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문제와 김정일의 중국방문
김정일에게 핵무기 보유는 체제유지의 알파요, 오메가다. 김정일체제는 주변국가를 위협할 가공할 만한 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자기 '인민'과 우리 대한민국을 인질로 삼지 않고서는 그 체제를 존속시킬 방법조차 없는 나라다. 그렇기에 김정일에게 핵무기 보유란 자기체제의 존속을 결정짓는 절대절명의 전략이자 위기탈출 방안인 것이다.
핵무기는 단 한발의 성공적 투하로도 수십만명의 목숨을 빼앗고 수십년간 그 지역에 재앙을 가져다주는 가공할 무기이기에 그 무기를 개발, 소지한 집단에 대해서는 대우를 해주고 요구조건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특징이 있다.
핵전쟁을 각오하며 상대의 요구조건을 거절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붕괴되었다는 예를 아직 보지 못했다. 또 북한의 핵개발이 구체적 현실로 드러날 경우 대한민국 경제에 닥쳐올 재앙이란 가히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김정일의 핵개발 의도와 진전 정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려는 경향이 확산되어 있다. 다가오는 어려움을 닥치기 전까지는 애써 피해보려는 태도와 자기 문제를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기보다는 미국 등 남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무책임한 태도라는 것 이외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김정일은 대한민국과 스탈린식 공산전체주의 체제의 존망이 걸린 핵개발 지속여부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지난 4월 18일부터 21일까지 중국을 '비밀(secret)'방문하였다.
미국과 중국의 공통된 대북 핵포기 압력에 대처하고 6월로 예정된 제3차 6자회담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핵무기 개발에 관한 한 유일한 혈맹인 중국마저 단호한 입장을 취하며 적극 나서는 현실에 북한도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작년 8월과 지난 2월 두차례에 걸친 6자회담에서 북한이 핵포기 의사를 분명히 하지 않자 중국은 지난 3월 닝푸쿠이 핵담당대사와 리자오싱 외교부장을 연이어 북한에 보내 북한의 전향적 태도를 요구했다. 더구나 미국은 구체적인 증거자료인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칸(Kahn)박사가 관여해온 북한 핵개발 사실과 우라늄(HEU)방식에 의한 핵개발에 전념한 사실을 가지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정일의 중국방문에 앞서 미국 체니(D. Cheney)부통령은 미국입장을 다시 한번 단호히 전하고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결코 좌시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기에 미국 대통령 선거일정과 상관없이 단호하고도 급박하게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상황에 따라 무역 및 해안봉쇄 등 외교적 조치를 넘어서는 단안이 조기에 취해질 가능성이 비춰진 것이다.
중국 역시 핵문제 외에도 가야할 길이 먼 나라다. 랴오닝, 지린 및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의 개발 지연문제가 북한의 낙후된 폐쇄경제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평가된 것이다. 중국은 이들 지역의 개발을 위해 610억위안(약 9조 1,500억원)의 투자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개혁·개방 없이는 중국의 동북부 개발도 커다란 장애를 갖는 것이고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중국은 또 북한이 핵을 보유함으로써 일본, 대만, 한국까지 핵보유국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할 절실한 큰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지속적 경제발전과 2008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등을 위해서는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는 긴요한 것이기에 북한 핵위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실정에 있다.
김정일은 이번 중국방문에서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 "인내와 유연성(patient and flexible)"을 갖고 핵문제 해결에 나설 것임을 대화형식으로 공식 발표하였다. 인내를 갖겠다는 것은 다가올 제3차 6자회담에 성의를 갖고 계속 임할 것이며 중국이 주도한 다자회담을 통한 해결을 모색하겠다는 약속으로 보인다. 또 유연성을 발휘하겠다는 것은 기존의 북한입장에서 벗어나 일정정도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낙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김정일에게 핵무기는 자기 체제의 전부와 마찬가지로 여기기 때문에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는 뚫고 가야할 난관이라고 일찍부터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입장과 체면을 무시할 수만은 없고 미국의 예봉을 피하기 위해 북한은 향후 몇 개월간은 전술적 차원에서 우호적 태도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올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의 향방을 볼 때까지는 전향적 모습을 보일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나서 다음 수순을 찾을 것이다.
그렇기에 향후 실무교섭이나 6자회담에서 나타날 북한의 부분적 유화조치를 핵무기 폐기의 길로 들어섰다고 보면 그것은 또 다른 커다란 우를 범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북한이 우라늄방식에 집중하면서 1994년 플로토늄방식의 핵개발을 동결(freezing)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성공이라고 자찬했던 10년전의 무책임한 미-북 핵합의가 또다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인되지 않은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 반세기에 걸친 북한과의 협상에서 얻어진 교훈이다.
차라리 지루하고 불투명한 6자회담의 결과를 지켜보기보다는 오히려 김정일체제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함으로써 핵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방법을 기대하는 것이 더 빠를 지도 모르겠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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