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④〕새싹들의 미래를 꿈꾸는 정원사

Written by. 박성태   입력 : 2014-04-08 오전 6:00:00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0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3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장려’ 글임. (편집자 주)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철부지 초등학생 소년 한 명이 있었다. 어느 날 그의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들. 오늘은 선생님이 집에서 새싹을 화분에 심어 왔어요. 앞으로 새싹이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는지 지켜보아요!” 얼마 뒤, 선생님의 정성스러운 돌봄 덕분에 새싹은 꽃망울을 피우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게 되었다. 그 때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이 꽃이 새싹이었던 때가 기억나나요? 여러분들 또한 지금은 새싹과 마찬가지로 여리고 약할지 몰라도 앞으로 튼튼하게 자라나 은은한 꽃향기를 피워내길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여린 새싹으로부터 ‘박쌤’이 되다

 그 옛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의 의도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소년인 ‘나’는 커가며 선생님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었다. 더불어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여린 새싹이었다면 선생님은 새싹이 꽃을 피우는 것으로부터 우리들에게 깨우침을 주셨기에 멋진 정원사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성장한 나는 지금과 같이 지역아동센터에서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다하게 되었다. 센터로 첫 출근할 때쯤이 생각난다. 지역아동센터로 복무지 배정을 받은 내가 과연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어떤 일을 수행하게 될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센터에 등원하여서인지 그날따라 나는 유난히 새로운 환경에 대한 어색함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학교를 마치고 센터로 들어선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쯤 되어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먼저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아, 그 새로 오신다는 쌤이에요?”라고 인사하였다. 연이어 그 여자아이가 내게 이름이 뭐냐고 묻기에 나의 이름을 말해 주었더니 “아, 저는 심고운이에요. 그럼 앞으로 쌤은 박쌤이라고 부를게요!”라고 당돌하게 말하였다.

 어른임에도 먼저 다가가 인사하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 머쓱함을 느끼면서도 나를 처음 봤는데 어제 봤던 사람과 같이 스스럼없이 대해주며 내게 자신의 이름과도 같은 고운 별명을 지어준 고운이가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나는 첫날부터 ‘박쌤’이라는 든든한 별명과 함께 좋은 느낌으로 센터에서의 공익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온누리에서의 업무를 배당받다

 며칠 동안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센터에서의 여러 프로그램도 함께 하며 전보다 거리가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때쯤, 센터장님으로부터 본격적으로 내가 이곳에서 수행해야 할 업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초등학생들의 전 교과과목 공부를 도와주고 중학생들의 수학 교과 공부를 전담으로 봐주어야하는 것이었다. 센터장님께서는 현재 지역아동센터의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 아이들의 학업을 도와주실 선생님들을 여러 분 모셔오는 것은 힘들기에 공익근무요원인 내가 생활복지사 선생님을 도와 수고를 좀 해 주어야할 것 같다며 어렵사리 부탁하셨다.

 센터장님의 말씀을 듣고 물론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도 나의 복무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대학생 때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지도 봉사 동아리에 가입하여 봉사활동에 참여해본 경험을 살려 온누리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받는 ‘박쌤’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온누리 아이들이 변화하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뛰어들어보니 센터에는 내게 반갑게 인사해 주었던 고운이처럼 착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보다는 말썽꾸러기에 장난치고 친구들과 싸우며 공부는 뒷전인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센터에 등원한 후 간식을 먹이고 함께 공부하자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하거나, 공부하던 중에 물을 마시고 오겠다고 한 뒤 놀이방에 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녀석들을 감당해내기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처음 본 사람들에게 예의를 지키려고 하는 나의 성격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내게 버릇없게 굴어도 쉽게 화내지 못했는데 그 점을 보고 아이들이 나를 만만하게 생각했는지 그 행동의 수위가 점차 올라가기 시작했다.

