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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천역 재난과 북한의 선택

Written by. 코나스   입력 : 2004-04-30 오전 10: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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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공화당과 정공법 택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


북한은 핵 모호성 대신 정직성과 담대함 보여야 할 때


 

4월 22일 발생한 북한의 룡천역 열차 폭발 사고는 분명 비극적 사태였지만, 신속한 대북 지원의 필요성에 관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학자 해롤드 라스웰의 명언(“politics stops at water's edge')처럼, 총선이후 여당과 야당은 공히 상생의 정치를 주장해왔고, 북한 돕기가 정쟁중단의 시발점이 되는 듯한 모습이다.

 

이번 북한의 열차사고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무엇보다도 핵무장의 문턱에서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온 북한의 강경한 이미지와 재난에 거의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무기력한 모습간의 현격한 격차가 우리에게 많은 혼돈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격차의 폭 만큼 우리의 정책적 대안 역시 그 두 가지 상반된 진폭 속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기에 그만큼 어려움이 있고 또한 신중함이 요구된다.

 

북한의 재난에 대한 지원은 그런 점에서 가장 손쉽게 대응할 수 있고, 다행히 북한 역시 국제사회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관심의 초점은 북한에 대한 긴급구호가 장기적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으로 연결될 수 있는 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는 전적으로 북한의 결정에 달려있다. 물론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 북한 핵 위기가 답보상태에 머무르게 된 가장 큰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체제안정을 조건으로 북한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아마 이번 북경 방문에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의 제4세대 지도자들에게 미국의 정책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룡천 폭발사고를 통해 간헐적으로 비춰지는 북한의 동영상 자료는 북한의 우선순위가 절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가공할 외부위협을 통해 국민들의 단결을 유지하는 것은 어쩌면 정치세계에서는 가장 오래된 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대미항전과 위대한 승리,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자긍심을 떠나 룡천의 모습은 고단한 민초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책무가 없다는 점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욱 아쉬운 점은 신속한 대응 조치를 위한 육로수송이나 용암포구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지 못하는 딱한 내부사정이다. 타 지역 주민들이 국가적 재난사태에 관해 소식을 접할 수 없는 현실과 이를 정권안보차원에서 공개할 수 없는 북한 정부의 입장은 북한이 더 이상 미국과 핵개발 가능성을 볼모로 시간을 소모할 여유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이미 이라크 전에서 “선제공격 원칙”을 행동으로 보였고, “힘을 통한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이념적 잣대로 세계정치를 재단하기 시작했다. 또한 9.11 사태는 재검표의 곤욕에서 당선된 무명의 대통령을 일약 국민을 위기에서 구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통령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물론 이라크 공격을 위한 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보를 조작했다는 국내여론의 악화와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많은 국제사회의 비판이 그의 지지율을 하락시키고 있지만 민주당의 케리 후보가 이러한 부시의 약점을 자신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북한은 물론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부시대통령은 자신이 만들어온 전쟁 대통령의 이미지에서 결코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으며, 미국의 경제가 급락하거나 미국 국민들이 느끼는 안보의 불확실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위기는 항상 그에게 득표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미국은 북한을 적대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그러한 점은 설사 정권이 교체된다 해도 결코 바뀌지 않을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북한이 케리 후보의 주장대로 민주당 정부가 집권할 경우 양자회담을 통해 더 많은 양보와 체제보장을 담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매우 위험천만한 낙관적 사고에 불과 할 것이다. 북한에게 가장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시한 공화당의 부시대통령을 고의로 피하거나 우회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오히려 그와 상대하는 정공법만이 현실적 대안일 것이다. 미국의 부시행정부도 사실상 많은 변화를 보였고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에서 후퇴했다는 증거를 찾기에 결코 어렵지 않다. 북한 정책결정자들이 합리적 선택을 원한다면 중국의 적극적 관심과 한국의 진실한 중재노력이 언제까지나 가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며 현재와 같은 환경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만약 미국의 요구에 따른 CVID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면 국제사회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용기와 선택에 매료될 것이며, 그러한 결정 자체가 자신의 체제안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보장책이자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다. 설사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압력을 저지하기 위해 체제안전보장에 서명하고, 단계적으로 경제지원을 한다고 해도 이는 결코 북한체제에 대한 확고한 보장책이 되지 않음을 북한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북한이 핵보유국 선언을 통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큰 오산일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그동안 개선된 한국내의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급격하게 악화시킬 것이며, 북한의 핵무기 사용가능성은 한국은 물론, 일본, 대만 등의 핵 개발 등으로 이어지는 연쇄반응을 일으킬 것이며, 중국정부나 한국정부가 미국을 중재할 수 있는 외교적 기반을 상실하게 만들 것이다. 결국 체제안정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핵 확보선언은 북한을 더욱 고립으로 내몰 것이며, 개혁개방의 꿈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북한 지도층은 오늘날 형성되고 있는 황금의 기회를 사장시켜서 안 될 것이며, 미국이 변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중국과 한국의 도움을 적극 활용하는 지혜로운 외교정책을 선보여야 할 것이다. 북한이 만약 한국과 미국사이를 이간하는 작은 이익에 집착한다면 이는 실로 근시안적인 대안이다. 미국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한국 정부만이 북한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룡천 폭발사고는 북한이 생각을 바꾸고 국제사회의 온정을 보다 체계적인 지원으로 연계하는 결정적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체제는 보호하되 일부지원을 통한 반사적 이익만을 고집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며 단순히 재난관리차원의 협력수준에서 외부세계와 접촉하기 보다는 북한 핵문제를 완결 짓고, 국제사회의 역동성에 동참하는 큰 정치의 밑그림을 모색할 때라고 본다.

 

역설적이지만 북한이 핵 모호성 속에 살아남기 위한 탁월한 외교를 기획하기보다는 핵 모호성을 포기하는 정직성과 담대함을 보여줄 때만이 북한 땅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춰질 것이며, 룡천 땅의 상처가 진정 아물 수 있게 될 것이다.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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