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28일은 충무공 이순신이 탄생한 지 459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이다.
그분은 험난한 생애 가운데서도 시종일관 애국과 충절의 길을 걸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1592년 4월13일 조선을 침략한다. 이것이 임진왜란이며 7년간의 전쟁은 지속된다. 1597년(선조 30년) 원균은 칠천량(지금의 경남 거제시 하청면) 해전에서 참패한다. 이로써 남해의 제해권은 일본 수군에 넘어가게 된다.
이때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돼 수군을 재정비한 결과 전선 12척에 군사는 고작 120명에 불과했다. 그래서 선조는 “수군을 폐지하고 육전(陸戰)에 참가하라”고 지시하지만 이순신은 “신(臣)에게는 아직도 전선(戰船) 12척이 있으니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강력히 건의한다.
이것을 통해 충무공의 군인 정신을 알 수 있으며 또 미래 수군의 중요성을 예측한 혜안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수군이 있었기에 명량 해전에서 대승을 거둬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충무공이 노량 해전에서 최후를 맞을 때까지 23전23승이라는 불패의 신화를 창조한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 의미를 현대적으로 조명해 보는 것도 충무공 탄신 459주년을 맞아 뜻 깊은 일이라 생각한다.
첫째, 정보를 중시하고 유비무환 정신을 견지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손자의 말처럼 그 분은 피아(彼我)의 강·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남해안의 복잡한 지형과 물길을 훤히 꿰고 있었으며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최고의 지휘관이었지만 현장 답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정보원과 정탐선을 수시로 파견해 적의 규모와 이동 상황을 정확히 파악, 대응책을 모색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거북선을 건조하고 병력을 충원, 교육훈련에 매진했다. 또 해전 후 귀항시에도 전선 정비 및 군수물자를 비축, 즉각 출동할 수 있는 임전태세를 갖췄다.
이순신 제독의 유비무환 정신의 극치는 한산도 활터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화살로 적을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적과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해야 하는데 바다에서는 거리감각이 무뎌져 배에 탄 적을 정확히 명중시키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바다를 사이에 두고 과녁을 설치, 활 쏘는 연습을 했다.
둘째, 혁신적 사고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생활화했다. 일본군은 우리에게 없는 조총을 가지고 있고 칼싸움에 능했기 때문에 조총을 무력화하고 적이 배로 올라와 칼싸움할 기회를 봉쇄하기 위해 거북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산도 해전에서는 기존의 전략에서 탈피, 일본군을 넓은 바다로 유인, 학익진(鶴翼陣:학의 날개를 펴듯이 치는 진)이라는 전법을 구사함으로써 적을 효과적으로 섬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적에게 이익을 보여주고 열세의 아군이 적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전투를 수행한, 누구도 시행한 적이 없는 충무공의 혁신적 전술이었다. 또 전쟁 중에도 미래를 위해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기록, 후세에게 유산으로 남긴 ‘난중일기’는 실사구시 실천의 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셋째,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임전무퇴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조정에서는 12척의 전선으로는 일본 수군과 대적할 수 없다며 육전에 합류하라고 했지만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명량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로써 남해의 제해권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노량 해전에서 최후를 맞는 순간까지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임전무퇴의 군인 정신을 몸소 보여주었다.
400여 년 전 이순신 제독은 오로지 군인으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묘안을 찾기에 생애를 바쳤다. 이기기 위해서는 적을 알아야 했고 적의 강점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약점을 보완해야 했다. 이에 따라 거북선을 만들었으며 대규모 일본 수군과 대적하기 위해 학익진이라는 혁신적 전법을 구사했다.
전쟁에서 우연한 승리란 없음을 이순신 제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천하가 비록 평안할지라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가 온다’는 격언을 상기해야 할 것 같다.
21세기를 맞이한 오늘날 역시 400여 년 전과 다를 바 없는 해양에서의 국익과 관련된 제2의 임진왜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400여 년 전 거북선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전선이었다. 이런 최첨단 전선이 있었기에 열세한 수군으로도 침략자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21세기를 맞이한 우리 해군은 수명이 60년이나 된 노후한 함정을 아직까지 운용하고 있다. 현재의 해군력으로 우리 해양을 수호하기에 역부족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충무공 이순신 제독이 조국 해양 수호를 위해 흘린 피가 헛되지 않도록 최첨단 잠수함을 비롯, 강력한 타격 수단을 증강해 해양 이익을 지키는 것은 ‘필수’이자 ‘당위’다. ‘우리의 바다를 우리 손으로 지키는 것’,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고지순한 몫이라 생각한다. (국방일보)
<중령 왕영진 해군본부 조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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