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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안, ‘국회프락치사건 다시보기’

Written by. 이영찬   입력 : 2014-05-15 오후 9: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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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로당은 5·10선거 때는 한편으로는 선거파탄 투쟁을 전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회 내에 동조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장차 포섭될 가능성이 보이는 후보자들을 개별 선거구별로 지원했다(박동갑의 증언). 이문원은 5·10선거 때 남로당의 지원을 받았다. 남로당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직후인 1948년 9월 「반동 치락치부」라는 특수공작부를 설치하여 국회의원 포섭공작에 나섰다. 이 부서의 책임자는 도상익, 부원으로는 김사복, 이재남, 정해근, 김우진, 유진원, 이병석 등이 활동했다. 그 중 김사복, 이재남, 정해근이 국회의원 포섭공작을 담당했다. 그들은 선량한 기업인으로 위장하여 활동했으며 서울 중구 충무로2가, 4가, 종로4가 등지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활동했다....”

 15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 아펜젤러홀에서 뉴데일리 및 대한민국사랑회 후원으로 열린 ‘이승만포럼’에서 양동안 한국학 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국회프락치사건 다시보기」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와 같이 국회프락치사건의 전모를 화두로 꺼냈다.

 ▲ 15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 아펜젤러홀에서  「국회프락치사건 다시보기」라는 주제로 '이승만포럼'이 열렸다. ⓒkonas.net

 그는 또 “노일환과 이문원 등은 남로당에 포섭되기 전부터 대한민국에 해를 끼치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들이 남로당의 프락치로 포섭되기 전후에 反국가적 활동인 ▲국가보안법 제지 저지투쟁 ▲반미투쟁(미군철수 촉구, 한미협정 반대)을 전개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국회프락치사건이 어느 정도 사실과 부합된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프락치로 검거된 인사들의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그들의 행적을 비추어 볼 때 남로당프락치로 검거되었던 국회의원들이 친북의식을 가지고 활동했던 사람들인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그들의 행적에 대해 “국회프락치사건 관련자들은 1심 판결에 불복 항고, 2심 계류 중 6·25전쟁을 맞이하여 수감중이던 서대문 형무소를 탈옥했다. 서용길을 제외한 나머지 12명은 북한군의 점령기간 중 그들에 협조하다가 일부는 북한군이 패퇴하기 전에 월북하고일부는 북한군이 패퇴할 때 같이 월북(또는 납북)했다. 서용길은 경기도 고양의 농가에 숨어 지내다가 수복 후 당국에 자진 출두했다. 노일환, 이문원, 김약수, 강욱중, 김옥주, 배중혁, 이구수, 최태규 등 8명은 월북 후 북한에서 평화통일협의회의 상무위원으로 활동하다가 58년 말부터 59년 초 남로당계 숙청 시기에 함께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병회, 박윤원, 신성균, 황윤호 등 4명은 납북(?) 된 후 행방불명 되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예나 지금이나 남한 좌익의 당면 투쟁대상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 미군철수·한미 동맹관계 해제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며 “현재 국회에는 프락치가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혁명조직’의 지도자와 간부들이 들어가 있다. 이들은 포섭된 프락치가 아니다. 문제의 심각성이 훨씬 크다”고 현재의 한국정계를 평가했다.

 ‘국회프락치사건’은 일명 ‘남로당국회프락치사건’으로 1948년 5·10총선거에 의해 국회가 구성된 후 원내(院內)에서 정치노선을 명확히 확립하지 못했던 急進세력들이 남로당원들의 사주를 받아 國會장악을 시도했던 공안 사건으로 1949년 3월 제헌국회 내에서 ‘외국군대(미군)철수’, ‘남북통일협상안’ 등 당시 공산주의 주장을 추구하다 그해 3차례에 걸쳐 김약수 국회부의장 등 관련자 13명이 검거 됐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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