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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10만 양병설 : 율곡사업 추진 40주년에 즈음하여

Written by. 안찬희   입력 : 2014-04-09 오전 10: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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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4일은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422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의 위정자들이 율곡 이이 선생의 ‘10만 양병설’을 받아들이고 대비했더라면 7년간이나 왜놈들에게 처참하게 짓밟히고 유린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거울삼아 우리 군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시작한 첫 전력증강사업이 ‘율곡사업’이며 이 율곡사업은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하고 오늘날 우리 국군이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세계 최강의 군대로 발전하는데 초석이 되었다.

 올해는 우리 군이 실질적인 전력증강 사업을 추진한 지 4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다. 당시 29개로 출발했던 방산업체는 90여개로 늘어났으며 국내 방산 시장은 3조 원대를 넘어섰다.

 방산 수출 대상국도 70여 개국에 달하며 지난해 이라크에 T-50IQ 수출 성사로 연 34억 달러라는 방산 수출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며 창조경제의 핵심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력증강 사업 추진 40주년을 맞아 우리 군의 전력증강 사업의 추진 과정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자 한다.

 전력증강 사업의 추진 배경

 당시의 안보상황은 1968년 1월21일 무장공비 청와대 기습사건, 美첩보함 프에블로호 납치사건, 11월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 만행과 그해 7월 “자주방위의 책임은 자국 스스로 져야 한다”는 美 행정부의 ‘닉스독트린’ 선언 등 휴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으며 자주국방이 절실히 요구 되었다.

 1970년 1월 국방부를 연두 순시한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 국방력 강화와 이를 위한 무기개발전담부서 설치를 지시함에 따라 1970년 8월6일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창설하고 본격적인 무기개발에 들어간다.

 이와 함께 1973년 4월 한국군 최초의 ‘자주국방을 위한 전력증강 계획’을 수립하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탄생한 것이 바로 율곡 사업이다.

 전력증강계획의 작성 책임은 당시 합참 전략기획국이 맡았다. 작성 책임을 맡은 합참은 1972년 12월 국방부가 최초로 설정한 ‘국방목표’를 근거로 1973년 7월27일 최초의 군사전략서인 ‘합동기본군사전략’을 작성하였으며 74년 1월에는 육·해·공군의 제안을 바탕으로 ‘군 장비 현대화 계획’을 합동 참모회의에서 의결한다.

 국방부는 합참의 계획을 토대로 재원마련과 무기개발 계획 등을 담아 1974년 2월25일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군 수뇌부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박 대통령에게 1차 보고를 한다.

 보고서의 제목은 ‘전략증강 8개년 계획’이었다. 보고가 끝난 후 보고자였던 이재전 장군(예비역 중장, 작고)이 “이 사업은 고도의 보안을 요하는 사업이므로 암호명을 쓰는 게 좋겠다”고 건의하자 박 대통령이 무엇이 좋겠냐?고 물어 역사속의 명장 중 충무, 을지, 율곡 등을 제시하자 10만 양병설을 주창한 “율곡이 좋겠다”며 직접 낙점하여 암호명 ‘율곡사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다시 계획을 보완한 다음 1974년 3월15일 최종 대통령 재가를 받음으로써 본격적인 추진에 들어간다.

 첫 전력증강 사업의 성공적 추진

 율곡사업은 1974년부터 1992년까지 3차례로 나누어 추진되었다. 율곡사업의 기본방침은 ‘조기 획득, 성능보장, 경제성 보장’으로 설정하였다. 재원은 총 2,993억 운으로 방위비의 30%가 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 예산은 당시 모든 언론사들이 2년 동안 모금한 161억여 원과 1975년부터 1990년가지 한시적으로 신설한 방위세로 충당 하였다.

 그러니 율곡사업은 절박했던 당시의 안보 상황에 온 국민들과 기업, 언론사들이 하나가 되어 이루어낸 값진 결과라 생각한다.

 1차 사업은 원래 1974년부터 1980년까지 7개년 계획이었으나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연계하여 1981년까지로 연장 되었다.

 사업은 1974년 M16 양산을 시작으로 1970년대 말부터 소구경박격포, 유탄발사기, 대전차로켓포, 무반동총, 4.2인치, 105mm, 155mm곡사포 등을 국산화하고 전력화 하였다.

