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국인상>의 정립
▲ 홍 일 식 전 고려대총장/
요즘 많은 50대 이상 기성세대들은 자식들 걱정과 함께 젊은 세대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마음편할 날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이 나라를 누가 어떻게 세웠으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와 풍요를 어떻게 이룩한 것인데.... 아무 것도 모르는 젊은이들의 천방지축(天方地軸) 무책임한(?) 언행에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 젊은 사람들 눈에는 이러한 기성세대야말로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는 딱한 존재로만 보인다. 치열한 반공(反共)투쟁을 통해 나라를 세우고 지켜왔다고 하지만 그것은 하찮은(?) 이데올로기 경쟁의 결과물이요 동서냉전속에서 대리전쟁을 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는 식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한때의 신화에 도취되어 천민의식의 화신이 되어버린 완고한 노인들은 이제 그만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들이 보수(保守) 보수하고 외치지만 가진 자들이 모두 자기 재산, 자기 주머니만을 보수하지 않았던가? 이 시대에 반드시 추구해야할 가치, 즉 공생공영(共生共榮)의 정신으로 이 나라 이 사회를 위해 과연 무엇을 보수했느냐고 반문한다.
세대간의 의식의 격차와 갈등은 어느 시대나 있어왔다. 하지만 지금같이 엄청나고 심각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시대상을 가장 사실적으로 반영한다는 요즘 방송극(放送劇)의 대부분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갈등구조로 꾸며지고 있는 오늘의 현상이 이를 입증한다.
대개 역사 발전과정에는 다음 세가지 유형이 있는 법이다. 창업(創業)과 수성(守成)과 경장(更張)이 그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우리 사회는 크게 "경장"(개혁)을 해야할 때이지 수성이나 창업을 할 때는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기성세대는 수성만 하려 했고, 젊은 세대는 엉뚱한 창업을 하려고 한다. 갈등과 비극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문학(人文學)>이란 말하자면 이러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는 학문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에는 간헐적으로 개혁(更張)의 시기가 자주 있게 마련이고 그때마다 <파사현정(破邪顯正)> 의 추상같은 외침이 등장하게 된다. <파사현정>이란 불의(不義)를 깨부수고 정의(正義)를 바로 세우려는 인간 양심의 발현이다.
지금 새 정권에서 이러한 국민적 지지와 요청을 등에 업고 단행하려는 사정(司正)과 개혁작업도 결국 역사 속에 간헐적으로 있어왔던 이러한 <파사현정>, 다시말하면 인간양심의 회복운동이어야 한다. 기존의 것을 모두 부정하고 행여라도 "창업"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또 그럴 때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파사>, 즉 사악한 것을 깨부수는 것은 옳은 것, 바른 것을 들어올려 바로 세우려는 <현정>의 정지작업일 뿐, 결코 깨부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혹자는 <파사>만 하면 <현정>은 저절로 될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거진 쑥밭에서 쑥만 뽑아낸다고 곡식이 저절로 자라지는 않는다. 원래 쑥이나 잡초는 곡식보다 더 강하고 질긴 생명력이 있어서 뽑기만 하고 그냥 두면 더 무성하게 자라기 마련이다.
우리 근세사에서 흥선대원군은 당시 민폐의 원흉이었던 서원의 철폐, 사색타파 등 획기적인 <파사>를 단행하면서 국민적 환호속에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출범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개혁이 <헌정>으로 이어지지못한 까닭에 끝내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지금 우리는 바로 <현정>을 서두를 때다. 그것은 먼저 새시대 <새로운 한국인상>을 정립, 구현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생명 문학적인 면에서의 오늘의 우리 <한국인상>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그런대로 의젓하게 버텨오던 전시대의 고전적인 우리의 인간상은 일제의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비뚤어지고 굴절되었다. 다시 8.15 광복 후의 혼돈과 6.25 동란의 갈등 속에서는 민족 주체성의 상처로 인해 더욱 비굴해졌다. 게다가 지난 30여년간 천민자본주의만을 추구해 온 결과 턱없이 방자하고 교만해진 것이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다.
정말 부끄럽고도 불쾌한 것은 요즘 일본의 유명관광지 온천에는 우리 한글로 <때를 씻고 탕에 들어가시오> <탕 내의 수건을 가져가지 마시오>라고 써붙인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곳 호텔 로비나 복도에는 <소리내며 뛰지 말아달라> <큰소리로 떠들지 말아달라>고 한 우리말로 구내방송을 하기도 한다.
지난 날 우리 선조들이 일본에 문화사절(通信使)로 갔던 기록, 특히 일본측 기록을 봐도 우리 사절단이 이르는 곳마다 일본의 지식인들이 구름 모이듯 모여와서 우리의 선진문화와 예의범절을 배웠다고 하였는데 어쩌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문화와 한국인상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면 이제 새 시대의 <새로운 한국인 상>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우선 오늘의 기성세대가 대오각성을 해서 솔선수범을 해야만 한다. 가정에서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해와 득실보다도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하는 시비(是非)와 선악(善惡)과 미추(美醜)를 분별하여 행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서둘러 민간과 정부가 손을 잡고 국민 생활문화 향상을 위한 일대 문화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일이다. 여기에는 각종 대중매체, 즉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은 물론 각급 학교와 사회교육기관이 서로 연계해서 <새로운 한국인상>의 정립구현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
옛날 말로 하면 <교민화속(敎民化俗)>하는 일이다. 백성을 가르쳐서 풍속을 순화시켜 나가는 것으로서 일찍이 '삼강행실도' 등 다수의 교양서적을 간행 보급하는 한편, 양반(兩班)들로 하여금 모범을 보이게 하여 조선조의 국기(國基)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세종의 성공한 문화정책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지구촌 어디를 가나 <코리언>이라 하면 <믿음직하고 성실하며 치밀, 정확하고 씩씩하고 의리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도록 우리 모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실상 우리의 경제발전과 국민소득 2만불의 달성도, 민족적 시대의지인 통일민족국가의 건설도 모두가 남북 어느 쪽이 먼저 도덕적 정당성을 갖춘 이 <새로운 한국인상>을 정립 구현하느냐에 따라서 판가름날 것이 분명하다.(konas)
홍 일 식 (洪一植) 문학박사, 세계 孝문화본부 총재, 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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