7일 사이에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② 이 선거를 통하여 구성된 최고입법기관의 첫 회의를 8월15일 소집하며, ③ 이 선거 실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협의회를 7월15일부터 17일까지 북측의 해주(海州)나 남측의 개성(開城)에서 개최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이 ‘제안’에는 엉뚱한 ‘조건’들이 달려 있었다. 즉 남한의 경우 이승만(李承晩), 이범석(李範奭), 김성수(金性洙), 신성모(申性模), 조병옥(趙炳玉), 채병덕(蔡秉德), 백성욱(白性郁), 윤치영(尹致暎) 및 신흥우(申興雨) 등 9명을 ‘민족반역자’로 단정하여 윤치영이 이끄는 대한국민당(大韓國民黨) 및 김성수가 이끄는 민주국민당(民主國民黨)과 함께 문제의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협의회’ 참가를 금지하여 “유엔 한국위원단의 관여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이승만은 대통령, 이범석은 국무총리, 김성수는 곧 부통령으로 선출될 사람, 신성모는 국방부장관, 조병옥은 곧 내무부장관이 될 사람, 채병덕은 육군참모총장, 백성욱은 내무부장관, 윤치영은 서울시장 그리고 신흥우는 주일대사였다. 이들에 대한 북한의 배제 요구는 사실상 문제의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협의회’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북한은 다음날인 6월10일 또 엉뚱한 제안을 내놓았다. 북한에서 4년여 동안 불법적으로 감금하여 억류하고 있던 민족지도자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을 남한에서 체포되어 투옥되어 있는 남노당(南勞黨)의 이주하(李舟河)·김삼룡(金三龍)과 맞바꾸자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불신에도 불구하고 조만식을 구출해 내겠다는 일념(一念)으로 이 제안을 수락하면서 6월26일을 교환 날짜로 역제의했다.
북한의 평화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북한은 6월19일 ‘최고인민회의’ 명의로 대한민국 국회에 대해 “① 대한민국 국회와 북측의 ‘최고인민회의’를 통합하여 단일 입법기관을 구성하고, ② 이 입법기관에서 남북한 단일정부 구성을 위한 헌법을 제정하며, ③ 이 헌법에 의거하여 남북한 단일 입법부 구성을 위한 총선거를 실시하고, ④ 새로이 수립되는 정부는 남북한의 기존 군대, 경찰, 기타 치안 병력을 통합하여 하나의 군대 및 경찰로 단일화 하며, ⑤ ‘유엔 한국위원단’은 추방하되 ⑥ 이 모든 절차를 금년(1950) 8월15일까지 완결하자”는 것이었다.
북한은 이 ‘최고인민회의’ 성명에서도 대한민국의 이승만, 이범석, 김성수, 신성모, 조병옥, 채병덕, 백성욱, 윤치영 및 신흥우 등 9명에 대해서는 ‘민족반역자’라고 단정하고 이들의 ‘체포’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이 역시 현실성을 무시한 위장 제의였을 뿐이었다.
이 같은 ‘위장 평화 공세’로 나라 안팎의 세간(世間)의 이목(耳目)을 교란(攪亂)시킨 북한은 우중(雨中)에 아직 야음(夜陰)이 걷어지지 않은 일요일인 6월25일 새벽 4시 38선 전역(全域)에 걸쳐서 선전포고도 없이 한국군에게는 단 한 대도 없는 탱크 수백 대를 앞세워 일방적인 기습 남침을 감행함으로써 5천년 민족 사상 가장 비극적이었던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화(戰禍)를 민족에게 강요했다.
지금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이 엉뚱한 대남 ‘평화 선전 공세’를 전개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마침 인도 국빈방문을 마치고 두 번째 국빈 방문국인 스위스로 가고 있던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북한이 평화를 말할 때 우리는 안보를 확실하게 다져야 한다”는 당연하기 짝이 없는 경구(警句)로 경종(警鐘)을 울렸었다.
지금 북한의 ‘평화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수용 발표가 그것이다. 과거 북한의 행적으로 볼 때 그 ‘이산가족 상봉’도 실제로 이루어질 때까지는 김칫국 마시기가 두려운 것이 사실임을 우리가 망각할 수 없다.
설사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단막극(單幕劇)이 또 한 차례 반복되더라고 그것이 문제 해결을 가져 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북한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핵무기 개발 포기 요구를 수용할 것이냐의 여부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소위 “핵과 경제 병진 정책”을 명시적으로 포기할 때까지는 우리 주변에서 가끔 들리는 “5.24 조치 해제”의 잠꼬대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조갑제 닷컴)
李東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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