 이와 같이 1차 율곡사업을 통하여 육·해·공군이 필요한 대부분의 기본 병기를 개발 완료하고 본격적인 양산을 통해 전력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2차 율곡 사업은 1982년부터 86년까지 5개년 계획으로 추진되었으며 예산은 1차 사업의 두 배에 달하는 6조 3,400여억 원으로 크게 확대 되었다. 2차 사업은 1970년대 구축한 생산능력을 기반으로 전차, 장갑차 자주포, 구축함, 기동헬기, 각종 통신장비 등 정밀 무기체계에 대한 국내개발 및 생산능력을 갖추게 됨으로써 우리의 방위산업은 군이 요구하는 대부분의 무기체계를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단계까지 도약하게 된다.

 한국형 전차도 1988년 개발을 완료하여 초도생산하고 1985년부터 독자 개발한 한국형 장갑차를 생산, 실전 배치함으로써 전력증강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1980년대 초부터 시작한 비호, 천마, 현무 등에 대한 개발은 정밀 유도무기에 대한 국내 최초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례이기도 하다.

 3차 율곡사업은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이루어졌다. 14조 3,479억 원으로 방위비의 35.8%로 규모가 크게 늘었다. 80년대 방위산업의 목표는 ‘방위산업의 자립기반 구축’에 두고 정부가 주도하던 육성정책을 업체가 주도하도록 유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초창기 시행착오를 겪어 방위산업이 주춤하기도 하였으나 정부가 1987년과 1988년에 ‘방위산업특별법’을 개정하여 주요 방산물자 생산업체를 중점 지원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세계 최강의 첨단 軍으로 성장 발전

 율곡사업 이후 전력증강 사업은 1990년 9월 ‘818 군 구조 개편’에 따라 큰 변화를 겪는다. 2000년대를 지향한 ‘한국방위의 한국화’란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국방개혁과 연계하여 전력정비사업(1992〜1996), 방위력개선사업(1997〜1998), 획득사업(1999〜2001)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추진되었다.

 전력증강 사업은 200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한 번 위기를 맞는다. 한때 율곡감사로 인한 비리가 드러나면서 국민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춰지기도 했으나 무기개발은 첨단무기 중심으로 지능화 되었으며 서서히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K-21보병전투장갑차, K-10탄약운반차, K-2전차의 국내개발이 완료되어 생산됨으로써 기술적으로도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함정의 경우 2003년에는 4,300톤급 구축함이, 2007년에는 대형 수송함이, 2008년에는 7,600톤급 구축함(KDX-Ⅲ)이 연이어 전력화 되었다.

 항공기의 경우도 T-50 고등훈련기 개발이 완료되고 이를 공격기(FA-50)로 개조하기 위한 개발 착수와 한국형기동헬기(KUH)도 개발을 시작했다.

 또 이 시기에 개발을 성공한 신궁, 천마, 철매, 홍상어, 청상어, 등 유도무기와 어뢰도 본격적으로 국내생산을 통해 전력화되는 한편 우리의 기술로 만든 자주포, 전차, 장갑차, 함정, 훈련기 등은 세계적인 명품무기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1970년대 초 국방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무기의 연구개발과 3차례의 율곡사업을 통해 이루어진 전력증강 사업은 오늘날 우리 군을 첨단무기로 무장한 세계최강의 군대로 발전시키고 자주 국방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초석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평화적인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연두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하여 전 세계에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그 전제는 역시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율곡 사업을 통해 자주국방의 초석을 다졌다면 이제는 8천만 겨레의 염원인 조국의 통일을 뒷받침할 수 있는 튼튼한 자주 국방력을 갖추는데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안찬희 (한국방위산업학회 이사)

* 출처 : 월간 자유 4월호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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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봉(zzang2004)   

    야밤중 무인 항공기 공격,땅굴통한 대병력침투,특수부대 기습상륙등등등 모든 수단으로 우벌적인 공격할것에 대비한 보복계획과 방어계획이 수립되어야한다.

    2014-04-09 오후 3:20:00
    찬성0반대0
  • 마이산(tjd3331)   

    안보가 튼튼해야 경제가 산다

    2014-04-09 오후 2:33:55
    찬성0반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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