 몇몇 아이들은 분명히 나와 눈이 마주쳐 내가 먼저 반갑게 인사했음에도 인사를 안 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내가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고서 친구한테 하는 듯이 내게 발길질을 하거나, 내게 갑자기 “야!”라고 말하여 나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만들어버린 아이도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내가 선생님으로서의 지위를 아이들로부터 인정받아야 아이들에게 정신적으로나 학업 측면으로나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쉽게 내지 못했던 화도 아이들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아이들에게 적당히 조절해 가며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 또한 화내는 것이 어려워 내 스스로도 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고 아이들 입장에서는‘착했던 선생님이 갑자기 왜 저러지?’라고 생각했는지 단순히 무시하거나 반응하지 않기 일쑤였다. 그런데 내가 점차 아이들의 행동에 진지한 모습을 보이며 기본적인 태도를 갖출 것을 부탁하자 아이들 또한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장난기가 심해 공부하기를 싫어하며 내게 처음부터 버릇없게 굴던 초등학교 4학년짜리 남자 아이는 지금은 내 옆에 찰싹 붙어 양손에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문제를 풀며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아이로 바뀌었다.

 또한 내게 반말 쓰는 것을 쉽게 하며 오로지 동물에만 관심이 가득해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한 중학생 아이는 나와 같이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성적이 오르면 올 겨울에 서울에 있는 수족관에 선생님이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을 한 뒤로 이전보다 공부에 열의를 가지게 되었다.

 나의 사소한 변화와 노력으로 아이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온누리 아이들의 현실을 알게 되다

 그렇게 나로 인해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기도 잠시, 센터에서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그렇게 같이 웃고 떠들며 함께하는 온누리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우연찮게 듣게 되었다.

 아버지의 폭행으로 인해 이혼 후 단칸방 생활을 하는 아이도, 자기 스스로 우리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내게 말하는 아이도,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고모와 함께 사는데 조카를 키우게 되어 센터를 그만두어야 했던 아이도,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집을 나간 아버지를 대신해 할머니와 단 둘이서 함께 살고 있는 아이도.. 이 곳 온누리에서는 모두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끼며 이따금 나의 눈가가 젖었다.

 그런 아이들이 나를 보며 자신들의 꿈을 조금씩 키워나가고 있다. 우리 아이들 또한 나이에 걸맞게 사육사, 요리사, 유치원 교사, 선생님, 경찰관 등 다양한 꿈을 가지고 있으며 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선생님과 같이 멋진 선생님이 될 거라는 아이를 보면 나를 믿고 따라주는 것에 감사하며 더욱 행동과 말에 신중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동물원을 만들어 나를 초대하겠다는 한 아이를 보며 나 또한 가슴이 벅참을 느끼고, 유치원 교사가 되기 위해 수학 공부에 매진해 성적이 오른 중학생 친구를 보며 희망을 본다.

 이제는 내가 온누리 새싹들의 미래를 꿈꾸는 정원사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지금 과거의 담임선생님과 같이 우리 아이들에게 정원사 역할을 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일지에 기록하고, 때로는 그들의 말동무가 되어주며, 부족한 공부를 도와주고, 같이 장난을 치기도 하며, 토요일이면 봉사활동 형태로 아이들의 체육 활동을 보조하면서 그 옛날 담임선생님과 같이 나 또한 온누리 아이들이 새싹에서 시작해 자신만의 꽃향기를 ‘온 누리’에 뽐낼 날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온누리 아이들이 사회적인 시선이나 개인적인 환경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도록 옆에서 더 많이 가꾸어주고 사랑의 물을 주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비록 때로는 그것이 힘들고 고될지라도 나는 남은 기간 아이들의 선생님, 때로는 아이들의 형 또는 오빠가 되어 조금씩 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나는 이번 복무를 마칠 때쯤이면 공익근무요원이었기 때문에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공익근무를 하였기 때문에 자부심과 보람,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렇기에 나는 소집해제하는 그날까지 언제나 한결같은 자세로 센터에서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내일 일상적으로 있을 아이들과의 만남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아닐까.(Konas)

박성태 (온누리지역아동센터)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